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란 진실이라도 / 박완서 에세이
30년 후에 태어나 살아온 사람이 박완서의 작품을 읽으면 마주하는 현실이 소설로도 가능한 삶이라는 점을 매번 발견한다. 결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작가의 삶에서 번지는 현실을 살아내는 방법으로 선택한 글쓰기.
나와 같은 삶의 방식, 삶 기술이라 할까.
책장을 열면 처음 만나는 글이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이다. 작가와 소통한 나는 글 속에서 '내가 먹은 마음'을 발견하고 울컥한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내가 먹은 마음에 수많은 알갱이들이 스르르 무너져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오랜 세월 꾸역꾸역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알갱이 하나하나 온전하게 남은 것이 있다.
바람처럼 이 땅을 스치고 떠나갈 즈음 내가 먹은 마음의 알갱이 중 제 모습을 지켜낸 알갱이가 있을지는 모른다. 작가의 알갱이 하나가 내게로 와 생명으로 꿈틀거린다.
5월 하늘은 푸르다. 그 하늘이고 바람은 초록빛으로 손짓한다.
모두가 제 갈 길을 찾아간다.
내가 마음먹은 알갱이 하나에 의지하며 깊은숨을 내쉰다. 깊고 푸른 밤에 제 빛을 잃지 않도록.
202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