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베 Apr 27. 2024

행복하지 않음에 대하여

불행은 생각보다 괜찮은 상태다.


행복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나는 행복한가


긴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 있다.

‘나는 행복한가’


답은 쉽게 나왔다.

‘행복하지 않다’


하나의 분명한 질문과 명확한 답에 스스로 자괴감이 느껴졌다.

29년의 삶을 살았는데 불행하다는 생각에 실패한 삶을 산 것처럼 느껴졌다.


‘난 왜 불행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몇 개월의 시간을 흘러보냈다.

불행의 이유를 찾으면 긍정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좋은 점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계속 안좋은 점을 들춰보았다.


몇 개월 동안.


'의미'의 '의미'


나는 행복한가 - 행복하지 않다 - 난 왜 불행할까


최근 수학 관련 책을 읽었다.

수학자는 아주 간단히 표현된 공식과 수식을 보면 ‘아름답다’ 고 표현한다.

논리의 허점이 없고 완전무결함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수’로 이루어진 잘 짜여진 논리는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 흐름과 상호작용은 ‘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고유한 ‘언어’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언어는 ‘의미’와 ‘형태’가 맞닿아 있지 않다.

‘ㅇ’, ‘ㅢ’, ‘ㅁ’, ‘ㅣ’

‘의미’라는 단어의 형태와 ‘의미’의 의미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의미’라는 형태에 사회 구성원이 약속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그저 인간의 편리를 위해 같은 인간이 부여한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인간의 언어는 수학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언어에는 논리의 허점이 많고 완전무결하지 않다.



불행 : 행복하지 아니함

당신은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나는 행복한가’ 라는 물음에

‘행복하지 않다’는 대답은 바로 할 수 있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니까.


그럼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불행’으로 이어질까.


여기서 앞서 말한 ‘언어’의 한계가 나타난다.

‘불행’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하지 아니함’ 이다.


말그대로 ‘행복’의 여집합이 ‘불행’인 셈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행복’한 상태이거나 ‘불행’한 상태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불행한 상태’이다.


‘당신은 불행하다’ 라는 표현에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모습 등이 떠오를 것이다.

‘불행한 상태’ 라는 말에 마치 스스로 문제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간의 감정을 1 ~ 10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행복한 상태를 { 8, 9, 10 } 으로 생각해보자.


‘행복하지 아니함’ 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판단하면

불행은 ( 1, 2, 3, 4, 5, 6, 7 } 의 상태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을 { 1, 2, 3 } 인 상태로 인지한다.

즉 ‘불행’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와 ‘사람의 인지’ 사이에 간극이 있다.


불행은 꽤 괜찮은 상태이다.


우리는 불행을 '자연스러운 상태' 라고 인지해야 한다.

행복의 '반댓말'은 불행이라고 할 수 없다.


불행을 문제시하지 않아야 한다.

마치 ‘불행’이 문제인 것처럼 계속 규정한다면

‘불행’에 대한 우리의 ’인지’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우칠 것이고 간극은 더욱 벌이질 것이다.


단순한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소한 표현 하나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 라는 매년 더해지는 숫자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라.


행복하지 않음은 ‘불행’에 속하지만

우리기 인지하고 있는 ‘불행’은 아닐 수 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언어' 에 속아서는 안된다.

행복하지 않음은 꽤 괜찮은 상태일 수 있다.

불행은 꽤 괜찮은 상태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음은 하지 못함과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