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이즘

[영화] The Giver / 필립 노이스 감독

by 이창우


1980년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하고 그는 군인이 아님에도 군법회의를 열어 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 1954년 로버트 카파가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 중 지뢰를 밟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은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동안 ‘카파이즘(capaism)’이란 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진실을 향해 개인의 삶을, 공동체를 위해 아낌없이 던진 이들은 말이 없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할 말이 많다.


그 진실을 기억하여 전달하는 자들이 시대를 이어왔다.


'진실이 최고의 사진'이라는 점을 일깨워준 세계적인 전쟁 사진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서의 생생한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로버트 카파는 1936년 스페인 내전뿐만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팔레스타인의 독립전쟁 등 많은 전쟁터를 생생하게 사진으로 남겼으며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이 마지막 그가 있었던 곳이었다. 이렇듯 많은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은 그의 정신을 빌어 투철한 기자정신을 카파이즘(capaism)이라고 부른다.
그가 촬영한 사진은 단지 하나의 기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작품의 중요한 자료로도 활용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이다. 이 작품의 첫 장면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보여주는데 바로 이 부분의 촬영 장면이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그대로 옮겨놓아서 실감 나는 전쟁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그의 사진은 너무나 생생해서 인위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였지만 그는 분명 목숨을 걸고 얻어낸 순간포착의 현장이었고 그런 만큼 그의 정신이 후세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오픈 지식에서 인용-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 말 앞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 있을까. 개인들의 감각에 의해 진실이 가볍게 무시되는 경우가 일상생활에는 숱하다. 진실은 그 자체로서 도덕적 가치는 아니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 사용에서 극단적인 엄격성을 요구하지는 않다.


심각한 경우는 바로 진실을 왜곡하려는 고의적 의지를 전제하는 거짓말이라 하겠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 이유에서 이지 논리적 이유에서가 아니지 않은가. 도덕이나 윤리는 우리의 삶을 억누르고 강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씌운 굴레가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림으로써 기쁨과 행복을 얻는 것이 도덕적인 삶이라 생각한다. 개인들이 지닌 이 잣대가 우리 안에 있었기에 한국사회의 진실들은 영원히 침몰할 수는 없었던 거다.


기쁨과 행복은 비도덕적인 상황에서는 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 자유를 충실히 누릴 수 있는 양심, 도덕에 따른 책임감을 행할 때 만나는 기쁨이며 행복인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진실은 정신을 때로 교란시킨다. 불행히도 말의 의미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게 되기도 하지만 진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신앙이 없다면 양심에 따르면 된다.

영화 필립 노이스의 <The Giver>


진실을 향해 개인의 삶을, 공동체를 위해 헌신을 하거나 희생당한 이들은 그 주검으로 말을 건넨다. 남은 자들은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기에 진실은 역사의 그늘에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전달자』에서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은 완벽한 사회를 추구하는 이들에 의해 사랑이나 우정, 인간적인 감정에 따르는 어떠한 종류의 잘못도 있을 수 없다.


완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분란의 소지를 모두 제거해 버린 사회이다. ‘기억 보유자’라는 직위를 받은 조너스는 진실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기억은 환상에 가리어진 진실이었다. 한국사회도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인간적인 감정을 제거하려 한다. 국가의 묵인에 가라앉은 자들로 한국사회의 중심은 고통스럽다.


진실을 찾아내고 이를 전달하기 위하여 인류의 역사는 궁극의 선을 향해 가고 있다. 현실에서 진실은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몽롱한 환상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억전달자들이 고귀한 감정들, 진실을 향한 울림을 따랐기에 보다 인간적인 사회는 가능하다. 완벽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영화 <기억 전달자>에서 진실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펼쳐지고 있기에 내 중심도 역시 고통스럽다. 누군가가 교묘하게 만들어 준 환상이란 것은 우리의 정신적인 심리 작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 같기만 하다.


예를 들면 ‘사회악’에 해당되거나 ‘필요악’에 자행되는 일련의 행동들이다. 그래서 환상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가능하게 하고, 우리를 주변 환경에 복종하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현실은 사실과는 다르게 진행된다는 것이 당연한 듯 사회는 굴러간다. 내가 진실을 안다 해도 의도한 거짓말을 막기는 힘들다.


2014년 11월 14일 광화문 광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물대포 직사에 맞아 쓰러져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317일을 투병하다 운명하신 백남기 농민 사건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관련 영상과 기사들이 곳곳에 넘친다. 누구라도 그의 이름 석자를 검색하면 만날 수 있는 진실이다. 이제는 정부가 그것을 은폐하고 여론의 관심을 쏠리게 하려는 의도로도 생각된다.


9월 한 달 동안만 손에 꼽을 정부의 무능한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난다. 재난에 대책 없고 사드 배치에 외교 전략 없고, 공권력의 과잉 대응으로 불통이다. 결국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의 생명을 짓밟았다. 이젠 부검을 해야 하는 '변사'란다.


[출처] 오 마이 뉴스


그러나 그들이 만드는 권력 환상에는 끝이 있으며, 거짓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나온 역사에서 저질러진 거짓된 환상으로 진실을 숨기기에 힘을 쏟는 무리들이 늘 존재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실을 숨기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앎’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그게 문제다.


다른 무엇보다 환상과 두려움이 만나면 사회를 좀먹고 변질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진실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차단시킨다는 것이다. 나와 당신이 '기억 전달자'로 진실을 알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처럼 진실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회피하도록 사회적 압박과 조작을 해 온 상황에서 출몰하는 현상들은 개인의 정체성마저 뒤흔든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스스로를 현실에 잘 적응한다는 이유로, 또는 ‘무지(無知)’를 내걸어 진실을 외면해 버리는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실에 대한 갈구는 곧 자유와 해방의 획득과도 상통한다. 그와 반대로 누군가 만들어 덧씌운 환상은 정신적인 노예상태를 지속시킬 뿐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은 욕망에 충실하고 싶다.


진실을 숨기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앎’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해 왔던 것은 나의 망각이었다. 진실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차단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사회적 성공을 좇는 환상 주입으로 사회를 좀먹고 변질시키는 역할을 한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기억전달자여야 한다. 카파이즘은 기자에게만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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