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언론학의 논리』손석춘
닫힌 사회에서 신세대와 기성세대들의 교류는 더없이 간절한 만남이다. 그 만남을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가교의 역할이 바로 ‘공부’이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진행되는 시간이라면 길에서, 책과 놀이, 일하는 중에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너무도 당연한 듯이 경직된 학교 문화의 길들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나이 듦이 있는 것이고, 일상에서 멀어졌을 뿐이다. 일단 공부가 시작되면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 줄 수 있고 그런 관계 맺음은 건강한 세대 간의 소통으로 이어지게 한다.
노년은 공부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갈 수도 있다. 현재의 내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성찰하며 갖게 되는 삶의 지혜를 어린 세대들과 나눌 수 있다. 또한, 내 앞에 있는 어린 세대들을 통해 기성세대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배우기도 한다.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은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너무 빨리 지나온 시대의 시행착오들을 바꾸어 나갈 전환의 시간을 맞고 있다. 이 사회의 굳어진 불통과 비상식이 상식을 밀어내는 상황들, 부정의가 정의를 매도하고 사실이 개인의 무지함으로 인해 정당화되는 것들을 알아갈 노력을 해야만 한다. 정보가 넘치는 현대사회에서 그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힘은 스스로 갖추고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학습이란 명분으로 자격증이나 개인의 스펙을 위한 활용의 실용적인 공부가 아닌 서로 다른 연령대의 기운들과 지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삶을 향유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내디디면 그것으로 충분할 시작이다. 사회에서 획일적이고 강제된 학습이 아니라 혼(魂)과 창(創)으로 서로 통(通)할 수 있는 벗으로 함께 하는 나눔을 의미한다.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급진적'인 행동이다.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치적 삶을 가르치며, 진정한 '힘'이 존재하고 있는 공적 세계로 이끌어 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어디 인문학뿐이겠는가. 모든 학문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회는 아름다운 동행의 사회이며 세대를 초월하는 벗들과 생명력을 나누는 사람들의 건강한 웃음이 넘치는 사회이다. 상생의 의미는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세대 간의 유연한 나눔으로 각각의 개인들이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공동체의 ‘나’로서 거대한 권력들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 상식과 소통을 할 수 있는 ‘호모 아카데미쿠스(공부하는 인간)’로 진화해야 할 때이다. 너무 늦었다거나 너무 멀다고 주저앉기 보다는 지금부터라도 털고 일어나면 되는 일이다.
나는 지속해서 저널리즘이 사라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자각을 위한 노력을 강조해 왔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이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고 시민사회라는 허울 좋은 말은 끝내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토로해 왔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차분하게 논리적인 실제 자료들을 꼼꼼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저자는 ‘아기장수 설화’를 통해 민중의 좌절감이나 기대감을 읽는 틀을 벗어나 ‘내적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을 말해준다. 평소에 내 생각들이 이 책에서 발견되면서 개인적으로 힘이 되기도 했다. 저자는 민중 언론학의 한 방법론으로서 ‘설화의 내적 커뮤니케이션 탐구’가 개개인이 스스로 죽였을지도 모를 ‘내 안의 아기장수’를 살려내는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나 또한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면서 얻은 것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제안한 것은 저널리즘의 위기 극복을 위해 ‘저널리즘 윤리’를 강조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실종된 ‘윤리 의식’이 다시 생활 속에서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언론인의 윤리의식은 곧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저널리즘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보여주는 부패에도 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현실에서 후 세대들에게 솔선수범 없는 사회 윤리는 지극히 형식적인 담론에 그칠 뿐이다.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의 원인에는 ‘사람’이 ‘자본’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런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시대이기에 저자는 정보혁명의 시대에 한 개인이 시작할 수 있는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민중에게 요구한다. 저널리즘의 윤리의 보편적 확산을 위해서 맥 콜램의 ‘풀뿌리 저널리즘’을 말하며 모든 사람이 저널리스트가 되는 시대임을 말한다. 정보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제언이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바란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 또 하나의 중요한 명제를 확인하게 해 주었다. 1인 미디어 시대는 이미 퍼지고 있는 현실이다. 대안 언론을 비롯하여 저널리즘의 가치에 기자 정신을 지켜내는 참 언론인들이 치열하게 활동 중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학계의 돈키호테’로 자처한 저자의 모습, 사회 지식인의 책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아기장수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시대는 내게서 시작될 수 있는 작은 혁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참고] 아기장수 설화는 푸른비의 매거진 [철학은 나에게 말 걸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