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혐오 음식들에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한 한국 음식으로 홍어가 있다. 싱싱한 홍어회기가 아니라 삭힌 홍어만이 이 왕좌에 올라갈 자격이 있다.
우리 발효식품에는 청국장도, 김치도, 젓갈도 있지만 홍어에 비하면 순하디 순한 애송이들이다.
삭은 홍어에서는 본격적인 암모니아 맛이 난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맡았던 그 냄새다.
젓갈이나 청국장이 발효식품이라면 홍어는 사실 썩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삭혔다고 멋스럽게 홍어를 포창해준다.
한국인이라고 다 홍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홍어를 꽤나 좋아한다. 마트에서 파는 그런 홍어가 아니라 지린내가 진동 하는 많이 삭힌 홍어. 한 조각 씹으면 쫄깃하고 탱탱한 살에서 진한 암모니아 향과 함께 다채로운 감칠맛이 입안으로 퍼지는 그맛을 좋아한다. 썩어가는 것이 마지막으로 풍기는 맛이라니.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시절부터 홍어를 먹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삭고삭아 암모니아 향이 그득했던 홍어를 먹었다.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평상시 막내딸(우리엄마)집에서 살림을 살아주던 할머니는 명절때에만 고향에 갔다.
명절이 한달 정도 지나면 고속버스터미널로 외할머니를 마중 나갔다. 외할머니는 글자를 못읽으셨다. 터미널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지 못하셨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승강장에 들어오면 얼른 버스에 올라가 할머니 짐을 받아온다.
할머니는 하얀 한복을 입고 숱이 얼마 안남은 머리를 틀어올려 싸구려 플라스틱 비녀로 뒤통수에 쪽을 짓고 있다.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에게 다가가면 쿰쿰한 냄새가 점점 진해진다. 할머니의 보따리에는 홍어가 들어 있다. 전라도 함평에서부터 한 달 동안이나 할머니와 같이 전국을 돌아다닌 홍어다.
우리 엄마는 8남매 중 막내딸이었는데, '막내딸 시집 보내느니 내가 가지'가는 옛말처럼 외할머니는 막내딸 산후 조리를 해주러 왔다가 그대로 20년을 막내 딸네 살림을 해주면서 살았다.
명절이면 우리집에 친가 친척들이 차례를 지내러 몰려오고 할머니는 전라도 함평의 큰아들네로 명절을 쇠러 갔다. 큰아들은 이미 세상을 버린지 오래, 늙은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아 할머니는 고향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 자식 저 자식 집에 며칠씩만 묵어도 한 달이 금방 갔다.
고속버스 밑 짐칸에서 할머니의 보따리들을 꺼낸다. 콩, 깨, 참기름, 고춧가루 같은 것들이 라면박스와 보따리 몇 개에 가득하다. 할머니는 자식들 집을 돌아다니며 참기름이며 고춧가루 같은 것들은 선뜻 나눠주었지만 홍어는 막내딸 집에 도착할때까지 보따리에 꽁꽁 싸매두었다. 홍어는 할머니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다 고속버스 선반에 올려져 여기까지 왔다. 버스에 탄 승객들은 모두 이 쿰쿰하게 삭은 홍어와 함께 오랜 여행을 했을 것이다.
마당 소나무 밑에 놓인 평상에 술상과 도마를 올리고 홍어를 자르기 시작한다. 나도 한 점 받아서 입에 넣으면 지린내가 진동을 한다. 어린아이 입맛에 맞는 음식이 아닌데 한참을 씹다보면 이상하게 중독되는 맛이있다. 오도독한 지느러미 부분과 뼈가 조금씩 씹히는 옆구리 부분이 특히 맛나다. 홍어 살은 다른 생선들과 다르게 쫀득쫀득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삭아가며 나오는 맛이다. 어른들은 막걸리를 마시고 나는 잘 씹히지 않는 뼈다귀와 껍질을 묵은지와 함께 씹고 또 씹었다. 입에 남은 조각을 꿀꺽 삼키고 한 점 더 집을라치면 '어린 아가 홍어도 먹을 줄 안다'며 어른들끼리 껄껄대고 웃었다.
누구네 집에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 누구네 노인네 풍맞은 이야기, 누구네 아들이 어디 학교를 들어가고, 얼마전 시집간 누구는 소박을 맞았고, 누가 보증을 잘못서서 집안이 망했는지. 할머니는 전국의 자식들 집을 돌며 모아온 이야기를 푼다. 나는 그동안 마당 구석에 앉아 홍어의 살점에서 달작지근한 맛이 나올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요즘 마트에 가면 칠레산 홍어가 곱게 포장되어 진열대에 올라있다. 살점이 두툼하고 부드러운 부분만 예쁘게 늘어놓은 모습이 마치 꽃잎을 펼쳐놓은 듯하다.
칠레산 홍어도 깔끔하고 맛나다. 그런데 암모니아 냄새 가득한, 한 입 넣으면 톡 쏘는 향이 콧속 가득 찼던 예전 홍어의 맛이 그립다. 한 달 동안이나 보따리에서 삭아가며 홍어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까?
홍어의 맛은 세월의 맛이다. 홍어에는 삭아서 썩어버리기 직전의 생물이 쏟어내는 그 다양한 맛과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꼭 홍어다. 번쩍이던 젊음을 잃고 고상하게 늙어가는게 아니라 썩어문드러져간다. 어제는 직장이, 오늘은 남편이, 그리고 내일은 아이들이 나를 문드러지게한다. 가만보면 나를 썩어문드러지게 하는 것들은 모두 한때 사랑했던 것들이다.
사랑이 썩으면 이런 맛이 되는가?
다들 참 우아하게도 사는데 내꼬라지만 항상 요모양요꼴이구나 싶다.
홍어는 썩어 문드러지면서 다채로운 맛을 풍기는데, 썩어가는 내 속은 어떤 맛일까? 삭힌 홍어처럼 그 꼬릿하지만 다채롭고 중독적인 맛으로 썩어갈 수 있다면 썩어가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괴롭더라도 나를 썩어 문드러지게하는 것들을 한 번 더 꼭 끌어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