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썩은 동아줄

믿었다, 끝까지

by 유흔

"큰일 났어. 거래소에서 메일 받았는데 계정 부정 사용으로 잠긴다고 하더라."


어느 날 아침, 거래소에서 메일을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의 메일을...




[악마의 속삭임]


투자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무렵, 나는 슬슬 빠져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금액이 생각보다 커진 탓도 있었고, 가족 모르게 진행해 온 일이라 짧게 수익만 챙기고 나오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게 내가 스스로 그은 마지막 선이었다. 그 선만큼은 지킬 수 있다고, 그때의 나는 믿었다.


두 번째 투자금을 넣었을 때, 거래소 기준으로 1단계 보너스 금액에 도달했다. 그날 저녁 계정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해당 금액이 예치되어 있었다. 이미 모든 신뢰를 그에게 내어준 나에게, 그의 말은 바이블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갖고 있던 현금과 주식을 하나씩 꺼내 AI코인으로 옮겼다. 스스로 그은 선을 계속, 조용히 넘으면서.




[제안]


더 이상은 힘들겠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그가 움직였다.


내가 멈추려는 낌새를 챈 것이었을까. 그가 꺼낸 건, 다음 단계 보너스에 대한 제안이었다. 내가 혼자 그 단계까지 가기 어렵다면, 자신이 투자금 절반을 댈 테니 함께 달성해보자고. 보너스만 반씩 나누면 된다고. 투자금도 내 계좌에 직접 넣어주겠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투자자로, 그리고 인생의 소울메이트로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말과 함께.


듣지 말았어야 할 속삭임이었다. 피했어야 할 순간이었다. 그 사실을 지금의 나는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정교하게 나를 겨냥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흔들렸고, 제안을 수락했다. 스스로 그었던 마지막 선마저 넘으면서, 나는 내가 가진 것의 끝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꿈]


마지막 단계의 투자를 마치고 그와 책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던 그 밤. 나는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단번에 원하는 수익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그와 함께하는 이 여정이 계속된다면 내가 바라던 삶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때의 나는 꿈에도 몰랐다.


그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단 며칠이었다.





[메일]


그에게 바로 연락했다. 그는 자신도 같은 메일을 받았다고 했다. 암호화폐 관계자, 거래소 관계자에게 확인해 볼 테니 몇 시간만 기다려달라고.


'몇 시간만......'

그 말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들렸다.


나는 그 말을 진정한 친구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나를 걱정하는 소울메이트의 따뜻한 손길이라고 믿었다. 그가 확인해 줄 것이고, 곧 해결될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스스로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결국

나를

침몰시키는

마지막 수순이라는 것도 모른 채.


그 기다림이 끝이었다.


(계속)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