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실험하다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by 이창우

삶에서 불행의 요소는 다양하다. 그 불행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약간의 소망이라는 것이라 한다면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처절하게 슬프다.


이 책은 페터 한트케의 1972년 작품으로 단편 두 작품이 있다.


하나.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우연성이 빚은 결과일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든 가능하다. 탄생과 죽음은 그 모양새가 다를 뿐 자기 의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탄생 이후 어떤 삶을 지나왔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에게 죽음이 자연스럽기가 어렵다. 더욱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일 경우 죽음을 바라보는 가족에게는 대체로 불행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게 자연스러운 감정 같다.


자연스럽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수면제 과용으로 죽음을 맞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주인공은 건조하다.


이미 어머니의 불행한 삶은 그에게로 전이된 것은 아니다. 그는 어머니의 삶을 대체로 관찰자가 되어 서술한다. 그에게 어머니는 아무런 울림이 없다. 그녀의 죽음으로 비로소 시선을 갖는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삶이 재발견되기도 한다. 죽어야 존재감을 기억해낼 수 있는 개인으로 살다가 그렇게 떠난다. 가족을 이루고 살아오면서 쌓인 개인의 슬픔이 그렇게 내게로 젖어든다.


둘. <아이 이야기> 페터 한트케


이 작품에서는 탄생이 건네는 마음을 담았다. 다시 성장한 자식이 부모가 되어 아이를 바라보며 만나는 세계를 에세이처럼 풀어놓는다.


그의 생각엔 아이가 이 세상에 만족스러워하며 기꺼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달리 특별한 점은 없지만 그냥 아이라는 사실이 밝은 빛을 발했다.


작가가 전하는 이 문장은 출생 당시 찰나의 감정이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그 순간 가득 채워진 그 빛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거의 모든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징후는 아이 탄생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과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마주치는 굉음이다.


지나온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 마련이어서 뇌는 알아서 자기 합리화에 적극 가담하기도 한다. 육아에 관한 트라우마가 없는 경우의 수는 거의 없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는 또 다른 양상이 펼쳐져서 아이를 '없는 존재'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기꺼이 다른 존재로 아이 곁에 있게 된다. 그 사실은 선물이기도 하지만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이어지는 현재이다. 혈연 가족이란 다른 존재로서 이어지는 '나'를 마주하는 공동체다.


나에게서 끝날 것인지 어느 날 또 다른 존재로서 나와 마주침을 이어갈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이기는 하다. 결혼과 육아는 더욱 진지하게 직면할 선택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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