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한 공룡들의 추억

by 이상하고아름다운




지금은 사라진, 옛 화양 시장 뒤쪽에는 이름도 없는 선술집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좁은 골목이 있었다.



5평이 채 될까말까한 가게마다 냄비에서는 국이 설설 끓고 나이든 여주인들이 굽은 손으로 콩나물을 무치던 곳, 누런 장판을 씌운 탁자에는 냄비 눌어 붙은 자국이 둥그렇고, 삐걱이는 길다란 나무 의자에 고만고만한 청춘들이 몸을 붙이고 앉아있었다. 그곳을 생각하면 쿰쿰한 돼지 누린내와 차갑고 맑지만 몹시도 쓰디쓴 소주 한 잔과 시큼한 토사물의 냄새가 흐릿하게 스쳐간다.



나의 스무 살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대학 입학식도 치르기 전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새내기였던 나는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처음 화양리 시장골목에 갔다. 깔끔한 새 자켓을 입고 눈이 똘망똘망한 스무살짜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삐걱이는 탁자마다 술잔이 놓이고 밑반찬으로 깔리는 콩나물 무침이 놓이기도 전 이미 잔에는 소주가 찰랑찰랑했다. 멋있어 보이는 복학생 선배가 구호를 외치고 모두 일제히 술잔을 부딪히며 소주를 들이키는 모습은 얼마 전까지 문제집에 코를 박고 있던 스무 살짜리들에겐 새롭고 신비한 세계였다. 나도 선배들처럼 손을 꺾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몹시도 썼지만 그 잔을 한 번에 비우는 것이 그 세계로 들어가는 티켓구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조금 지나자 커다란 냄비가 탁자마다 올라왔는데,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뼈들이 수북이 담겨 있고 그 위에 깻잎과 시래기가 쌓여 있었다. 흥건한 국물 속에 담긴 샛노란 통감자 몇알이 인상적이었다. 이 압도적인 비주얼을 놀라 바라보고 있자니 어떤 선배가 "이건 공룡탕"이라고 했다. 정말 냄비에 담겨 있는 뼈들은 공룡의 척추뼈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컸다. 닭다리나 돼지갈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공룡이 실재할 리 없고, 있다 해도 날마다 냄비에 담겨 나올 리도 없지만 그순간 나는 그것을 그냥 공룡탕이라고 믿어버렸다.




반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젓가락만으로 능숙하게 뼈들을 분리해 살을 발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곳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소주만은 여전히 썼다. 견딜수 없이 소주가 쓰게 느껴지는 날에는 막걸리를 마셨다. 우리들은 무책임하게 술을 퍼마시고 아무 구석탱이에서나 토악질을 하고, 서로 등을 두드려주다가 여기저기 짝사랑의 슬픔을 뿌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활동했던 풍물 동아리는 툭하면 화양시장 골목에 갔다. 주정뱅이 할머니가 장사를 하는 가장 낡은 술집이 우리 아지트였다. 들어서자마자 "공룡탕 대자요"를 외치며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마셨다. 할머니는 자주 술에 취해 있었다. 그럴때면 알아서 콩나물 무침을 떠다 놓고 순댓국에 국물을 더 부어 먹고, 냉장고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꺼내 마시고 알아서 계산을 한 뒤 돈을 도마 밑에 놓고 나왔다. 가끔은 취한 할머니가 단장의 미아리 고래 같은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며 이새끼저새끼 하며 욕하는걸 듣기도 했다. 왠지 그 모습이 안쓰럽지도 거북하지도 않았다.



그시절 우리는 술만 마셨다하면 노래를 불러재꼈다. 지금이야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면 진상 중에 진상이 되겠지만 80년대의 낭만이 조금은 남아 있던 90년대 초반에는 술집마다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우리는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대중가요, 민중가요 가리지 않고 불러제꼈다. 옆가게에서도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를 이기기 위해 더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가게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골목에 앉아서 감자탕 국물을 덜어 먹으며 노래를 부르던 시절에는 항상 세상이 억울했던것 같다. 애타는 마음을 알면서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세상의 모순,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던 막막한 젊음.




금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희망이 가득한 시절도 없건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기에 우리는 과제나 공공장소에서의 정숙 따윈 까맣게 잊어버리고 절망에 취해 비틀거렸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노래를 이해하기엔 너무 젊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노래를 이해할 시절이 오리라는 예측만으로 삶은 무척이나 절망스러웠다. 등이 굽고 손가락이 고부라진 할머니 역시 세상이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것은 다시 오지 않기에.........


억울한 사람들이 선술집에 모여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멸종한다. 얼마 전 건대 입구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화양시장은 깨끗하게 밀려 거대한 빌딩이 되었다. 돼지 냄새 나던 뒷골목도 흔적이 없었다. 공룡이 아주 오래전에 멸종했 듯, 시장 골목에서 감자탕을 앞에 놓고 노래를 부르던 젊은이들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 부르는 젊은이들이 없다.

내 젊은 날의 낭만과 절망도 화석처럼 고요히 어딘가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을게다. 누군가 먼지를 털어내고 고요히 들여다봐줄 날이 올까?


수북했던 공룡들의 추억이여. 안녕.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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