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40.

특별한 친구

by 이창우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커다란 곰인형이 있다. 십 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특별한 친구 자리를 차지한다. 내 곁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내준 친구다. 너덜너덜하고 긴 세월에 제 빛을 잃어 꼬질꼬질, 입도 사라진 곰돌이를 이제는 어른이니 치울 때도 되지 않았냐고 듣는다.


특별한 친구가 더러워지고 낡았다고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도 싫다. 어릴 때에만 곰인형을 가지라는 법도 없다. 어른이 되면 왜 동물인형과 지내면 안 되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내게 특별한 것은 내 감정이고 그 마음을 버릴 생각도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내게로 그림엽서를 잊지 않고 우체국에 들러 부치는 사람. 그가 내 특별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림엽서를 보내는 마음이 어떻든 내가 특별하게 만지작거리며 몇 번을 읽어내니까. 그 친구가 가는 곳으로 뒤따르는 나도 그 옆에서 같이 긴 여행을 하고 있나 보다.


줄을 매어 늘어가는 그림엽서를 한쪽 벽에 나무집게로 걸었다. 오늘은 그것들을 오래 바라보면서 웃는다. 그저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재현이가 거닐었을 거리가 눈앞에 펼쳐지고 그 옆에 있는 나도 재잘거린다. 재현이는 보통 20대와는 달랐다. 사실 나와는 많이 다르다는 어렴풋이 느끼던 감정 외에는 없다. 우리는 어떤 우연으로 스물에 만나 세월 따라 낯설지 않은 이름을 부르며 흘러온 셈이다.


어쩌면 친구란 내게 부족한 것을 메꾸어 줄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게 없는 것을 그가 한 장 그림엽서로 채우고 있다. 금지도 선희도 정윤도 나와 다르다. 살아가는 방법도 선택도 개인마다 다르지만 굳이 그들과 내 공통점이라면 선의로 세상을 마주하는 정도일 것 같다. 보통의 존재들이 가진 마음씨다.


결국 내 친구라고 부를 사람들은 나처럼 보통 사람이다. 그럼에도 눈에 띄지 않게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것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속하나 보다. 금지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친구이고 보니 나는 어지간히 복도 많다. 재현이 바라보는 세상 어디쯤 나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 슬그머니 웃는다.


그림엽서가 도착한 날은 온통 이런 생각으로 하루가 지난다. 한편으로는 정윤이가 보내는 소식들에 응대하는 게 지겨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별 얘기도 아닌 데 너무 자주 소식을 전한다. 어련히 잘 있을까. 일하는 시간일 텐데도 상관없는지. 연애는 이렇게 이어가야 한다는 거야? 나는 피로감으로 결국 보내고 말았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두지 않겠니?


전화벨이 울린다. 말하기 싫을 때는 어찌해야 하지? 전화기를 무음으로 바꿔놓는다.


[브런치 북] 수상한 책방 0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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