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결정적 역할의 스윙 보트는 시민

[영화] 스윙 보트 /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

by 이창우


미국 대선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와 힐러리 중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지 대략 난감한 입장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은 2015년 6월에 쓴 글이었죠. 그때의 느낌을 바꾸기 싫어서 ‘ ~야’ 체로 두려고요. 이번 미국의 대선 과정을 보면서 대선 결과가 몹시 궁금합니다. 비상식이 상식을 짓밟고 자본이 사람을 짓누르면서도 멀쩡한 듯 지나가는 세계입니다. 지구 영웅전설의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어디쯤에 머물고 있을까요? 그동안 한국의 바뀐 정치 지형에서 트럼프든 힐러리든 한국의 문제가 급하니 구경만 할 수밖에요. 하지만 이런 상상은 또 어떨지요.


2008년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의 영화 <스윙 보트>


행운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그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고 생각해. 행운의 남자라 불리는 사람, 그는 ‘영웅’이라고도 불린다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던가. 그의 목숨은 네 잎 클로버 덕분이었다고 하거든. 일종의 클로버 변종인 거지. 어찌 생각하면 영웅은 보편적인 상태의 인간 변종이 아닐까도 싶네. 네 잎 클로버가 의미하는 게 ‘행운’이라는데 그 행운을 온몸으로 받아낸 영웅이니까. 그런데 그 행운이 오히려 그를 불행하게 한 것은 아닐지 모르잖아.


현대 사회에서도 종종 벌어지지. ‘로또 복권 당첨’으로 ‘인생 역전’이라는. 하지만 그 후일담은 잘 전해지진 않거든. 결국, 행운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의미도 되는 거지. 다만 그 행운의 크기가 얼만큼인지는 개인적으로 다를 것이고, 그 행운을 자기 삶에 얼마나 잘 스며들게 하는 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거든. 자신을 행운아로 지칭할 수 있다면 내 생각으로는 그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다른 이보다 더 누릴 수 있다고 본다는 거야.


미국 뉴멕시코주의 작은 도시 텍시코에 사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는 현재의 나에게 꽤 재미있는 서사를 들려주기도 하더라고. 어른 세대가 무기력해지면 어린 세대가 현명해질 수도 있어야 세상이 바뀌거나 할 것 같거든. 만약 두 세대가 그렇고 그렇게 안주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내일은 뭐,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 같거든. 이런 거지. 내 세대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가리키는 사회 문제의 근원을 알아차릴 생각도 못 했을 때 일어나는 일들 말이야.


우습게도 역사는 그런 다수의 사람 편에서 반칙을 계속 해대거든. 그 진실을 알았을 때 어찌할 수 있을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인데 말이야. 내가 나아갈 시간의 방향을 되돌려 고쳐놓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는 거잖아. 그래서 이건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어린 세대를 주시하고 그 세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싶어 한다는 거지. 물론 그 말을 알아먹을 어린 세대도 흔하지 않기에 고역인 거라고.

이 영화에서는 어린 세대가 반짝이는 지혜를 보여 주곤 해. 그 지혜는 어린이다운 모습이기에 더 감동적인 거야. 아빠보다 더 어른스럽게 현실을 직시하고 감당해 내 거든. 우린 그런 어린 세대를 애늙은이라고도 하던가? 하지만 애늙은이가 많다면 지금보다는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애늙은이는 무기력해지지는 않을 수 있거든. 그의 가슴엔 ‘내일’이 꽉 들어차 있거든. 그것이 자기만을 위한 것이라 해도 말이야.



“오늘, 잊지 마.”
“그래, 오늘… 뭐였지?
“선거일이잖아. 시민의 의무라고.”
“시민의 의무? 그런 헛소리는 어디서 배우니?
“애버너씨 한테서.”
“그럼, 그 여자 멀리해라.”
“우리 선생님이라구.”
“내가 한 마디만 해 주지. 투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마치 네 뜻대로 될 것 같다는 기분만 들게 할 뿐이지. 누구한테 투표를 하건 우린 보험료도 못 낼 형편이고… 네가 아프면 또다시 내 피라도 팔아야 할 거야.”
“애버너 선생님은 모든 투표가 중요하고 그건 사회적인 약속 이랬어.”
“사회적인 약속? 그 선생은 완전 엉터리구나.”


운명이 있다면 말이야, 이런 경우가 될 거 같아. 바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일. 우리에게도 그 행운이란 게 있었다면 2012년 대선을 다르게 집계했을 수도 있는 건데 말이지. 안 그래? 봐, 메르스가 난리를 치잖아. 대통령도 난리를 쳐.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다가 결국 주저앉아 이제는 안전 홍보 대사로 다니시더군. 난 아무래도 인간이 온실 종보단 야생 종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봐. 일반화의 오류라 해도 온실 종은 웬만하면 공직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거든. 주변에 민폐 끼치는 거지 뭐.


온실 종은 전 세대를 아우르기가 너무 벅찰 거란 말이지. 특히 젊은 세대의 날개 끝을 자르는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대부분 자기 삶이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원천봉쇄의 오류’를 저지르곤 하거든. 온실 종의 특징이기도 해. 자기가 본 것밖에는 아예 관심도 못 두거든. 요즘 하는 말로 “꼰대질”말이야. 이 영화의 어른 주인공인 버드도 마찬가지였어. 매일의 노동과 그 고단함을 풀어주는 것은 알코올이야. 그래, 우리 사회의 늦은 저녁 풍경일 걸. 아니면 좋고.



속박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번영으로 번영에서 만족으로 만족에서 무관심으로 무관심에서 다시 속박으로, 우리가 이런 역사에서 순환 고리를 깨야만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작은 도시 텍시코에서 선거 시스템의 착오로 선거법에 따라 버드에게만 10일 안에 재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주거든. 진짜 극적이지? 하지만 그건 어린 세대인 그의 딸의 부정과 전력 차질에 의한 오류였어. 뭐, 정당화될 수야 없겠지만 ‘미필적 고의’는 아니니까. 버드에게 주어진 이 한 표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공화당 소속 현 대통령과 차기 대권을 노리는 민주당 대선 후보 중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를 결정하게 된 거야.


전 세계의 매스컴이 버드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양측 대선 캠프는 버드만을 위한 대선 캠페인을 펼치면서, 버드가 사는 작은 마을은 수많은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게 돼. 선거란 이겨야 하는 것이라지? 본래의 선거 정책은 치워지고 버드의 관심으로 표를 얻을 수 있는 날라리 정책을 급조하는 거지. 어때? 꼭 3년 전 그때를 회상하게 하는 장면이더라고. “경제 민주화”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20만 원 지급” 따위 말이야.

자, 너에게 이런 기회가 온다면 행운일까? 그 행운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 잊지 마셔. 그래서 버드도 밤새 머리통 싸매고 공부하거든. 그동안 무관심했던 사회의 문제들을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야. 그런 걸 거야. 지금 일어나는 문제의 본질에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다면 행운 따위는 기대하지도 말아야 해. 그냥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해. 개같이 벌고 정승같이 쓴다고? 웃긴다는 거 알지?


너에게 대통령을 결정할 단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행운이 올 수도 있다면 어떻게 그 행운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을까? 오늘은 이 생각으로 잠을 설칠 수도 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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