회사에서 정년 퇴임을 위해 1인 출판사를 차리려는, 돌아버린 오타쿠
브런치 오랜만에 등장! 최근에 글 슬럼프가 심하게 온 상황이라 원고 계약해 놓고도 한 달 넘게 쓰지도 못하고 브런치도 방치한 지 오래. 그러다가 내 브런치 블로그에 거미줄 치겠다 싶어서 최근에 하는 일에 대한 기록이라도 남겨보고자 슬금슬금 돌아왔다.
요즘 하는 일: 1인 출판사 차릴 준비
요즘 핫한 출판사 중 하나가 바로 박정민 배우님이 대표로 계시는 2인 출판사 무제가 아닐까. 무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소개의 말에 '바닥에 누워 출판사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출판사를 시작해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라는 가히 박정민님스러운(?) 소개가 있다. 그와 비슷하게 나른함이 밀려드는 오후 3시쯤, 회사 모니터를 가만가만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을 문득 하게 됐다.
회사 오래 다니려면 출판사를 차려야겠어.
졸려서 뇌가 사고를 하길 멈췄나? 라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는 문장이긴 하다. 다만 저 생각이 태어난 근간은 생각보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신입사원 OJT에서 모 상무님께서 한 사람당 질문 하나를 하지 않으면 끝내지 않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셨다. 하필 이번 회사 다섯 번째로 옮긴 회사(아마도?)라 되도록 길게 다니고 싶은 마음에 물어봤더랬지.
"어떻게 하면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나요?"
"...지금 회장님과의 대화 시간인가?"
상무님은 이게 무슨 대화인가 싶어 하셨으나 나름대로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으셨다. 첫 번째는 뇌 빼고 다니기(정확한 워딩은 생각없이 다니기인데 그게 그거지, 뭐...). 두 번째는 빚 내기. 일단 첫 번째 방법은 입사 시작과 동시에 한 거라 이제 슬슬 약빨이 떨어지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슬슬 두 번째 수단을 쓰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쉬운 듯 쉽지 않다. 빚 내기 가장 좋은 수단이 뭐다? 집 사기. 그래서 우리 사내에서 가장 부동산에 통달한 우리 팀 차장님에게 커피 타임을 가지며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문제는 내가 안 땡긴다는 거다.
웃기지요? 다들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데 나는 이상하게 집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미묘하다고나 할까. 이건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던 경험과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내년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떠나는 역마살이 그득그득한 DNA 탓일지도. 그래서 일단 집 사기는 패스.
그렇게 빚내기 프로젝트가 없어지나 싶더니, 원래 일은 갑자기 생긴다는 말처럼 갑자기 '그래, 출판사를 차리면 빚이 생길 테고 그걸로 회사를 정년까지 다니면 일거양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말이지만 출판업은 늘 하향하고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요즘 그나마 텍스트힙이라는 붐이 불어서 도서전도 역대급으로 성황을 했다지만 그래도 다른 직업에 비해서 어려움이 많이 따르는 직업 중 하나라고 하고. 어쩌다 보니 올해 웹소설 작가로 데뷔해 출판계에 발가락 하나쯤을 걸치게 된 입장이자 웹소설로 꽤 이름 날리고 있는 내 친구, 그리고 출판사 직원인 친구를 두고 있는 상태에서 주변에서 들리는 출판 시장 이야기는 늘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시점. <1인 출판사의 슬픔과 기쁨>이라는 책에서도 한 권 팔아 겨우 다음 권을 낼 수 있는 상황이 많은 걸 보니... 그래요. 툭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박정민 배우님도 본업으로 돈 벌어 출판사에 쏟아붓고 계시는 걸 보고 저도 제 월급 벌어 출판사 적자 메울 삶이 보였습니다.
물론! 좋은 원고를 만나 좋은 책을 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안타깝게도 성격 자체가 부정적인 상황부터 생각하고 대비하는 타입. 다시 말해 돌다리를 10,000번 두드리는 타입이라서 맨몸으로 출판 업계에 뛰어드는 일은 마치 '스스로 혼문을 깨부셔 숨 참고 러브 다이브'라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무슨 기분이야, 싶으시면 다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봅시다. 세계가 인정한 명작입니다.
아무튼 이 구역의 사고 치기, 일 벌리기 달인답게 머리에 '출판사 창립'이 들어와서 요즘 모든 신경이 그곳에 쏠려 있다. 생각이 났으면 뭘 해야지요? 행동!
7월 7일 월요일부터 7월 12일 토요일까지의 기록
1. 회사에서 모니터를 보다 출판사를 차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2. 출판사 이름을 지었다
3. 각종 계정을 만들기 시작했다(메일 주소, 인스타그램 계정 등)
4. 주소가 필요해 공유 오피스를 계약했다
-> 집 주소도 OK라고 하지만 어쩐지 집 주소로 계약하긴 그래서 집 근처 공유 오피스로 계약 땅땅!
5. 구청에서 출판사 신고하기
접수까지 대략 3일이 소요된다고 적힌 거에 비해 제출한 바로 다음 날 신고증을 받아 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역시 쾌속 빠름 빠름의 민족답다고나 할까? 다만 내가 본업이 있어서 구청 갈 시간을 만들기 어려워 아직 수령을 못 하고 있는 상태. 구청에서 3만 원 미만의 1년치 세금을 내고 나면 등록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6. 작가님 꼬시기 위한 출간 제안서 만들기
-> 생각해 보니 이 사람이 갑자기 동화책 내고 싶다고 해서 그럼 내가 출판사 만들어서 내줘야지! 이런 미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내일 미팅 때 따져야지. 뻥입니다. 이걸 빌미로 읍소할 예정입니다.
7. 마스코트 캐릭터 만들기
-> 전공하고 하는 일이 마케팅이랑 동떨어진 것들이라 마케팅을 하나도 모르지만 사업에서는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하시어 머리를 굴리다 일단 내 출판사 세계관이라고 해야 할지, 컨셉을 잡기 시작했다. 컨셉 잡기 좋은 것 중 하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 캐릭터 산업이 인기인 요즘 상황에서 출판사 마스코트 하나 만들어 두면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 나의 인맥을 털었다. 다행이야.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오타쿠라. 후훗.
다음 할일
1. 뉴스레터 및 인스타툰 계획
-> 편지 처돌이라 아무래도 홍보 및 출판사 정체성을 잡기 위해서는 뉴스레터 발행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뉴스레터만 하기에는 심심하기도 하고 이왕 만든 마스코트를 잘 이용해 보고 싶다고나 할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타쿠 친구들만 수두룩해서 그림쟁이들도 꽤 있는 덕분에 친구에게 지금 작업 제안을 해둔 상황. 조만간 만나러 가니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를 진행해야지. 무릎은 어떻게 꿇음 효과적인지요. 각도 아시는 분?
2. 세계관 구축 심화 버전
-> 지금 마스코트가 활약할 세계관이 두루뭉술하게 잡혀 있어서 이걸 명확하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나 할까.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세요? 싶으시면 제가 오타쿠라 그렇습니다. 오타쿠는 세부 설정 짜는 걸 좋아해.
3. 원고 계획
출판사니까 책을 내야겠지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지금 계획에 어울리는 작가님들에게 메일로 읍소하고 있는데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강제로 글 슬럼프 극복이 필요한 상황. 예전부터 에세이로 쓰고 싶었던 소재가 몇 개 있어서 이것도 조만간 콘텐츠 개발 천재 친구를 만나 구체화를 해보려고 하는 중. 그나마 지금 출판사에서 해야하는 일 중에서 원고 쓰기가 내가 그나마 잘하는(...?) 일이라서. 출간 계획서랑 시놉시스나 적어야지. 에휴.
4. 또 뭐가 있죠?
솔직히 말하자면 할 게 너무 많다. 1인 출판사의 개념도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그냥 글만 끄적여 본 작가 나부랭이 입장에서 출판사의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몸에 탑재해야 하고. 또 무엇보다 출판사에는 여러 포지션이 있지 않은가. 그나마 디자인 부분은 친구들 찬스를 쓸 수 있지만 마케팅이라든지 편집 같은 부분은 인건비 절약 겸 내가 익혀야 해서 인디자인이랑 교정 교열 부분도 기웃거릴 예정. 그나마 다행인 건 찍덕 아닌 찍덕이라 어도비 프로그램에는 익숙하다는 거랑 나름 글쟁이라 글을 공부하는 일은 좋아한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잡덕의 쓸모가 이렇게 있구만.
5. 사업자 등록
아 마따! 등록증 받아 오면 바로 사업자 등록하고 사업자 통장도 만들기! 다행스럽게도 이건 비대면으로도 간단하게 가능하다고 다른 블로그에서 이미 먼저 1인 출판이라는 길을 걷고 계시는 선배님들이 알려주셔서 이번 달 안으로 등록증 수령 후에 진행 예정.
향후 목표
1. 3년 안에 10종의 책 발간하기
관련 책을 보면 흔히 출판사의 시작은 10종을 내고 나서, 라고 한다. 분기에 1권씩 낸다고 쳐도 거의 3년이 걸리는 일. 이 기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데 나는 딱 적당한 기간인 것 같다. 무언가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일, 다시 말해 보통 덕질을 할 때 짧으면 1년 길면 5년이라는 기간(물론 예외로 아주 가끔 있음. 예를 들어 내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강동원 배우라든지. 또 모 아이돌이라든지?)을 가지는 타입이라 딱 평균인 3년이 도전하기 좋은 기간으로 느껴졌다.
2.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 출전
포부 아주 굉장하지요? 단순히 올해 도서전이 성공적이었으니 나도 가야지! 라기보다는 오타쿠적인 마인드가 강하게 가미되어 있다. 서울 코믹월드나 각종 동인 행사에 부스를 내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내 자리가 필요해서. 이번 도서전의 경우, 예매권도 구하기 어렵고 또 막상 들어가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는데 그걸 해소할 방법이 바로 뭐다? 내 부스 내기. 입장권과 내 의자 100% 보장!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이 다 있나, 싶으시겠지만 전지적 오타쿠 시점으로 바라본 서울국제도서전은 서울 코믹월드의 월드 메이저 버전으로 보여서랍니다.
물론 올해 부스 참가 비용을 봤더니 1인이 감당하기에는 후덜덜한데 내년에 받을 상여금이 알아서 처리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디스플레이? 그것도 남의 카드로 인테리어 좋아하는 친구 찬스 쓸 거고 알바도 이미 그들에게 통보 다 해놨다. 직급이라 일당 줄 테니까 알바 해줘라고 읍소 다 했음. 일주일간 얼마나 무릎을 꿇고 읍소를 하고 다닌 거지, 나?
다만 돈보다 걱정인 게 과연 내년 도서전까지 책을 얼마나 낼 수 있을까, 라는 문제라. 아무리 제가 걸핏하면 원고 펑크 내고 룰루랄라 책 없이도 행사 참가하는 양아치지만 n00만 원 내놓고 책 없이 참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고로 부스비는 뽑아야... 어흑...
아무튼 종종 1인 출판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적으러 오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의 예비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혹시 모르죠.
브런치의 멋진 작가님들에게 제가 원고 부탁드리려고 읍소하러 갈지...
그럼 20000...
p.s. ㅇ ㅏ 피씨방 가서 겜하고 싶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