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끙끙거리며 앓다보면 몸은 한없이 어둠 속으로 떨어지듯하고 입맛은 쓰다. 어릿어릿 꿈과 현실의 경계를 떠돌다 문득 내가 누워 있는 이불의 감촉을 느끼며 정신을 차릴때면 달작지근한 어떤 맛이 쓰디쓴 혀끝을 맴돈다.
할머니의 꽃게 무침이 문득 떠오르는 시간이다.
하나에 몇만원씩 하는 비싸고 귀한 간장게장도 아니고 붉은 양념이 잔뜩 발라진 화려한 양념게장도 아닐 고춧가루 몇점 묻은 꽃게 무침.
단단한 껍질을 이빨로 누르면 부드러운 꽃게살이 혓바닥 위에서 녹아 목구멍 속으로 슬슬 넘어간다.
강원도가 고향인 나의 소울푸드는 의외로 전라도 음식이다. 전라도가 고향인 외할머니는 60이 넘어 막내딸 살림을 살아주려 강원도로 왔고 강원도 식재료로 전라도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내 미각에 문신처럼 새겨진 어린시절의 맛은 비릿하고 짭짤한 전라도의 음식들이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는 혼자 버스를 타지 못해 휘적휘적 걸어서 시장엘 가셨다. 돌아오실 때는 짚으로 만든 둥근 똬리를 머리에 얹고 그 위에는 큼직한 대야를 이고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휘청휘청하면서도 절대 넘어지지 것이 마치 요술처럼 느껴졌다.
대야에는 조기며, 명태, 꽃게, 조개젓 같은 비린 것들 천지였다.
오랜 노동으로 옹이지고 굽어버린 할머니의 손가락 끝에는 항상 마늘과 고춧가루 냄새가 났다. 할머니는 대야에서 꺼낸 물건들을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한번 휘휘 씻어서는 후딱후딱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대부분 간장과 고춧가루와 마늘을 섞어서 참기름을 한반퀴 휘 둘러낸 투박한 것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혀끝에 퍼지는 편안하고 깊은 맛이 오래 기억이 난다.
왠지 손가락 끝에 밴 고춧가루 냄새가 스며들어 음식의 맛을 내주는 것만 같았다.
살아서 펄떡거리는 꽃게를 뒤집어 움켜쥐고 뚜껑을 우지끈 연 후 몸통에 칼을 꾹 눌러 반으로 가른다. 집게다리 있는 부분을 가위로 잘라주고는 물로 한번 헹궈서 고춧가루를 뿌리고 간장과 파, 마늘을 적당히 넣고 그냥 버무리면 할머니의 꽃게무침은 완성이다.
대충 뿌린 고춧가루 사이로 꽃게 살이 떨어져 있기도 했다. 며칠간의 숙성 같은건 필요하지 않았다. 가끔은 꽃게를 버무린 양푼이 그대로 밥상에 올라오기도 했다.
몇시간 전까지 살아있던 꽃게의 살은 달았다. 어린 시절 자주 아팠던 나는 앓다가 일어나서 꽃게무침과 무된장국을 먹었다.
아직 단단한 꽃게 껍질을 어금니로지그시 누르면 쉽게 살이 빠져 나왔다. 젓가락을 벌려 집게 다리 속까지 파먹고나서도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먹고 나면 비로소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어떤 생명이 내 입속으로 들어와 생명이 조금 빠져나간 내 안을 채워주었다.
아직도 가끔 몸살을 앓고 나면 살이 훤히 비치던 할머니의 꽃게무침이 생각난다.
어제 마트에 갔더니 살아 펄떡거리는 꽃게를 박스째 팔고 있었다. 나도 싱싱한 꽃게의 등껍질을 열고 칼을 들이대 누군가의 영혼을 채워줄 수 있을까? 한참이나 꽃게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