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계절은 겨울이어야 한다. 오래 녹지 않은 눈이 얼음으로 변해 걸음걸이를 좀스럽게 만들고, 희뿌연 가로등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어야 그림이 완성된다. 포장마차의 주황색 비닐을 열고 들어가면 어깨가 구부정한 남자들이 허름한 잠바를 입고 낡은 신발을 신고 투명한 소주잔을 앞에 놓고 있다.
그 낡고 남루한 남자들은 각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어두운 겨울 밤. 나는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었다. 어린 나를 포장마차로 데리고 간 사람은 아버지였다.
오줌을 누러 마당으로 나갔다가 대문을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와 마주쳤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나를 보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동네 어귀의 포장마차로 갔다.
국물이 설설 끓는 냄비에서는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유리로 된 진열장 안에는 껍질이 벗겨져 연분홍빛 속살이 보이는 정체 모를 식재료들이 엉켜있었다. 아저씨들이 어린 계집아이를 귀엽다는 듯 잠시 쳐다보았으나 이내 자신의 술잔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인 아저씨가 소면보다 두껍고 우동면보다 얇은 면 한덩이를 초록색 그릇에 던져 넣고 냄비에서 국물을 한 국자 떠 넣은 후 고춧가루와 깨, 그리고 쑥갓 몇점을 올려 내게 내밀었다. 국물에서 진한 멸치 내장의 씁쓸한 맛과 조미료 맛이 났다. 초라한 국수였다.
그런데, 고춧가루와 김가루와 쑥갓이 섞인 거무튀튀한 국물에서 알 수 없는 묘한 진하고도 깊고도 특별한 맛이 났다.
엄마나 할머니가 해주는 국이나 찌개와는 다른 국물 맛이었다. 나는 주위 아저씨들의 눈치를 보며 국수 한 그릇을 호록호록 다 먹어 버렸다.
아버지는 알 수 없는 볶음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초록색 병에서 쪼로록 흘러나오는 액체에서 쓴 냄새가 풍겼다. 아버지는 몇번이고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의 낡은 점퍼는 거무튀튀한 얼룩이져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자신의 잔과 안주만 바라보며 묵묵히 술을 마셨다.
내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발을 까딱이며 하품을 하자 아버지는 닭똥집을 시켜주었다. 쫄깃쫄깃하고 후추냄새가 솔솔 풍겨오던 쫄깃한 고기를 한 번 베어무니 짭짭할 깨소금의 냄새와 함께 복잡미묘한 온갖 맛이 입 속에 퍼져갔다. 아버지가 술병을 비우고 또 다른 병을 비울때까지 나는 닭똥집을 오독오독 오래도록 씹어먹었다.
술에 몹시 취한 아버지는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도 전에 방바닥에 곯아떨어졌을 것이다. 아버지의 술자리를 말리지 못한 나 역시 한소리 들었겠지만 내 기억 속에는 거친 국수와 묘한 국물이 새어나오던 닭똥집의 기억만이 남았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와 단둘이 보낸 마지막 시간이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평생 무능했다. 한때 돈을 좀 벌었다고 했으나 내가 철이 든 이후로는 실패를 거듭했다. 집은 점점 더 작아졌고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인생 역전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역전 같은 걸 바라지도 않는 듯했다. 일을 구하려 하지 않았고, 쉽게 술에 취하고 누구에게나 술을 얻어마셨다.
절망에 잠식당해 다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했다.
그는 로멘티스트였고 음악과 문학에도 일정 정도 조예가 있었고,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으나 경제적으로는 실패를 거듭했다. 아버지였으나 가족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다. 나는 살면서 아버지가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갔던 포장마차의 쓸쓸한 이미지때문에 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어두운 포장마차에서 나는 실패의 냄새를 맡았던 것 같다. 홀로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나이든 남자들의 굽은 등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들이며, 어느 회사에서는 높은 사람이거나 낮은 사람일테고, 아마 비슷비슷하게 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뿌연 입김을 내며 포장마차의 휘장을 젖히는 순간 그들은 누구도 아닌 그저 초라한 사내가 된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그 초라한 사람들을 나는 사랑하고 또 미워한다.
그들을 위해 포장마차의 불빛은 어두워야하고 바닥은 싸늘해야한다. 그들의 잔에 찰랑이는 건 소주가 아니라 몸 속 깊은 곳에 고여 있는 눈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