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는 그 길을 의심하지 마라
어느 날, 잘 보지 않던 EBS를 어떻게 보았는지... 그것도 두바이에 살고 있는 친구와 동시에. 세계테마기행,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만난 튀니지 편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되었다는 그곳에 꽂혔고, 한국어로 된 가이드도 제대로 없는 튀니지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영어판 론리 플래닛 한 권과 어렴풋한 이동진의 루뜨를 머리 속에 담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첫 목적지인 엘젬으로 가는 길, 우리나라 시내버스보다 100배는 불편한 의자가 장착된 시외버스를 타고 다리를 구겨 넣고 몇 시간을 달리면서도 이 낯선 곳이 좋았다. 늦은 밤 도착한 엘젬은 콜로세움이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의 로마 유적이라, 그것이 궁금하다. 더운 나라니까 살짝 게으름 피우며 느지막이 일어나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길... 뭔가 불안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콜로세움이라고 했는데, 가는 길 관광객이 한 명도 없다. 계속 지도를 들여다봐도 이 길이 맞다. 로마 콜로세움을 생각하며, 여기서부터 사람들이 장관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건 뭐지? 불길함이 최고조로 달할 때쯤, 저 멀리 콜로세움이 보인다. 그럼에도 관광객이 없다.
콜로세움 입구에 도착하고 그 비밀을 알았다. 그곳에 줄지어 서있는 관광버스들. 이곳은 배낭여행을 할 만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인들의 휴양지답게, 고급 관광버스를 타고 줄지어 내리는 사람들... 우리가 관광객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걸어 다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후 수도 튜니스에 다시 도착하기까지 일주일간 우리는 기차에서도 버스에서도 여행자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다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튀니지 사람들의 열광적인 관심을 받으며(예를 들면, 지나는 사람의 90%가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것), 그 순박한 친절함만을 마음에 남기려고 애셨지만, 슬프게도 여기에는 수많은 희롱도 포함되었다.
관광버스가 떠나고 나면, 콜로세움은 텅텅 빈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로마의 콜로세움과는 완전히 다르다. 찬찬히 이곳저곳을 누비며, 그 옛날 피비린내 나는 검투의 현장도 상상해본다.
엘젬의 콜로세움 이후에도 우리는 가는 목적지마다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곤란을 겪었다. 동양인 여자 두 명이 다니기에 위험한 곳은 아니었지만, 불편한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타임 테이블을 체크하고 기다린 버스는 3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사기꾼은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녔지만, 주변 사람들의 호의로 내 생애 처음으로 기차에 무임승차를 했고, 튀니지의 유명한 비보이도 만났다. 그리고 튀니지의 독재정치, 실업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따라서 몇 년이 지난 후 재스민 혁명이 일어났을 때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10대 때는 20대가 되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고, 20대에는 30이 넘어가면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 40대가 지금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되지 못했고, 안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불안하다. 그럴 때면, 이곳 엘젬의 콜로세움을 떠올린다. 모든 곳이 낯설었던 튀니지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첫 번째 목적지 콜로세움을 가던 길, 사람들로 북적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마주치는 사람이 하나 없는 썰렁한 시골 도시의 길을 걸으며 느꼈던 두려움. 내가 가는 이 길을 의심했지만, 돌아서지 않고 전진한 그 길 끝에서 만난 콜로세움은 로마의 그 콜로세움과는 다른 감동을 주었고, 가이드와 함께 편안한 관광버스를 타고 온 그들이 떠나고 난 후, 그곳은 온전히 나만의 추억이 되어주었다.
지금 가는 이 길이 불안할 때,
나는 그 길을 가고 난 후에 만난 콜로세움의 달콤함을 기억하며 걱정을 내려놓는다.
Trip Outsight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여행을 보통 "인사이트 트립"이라고 칭하는데, 인사이트를 목적으로 여행을 한것이 아니라 여행 후 느낀 것이라 적당한 말을 찾다보니, 인시아드의 허미니아 아이바라 교수의 "아웃사이트 : 밖으로부터의 통찰력"을 차용하여, "트립 아웃사이트 :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통찰력"으로 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