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창. 통.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이지훈
이과계열에 줄 선 주변인들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었냐고 하도 묻길래 하도 많이 들어서 지겹다고 했더니 꼭 읽어야 될 책을 안 읽는다고 한 방 날린다.
"편파적이시군요."
“안 읽어도 알 것 같은데, ‘총’은 무기를 말하는 것이니 유럽제국의 역사가 침탈임을 말하는 것일 테고, ‘균’은 아메리카 대륙의 멸망을 초래했지. ‘쇠’는 기술발전에 의한 힘을 대변하는 거잖아. 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사실은 말싸움에 불과했다. 과학도들의 인문학적 상상력의 부족함을 늘 떠들면서 이런 수고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내가 민망했다. 그래도 별로 읽고 싶지 않아서 꼼수를 부려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KBS1에서 방영한 <총, 세균 그리고 강철>3부작을 한 카페에서 찾아내어 보았다. 결국에는 책을 구입해 읽어내야 했고, 최근 휴대폰의 화면을 보고 나의 상상력은 다른 시대의 시작을 생각한다.
2014년 3월이었다. 서울대 도서관 대출도서 6년간 1위! <총, 균, 쇠> 단독 50% 할인. 알림 문자가 여러 번 뜬다. 그래, ‘서울대’가 들어가면 잘 팔리는 마케팅의 한 광고 문구이다. 특히 베스트셀러를 차지할 때면 자주 보인다. 약간 심술이 도지면서 서울대 나와서 차지하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을 한 번 보라지? 별로 자랑스러울 것도 없음에 뭘 그리 떠드냐고 혼자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내 심리 저변에도 학벌에 대한 강제된 약자의 심리가 있어서라면 그건 개인들 마음대로 생각하시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거다. 이제 <총, 균, 쇠>를 읽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만 할 것이고, 언젠가 이런 광고가 뜰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순전히 내 바람이다.
“혼, 창, 통”이 서울대 도서관을 점령하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엄청난 판매량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독서환경을 생각해 보면 전공자들이 읽기도 녹록지 않은데 독서력이 뛰어난 국민들이라는 것일까. 이 책도 2010년에 '올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경제·경영서' '가장 장기간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머문 책' '한국경제 소비자 대상'…. 이토록 현란한 타이틀로 장식했다.
그러나 책이 많이 팔린다고 다 읽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 책의 이면이 사회의 현상으로 등장하기까지의 시간은 추측조차 어렵다고 본다. 다만 이 광고 문자 덕분에 계속 떠오르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며, 적어도 개인적으로 재독 할 기회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저 마음에 담긴 기억들을 다시 꼼꼼하게 정리해볼 의욕이 생긴 것만큼은 인정한다.
2010년 2월에 초판이 나온 <혼·창·통>의 저자 이지훈은 프롤로그에 열 장 정도를 할애한다. 왜, 지금 ‘혼·창. 통’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그 당위성들을 짚고 있다.
인류가 탄생할 때부터 우리와 함께 해 온 그것, 그러나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 그것. 그 지혜는 3가지 키워드로 구성된다. 혼魂·창創·통通이 그것이다. 이 셋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본연의 의미를 다하고 시너지를 발휘하는 곳에서, 우리 삶의 결실을 맺고 조직은 찬란한 아우라를 발한다. 이 셋이 꽃피는 곳에서 위기는 기회로 모습을 바꾼다. 두려움은 희망에 길을 내어준다.
1. 혼(魂)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며,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물음의 과정
출발은 ‘혼’ 에서부터인데 혼은 꿈이며 비전이며 신념이기에 하는 일에 목적의식, 소명의식을 가지는 것이라 말한다. 혼은 나침반이자 시계라고 말하며 저자는 혼이 있는 사람과 조직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돌파하려는 모멘텀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보다 큰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혼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지금을 살아가는가.
지난 정권에서 늘 소통을 강조하던 시기에 이 책은 나를 좀 더 사회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데 힘이 되었다. 내 안에 머물고 있는 가치들이 세상을 향해 드러나질 수 있기를 욕심내게 하는 그런 사회적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기 위해서 나는 감히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게 되었다.
헌법을 수호하고 정부는 직무유기 상태로 국민을 조롱하고 있다. 국가기관을 믿을 수 없는 불신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장하고 싶어 진다. 이런 나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내 삶의 가치를 위한 욕망은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를 바라보는 날 선 시선과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의 충족을 위해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는 대한민국을 바란다.
도대체 ‘현실정치’는 무엇이고, ‘정치’는 무엇일까. 현실정치라는 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보여주는 거대 여당으로 인한 ‘말’로만 넘치는 정책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현실정치는 힘이다.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서 시민들의 삶은 휘청거리며 갈 길을 잃게 된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국민이 주인인 국가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그 체제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공부하며 교육을 받았어도 공교육에서 자본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내 시대만 그런 거야? 나의 기억력을 믿을 수가 없어서 현재 교육 중인 내 주변인들에게 만나면 물어봤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그것도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 무지 고민하고 뜸을 들이다가 말한다.
"음, 아,..... 자기가 일한 만큼 번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이었다. 그래서 되물었다.
"그럼 이건희는 일도 별로 안 하는데 그렇게 많이 벌어? 난 그 사람만큼 벌려면 죽을 것 같은데. 가능해 보이지도 않아."
함께 있던 많은 이들이 그야말로 두 눈만 끔뻑거리며 침묵을 지켰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정치와 우리가 생각해 내는 정치와는 너무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그럼 현실정치가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 거지? 진보도 좋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고, 사회복지도 잘 되게 하는 거지 뭐. 이런 우리들이 지향하는 소중한 가치들은 과연 정치에서 실현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거였다.
정치는 그야말로 바르게 잘 다스리는 데서 출발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게 바로 정치 아닌가. 그런데 '현실정치'는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 남용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역사적 존재로서 인식하기를 스스로 부정한다. 그리고 공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권력의 부역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점유한 정치라는 것이라 정리가 된다.
자본과 정치가 유착되어 진행되는 소수의 자산가들을 위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날로 먹으려는 게 현실정치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정치’가 진짜 ‘정치’가 되려면 가장 빠르게 일어날 변화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 내가 살아있을 때 사회복지국가의 시민으로 좀 더 살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으로 연결 가능해진다. 그 욕망을 위해 나는 아주 정치적인 인간이 되라고 주변인들에게 말한다. 현실정치를 넘어서야 우리가 바라는 '정치'가 작동될 수 있다.
2. 창(創)은 늘 새로워지고, 늘 소통하는 것, 통(通)은 서로 통하는 것
혼이 있으면 다음엔 ‘창’이 있다. 창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혼이 씨를 뿌리는 것이라면, 창은 거두는 것이다. 창은 실행이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과정이다. 익숙함을 뒤집어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노력이며 늘 “왜?”라고 물으며 새롭고 어려운 길을 갈 때에야 비로소 창이 싹튼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사회에 물어야만 한다. 내가 왜 성실하게 일하고 소박하게 사는데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가? 무엇이 날 불안하게 하는가?
저자의 글처럼 익숙한 것을 뒤집어 보면 되지 않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현실에서 찾아보면 ‘경쟁을 위한 스펙’이다. 일단은 학벌이 필요하고 영어자격증부터 컴퓨터 관련은 기본이고, 운전면허증은 말할 것도 못된다. 인증제도를 이용해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들은 쌓여갈수록 좋다.
우린 결국 현실정치라는 텍스트 안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그것들을 다 뒤집어 버리면 되는 거다. 그럴 수 있는가? 없다.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하면 졸지에 방임의 부모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이다. 왜냐면 불안하지 않은 다른 출구는 없기 때문이다.
창을 이루어낼 수 없다면 통은 존재할 수 없다. 물론 혼이 없다면 더 말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혼·창·통의 시대로 움직여갈 수 있는 개인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시대의 변화는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데 그 안의 개인들은 역주행의 시대를 경험하며 부대끼고 있기에 우리의 삶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불안과 공포감에서 스스로를 채근하게 된다.
내가 노력한 만큼 버는 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새정치의 필요를 내세운 한 정치인의 말에 기대심리의 작동은 무리가 아니다. 그래, 우리 지금까지의 익숙함을 벗어던져야 한다. ‘정치’가 제 자리로 돌아가도록 사회를 바라보고,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혼'에서 '창'으로 그리하여 '통'할 수 있도록 새로워졌으면 한다. 그러니 이제 총, 균, 쇠는 좀 물러가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