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책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배우가 연극을 통해서, 그 악기가 갖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 신분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을 다룬 작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합니다. 이 작품은 남성 모노드라마로 상연되어 현대인들의 소외를 공감하게 하기도 했지요.
이 작품이 건네는 메시지가 이토록 절박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덩치만 컸지, 별로 주목받지 못하며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외된 악기 콘트라바스는 평범한 사람들을 닮았나 봅니다.
두 해 전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의 야외 공연장에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테크노밸리 입주 직원들과 인근 주민들을 위한 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공연이었지만 기본적인 안전관리를 하지 않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사고 당시 아이돌 그룹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이를 보려던 관람객들이 야외 환풍구 위에 올라갔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평범한 이들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관리는 늘 외면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죠.
평범한 시민들이 소외되는 절망감을 0416참사에서 만났는데 그 암울함이 도대체 멈추지를 않았죠. 그 후로 세월호 참사는 진상 규명도 안 된채 표류 중입니다. 잇다른 안전 사고가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 대부분은 사회약자의 몫입니다. 내팽겨친 존재의 무력감을 현 정부만큼 처절하게 경험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살아온 시간동안 처음 대면하는 감정이네요.
미덕과 악덕을 분주히 오가는 자본주의의 동력인 탐욕처럼, 겉으로만 거대해 보이는 콘트라바스는 사실은 고꾸라진 우리들의 초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자신을 비대하게 만든 사회체제에서 그 존재감은 아주 쉽게 스러져 버립니다. 무엇이로든 대체될 수 있게 되는 거죠.
콘트라바스 연주자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이기에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아주 경쾌하게 대사를 말한 다음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자못 흥분된 태도로 방안을 이곳 저곳 다니기도 하죠.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가 싶다가는 소리를 냅다 지르기도 합니다. 그의 행동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나를 대신해서 연기를 합니다. 권력자들은 시대의 변천과 상관없이 역사의 고비마다 이름을 바꾸어 가며 늘 자신들과 맞서는 이들을 치워버리려고 했지요.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것일까요. 자유롭다는 것은 현재 스스로 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세상모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세상 안에서 살아지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가을비가 땅으로 차갑게 흐릅니다. 한국사회의 긴 겨울을 맞을 준비에 더 굳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 옵니다. 계절의 흐름이 모두 사라진 시간들, 정부의 무관심 속에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사고들이 줄을 잇겠지요.
언론을 이용하여 선한 사람들을 마구 왜곡하는 시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 콘트라바스의 원초적인 저음으로 흐릅니다.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악기, 한 사회를 지탱해 나가기 위해 낮은 곳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 한 모금 목을 축이고 이렇게 말합니다. 콘트라바스의 삶은 자신이 수고한 만큼의 댓가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랑할 수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제가 한 현을 가지고 맨 밑에서부터 계속 위로 연주를 할 때는 자세를 열한 번이나 바꾸어야만 합니다. 힘이 제법 많이 드는 운동이지요. 그리고 현을 누를 때는 아주 힘있게 눌러 줘야만 합니다. 여기 제 손가락 좀 보십시오! 손가락마다 각질이 다 입혀져 있고, 이것 좀 보세요. 지문들은 아주 뻣뻣해졌습니다. 이 손가락들로 저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삶이라는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은 어디에서 빚어지는 걸까요.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기본을 이루는 구성원들은 누구일까요. 결코 높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낮은 소리로 삶을 소리내어 울림으로 제 역할들을 해내려는 콘트라바스는 한국사회 민중들의 모습입니다.
고단해도 묵묵히 그 무게를 짊어지고 천천히 움직여 연주회 한 켠에 조용히 자리를 잡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그 존재감을 외면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고고한 척 뽐내는 것을 자랑삼는 바이올린 소리로만 울리겠지요. 불협화음은 지휘자의 갖추지 못한 역량을 드러내는 그 증거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