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은 힙하다
문득 내게 남아있는 시간에서 지금이 제일 젊을 때라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살아 나오면서 엄청난 일이 없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순탄한 삶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내 기억은 윤색하는 일을 잘하면서 포장하기에 최적화된지도 모르겠다. 같은 상황이 내 기억과는 다르던 일도 꽤 많다. 나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은 약간의 윤색 작업을 통해 저장되는 뇌작용이 나쁘지 않다.
멀티가 잘 안 되는 내게는 텍스트가 힙하다. 정보의 패턴이 자리 잡히면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텍스트를 접하게 된다. 기존에 알았던 사실로 선택한 일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어떤 의미에서 위기이다.
내게 위기의 주기는 약 2~3년 주기였는데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앞당겨지고 있다. 다행이다 싶은 것은 그런 위기를 기회라고 여기며 발상전환하는 데 이력이 붙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월을 애도하며 보낸 내게 위기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바뀌어버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위기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내게 꽂힌 마음이었다. 요란스럽지 않게 흐르다 멈추고 다시 흘러가려는 11월을 맞는 담담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