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맛 떡볶이

by 이상하고아름다운



내가 떡볶이를 처음 맛 본 것은 열세 살, 서울에 올라온 이후였다. 시골 학교 앞에는 분식점도 문구점도 없었다. 코스모스가 가득한 학교 앞을 벗어나면 논밭과 들판이었다. 시골아이들은 유채꽂 줄기의 껍질을 벗겨 물기 많은 살을 씹어먹거나 해바라기 꽃을 따 씨앗을 빼서 까먹거나 사루비아 꽁지의 꿀을 빨아먹었다.


서울은 정말 별천지였다. 한 반에 60명씩 10개반, 600명이 한 학년인 것도 신기했지만 학교 앞을 나가면 한걸음 걸을 때마다 눈이 홱홱 돌아가는 풍경이 펼쳐 졌다. 떡볶이 리어카, 문방구, 뽑기 기계, 오락실. 아이들은 학교 앞 골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떡볶이 1인분에 100원인 시절이었다. 얄쌍한 밀떡 아홉 개에 오뎅 한 조각, 그리고 파 한조각이 들어가 있었다. 리어카에 실린 넓적한 철판에서 떡볶이를 주걱으로 담아주는데 아이들이 물밀듯이 밀려와도. 아줌마의 주걱질은 한 번도 갯수가 틀린 적이 없었다.



돈이 좀 있는 주말이 되면 즉석떡볶이라는 것을 먹으러 갔다. 조그만 좌판에서 파는 떢볶이와 달리는 즉석 떡볶이는 더 세련된 도시의 느낌이었다. 가격도 천몇백원 해서 애들 서넛이서 돈을 모아야지만 먹을 수 있었다. 둥근 화구에는 조그마한 불이 다닥다닥 올라오고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냄비에 재료를 넣어서 올려주는데 떡볶이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온갖 수다를 다 떨어대며 소란스레 웃었다. 즉석떡볶이에는 짜장 양념과 양배추와 쫄면 사리 같은게 들어간다. 당면과 떡이 냄비 바닥에 달라붙지 않게 불조절을 하면서 잘 저어줘야 한다. 화구에 둘러 앉아 그걸 먹으며 내가 좀 더 어른의 세계로 다가간듯했다.


중학교에 가서는 학교 앞 떡볶이집 다락방이 우리 패거리들의 아지트였다. 떡볶이, 만두, 쫄면 같은 걸 잔뜩 시켜놓고 반지를 교환하고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다. 처음 술을 마신 것도 떡볶이 집 다락방이었다. 친구의 생일이라 분식집으로 우르르 몰려갔을때. 누군가 진로 와인을 꺼냈다. 진한 보라색은 신비로웠고 그 달달하고도 씁쓸한 맛은 어른의 세계였다. 한모금씩 돌려마시며 우리는 어른 세계의 빗장을 연다고 느꼈던 것 같다.


좀 더 커서는 토요일이면 버스를 타고 신당동 떡볶이 골목으로 원정을 갔다. 디제이 부스의 잘생긴 오빠를 보며 무슨 음악을 신청해야 오빠가 관심을 가져줄까 한참이나 고민했었다. 다음에 갔을 때 디제이가 우리를 알아봐주지는 않을까 기대했지만 한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들의 피에는 떡볶이의 지분이 섞여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내 피로 말하지면 찐득한 떡볶이 국물 자체가 아닐까 싶다. 달고 맵고 새빨간 떡볶이는 청춘 의 맛, 청춘의 색이다.


떡볶이를 좋아하던 시절의 나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었고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고 찬란한 미래를 꿈꿨다.


내가 다니던 떡볶이 가게며 골목이 사라진 것 처럼 우정도 사랑도 꿈도 사라졌다.


떡볶이 좌판은 사라졌지만 사춘기 내 딸들은 친구들과 공원에 모여 앉아 떡볶이를 배달시켜먹는다. 파와 깻잎 대신 치즈를 올리고 마라소스를 섞었어도 웃음과 친구와 수다는 여전하다. 여전히 떡볶이는 청춘의 음식이다.

그 선명한 빨간색처람 아름다운 청춘들이 둘러앉아 까르르 웃어대며 떡볶이를 나눠먹을 것이다.

떡볶이 그릇에 담겨있는 발그레한 얼굴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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