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 대한민국 망한다 / 박승옥
여섯 가지의 상식으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 주며 제시한 근거들은 대개가 개인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이다. 저자 박승옥의 말처럼 이 책의 주장이나 의견은 때로는 낯설기도 했고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4년 전 이명박 정부에서 마주하던 황당한 민주주의를 겪으면서 이 책은 그저 ‘앎’으로 한동안 느낀 누군가의 고통으로 지나친 책이다. 그런데 현 정부가 4년이 지나면서 ‘대한민국 망한다’는 글자가 살아 움직인다.
망.한.다.
풍요로운 산업문명을 가능하게 했던 석유, 가스, 석탄, 우라늄 등의 에너지 자원이 아주 빠르게 고갈되어 가고 있기에 건전한 상식을 갖춘 이라면 대한민국은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석유를 대체하는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그 위험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또한 망국으로 가는 시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상식 중 하나이다.
석유 자원만이 아니라 모든 자원은 고갈되고 있으며 저자는 21세기, 거의 모든 자원이 사라질 시기에 차이만 있을 뿐이며, 정점의 시대는 곧 거대한 투기시장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원전 마피아들이 판을 치고 있는 대한민국은 망하기 위해 원전을 계속 건설하고 유지한다고 보면 된다.
세 번째 상식은 사람이 제 삶의 터전을 파괴한다는 것을 말한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배출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날마다 4,000만 배럴의 석유를 실은 유조선들이 오대양을 누비면서 야기하는 유출 사고와 쓰레기들은 바다를 파괴하고 해양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방관한다. 사람이 숲을 깡그리 부수며 만들어진 종이의 2/3가 포장지와 휴지 등의 일회용품으로 쓰인다.
숲의 파괴는 우리의 미래를 담보로 한다는 상식을 일깨워 준다. 대기의 오염은 자명한 것임을 세계 보건기구는 매년 300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사람과 동식물을 죽이고 있는 독성 화학물질의 목록은 끝이 없다고 한다.
끔찍한 식량 위기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네 번째 상식은 우리를 경악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실상이 대한민국에도 가까운 미래에도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은 최근 정부의 쌀 수입 전면 개방 선언에 이은 식량 주권 포기에서 알 수 있다. 전 세계 농업 파괴의 주범, 미국과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 세계 최대의 비상장 기업 ‘카길’이 있다. FTA가 죽인 필리핀과 멕시코의 농업처럼 대한민국의 농업도 미국의 식량 무기화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 우루과이라운드의 주 손님으로 있다.
세계는 지금 미래의 식량 생산의 중심이 될 종자주권 확보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독일의 제약업체인 바이엘이 세계 1위 종자회사인 미국 몬산토를 인수한다고 한다. 이밖에도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종자전쟁을 벌이는 것은 왜일까? 가까운 미래에 세계 지각 변동은 '식량'이라는 키워드라 한다. 결국 종자의 공급력을 확보한 국가와 기업이 강력한 지배력을 가지게 된다. 식량 안보 차원에서 종자 주권은 생존과 직결된다. 현재 한국은 농산물의 67%를 외국에 로열티를 내고 씨앗을 사들여 재배한다.
청양고추 종자의 소유가 다국적 기업 몬산토라는 사실은 한국의 현실에 드러난 농업 현실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원래는 홍농 종묘가 개발한 종자였지만 외환위기 당시 이 회사가 미국의 다국적 기업 몬산토로 넘어갔다. 이외에도 토종 종자기업 선두 주자들이 줄줄이 외국 기업들에 팔렸다. 종자 관련 로열티를 연간 수백억 원을 지급하는 수준인데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다. 세계는 종자전쟁 중인데 국내 기업들은 온실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 식량이 안보라는 의식조차 없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할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자주 던지는 질문이었다. 국가의 시대가 낡은 이념의 날 선 시간으로 지나왔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대는 거대한 국가에서 공동체의 삶으로 전환되어 가는 시간이다. 다섯 번째의 상식, 극단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대규모 환경파괴를 불러일으켰고 자본주의를 맹신하면서 기업의 자유와 권리를 사람보다 우선하며 지나온 과정의 결과물은 1%를 위한 99%의 희생을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민주주의의 근거지가 공동체라는 상식을 저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마지막 상식은 우리가 노예라는 사실이다. “진보는 환상이다.”라는 저자는 역사에 진보와 발전 법칙은 없다고 말한다. 세계의 역사는 진보라기보다는 야만의 시간을 축적하여 더욱 발전해 가는 학살의 시간이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표지’를 발견한다. 모두가 원하는 ‘진보’는 너무 더디게 오고 있다는 희망을 만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희망을 담았기에 읽어가는 동안 근거들이 즐비한 현실에 숨이 막혔지만 절망할 수 없었다. 포기할 수 없기에 다시 이 책을 펼친다.
지금의 풍요는 성장과 개발이라는 재앙 속에서 탄생했다. 특히 한국사회는 성장이라는 말을 국가가 내걸던 1950년대 후반부터 쉬지 않고 앞으로 빨리 가기 위해 수많은 목숨을 짓밟았다. 그 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2016년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라면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상식이 사라진 시대, 민주주의가 껍질로 박제된 시간을 경험하고 있을 거다. 이런 시스템이 강대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권력의지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지금의 이 혼돈을 뚫고 갈 수 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묻는다. 먼저, 근대 산업주의를 쓰레기통에 버리자고 말한다. 이어서 자본주의 근대 경제학도 쓰레기로 버리자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상부상조, 공동체 경제를 선택할 수 있음을 말한다. 풀뿌리 기초공동체의 직접민주주의, 직접 행동이 없으면 정당정치와 대의제 민주주의 아래에서 인민주권은 절대로 인민에게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붕괴의 시대에서 동무, 인민이란 말을 되찾아야 사상이 꽃핀다는 붙임으로 글을 맺는다. 말의 프레임에 갇혀 진정한 의미의 ‘말’이 힘을 잃은 시대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