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 너의 영혼을 훔쳐 주마.

by 겨울늑대

나는 평소처럼 거센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동시에 나의 영혼은 도심의 상가 주위를 떠돌았다. 그러다 한 카페가 나의 영혼의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 쇼윈도 속에 잘 꾸며진 카페 내부가 보였다. 그 속에 절반 정도 사람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유리창을 넘어 내게 전해졌다. 내가 바라던 노란색 도화지의 카페이다.


자연스럽게 나의 육체는 문을 열고 들어가 나의 영혼과 재결합했다. 나의 육체를 뒤덮던 한기가 카페의 온기를 빨아들인다. 그 온기에 휘감겨 사람들의 수다 소리와 짙은 커피 향이 빨려 들어온다. 예상대로 노란빛이 감돈다.


메뉴판을 확인한다. 글씨를 읽지 않고, 메뉴판에 담긴 커피의 사진을 바라본다. 정확히는 사진 속에 담긴 커피의 본질을, 영혼을 직시한다. 오늘의 오후를 함께할 나만의 ‘데미안’을 고른다. 어느 한 커피가 유독 진하게 자신의 영혼을 노래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문 버튼을 누른다. 나의 데미안의 이름을 확인한다. '카푸치노, 너의 영혼을 훔쳐주마.'


나의 데미안과 나의 역사적 만남이 곧 이루어진다. 그 만남에 ‘1112’라는 번호가 붙는다. 카페가 내게 선사한 주문 번호이다.


의자에 앉아 카푸치노를 떠올린다. 직원의 손에 놓였을 새하얀 유리컵을 떠올린다. 카푸치노의 영혼이 담길 욕조인 셈이다. 코를 움찔거리며 카페의 온기를 느낀다. 이 속에 카푸치노의 탄생이 묻어 있다. 그러나 나는 온기 속에 섞인 카푸치노의 체취를 분리해 내지 못한다.


머지않아 카푸치노의 탄생을 알리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1112번 나왔습니다.' 직원이 나를 부른다. 아니 카푸치노가 나를 부른다.


카푸치노의 영혼이 담긴 유리잔의 옆면을 손바닥으로 감싸 그 온기를 느낀다. 이 찰나의 느낌으로 카푸치노의 기분을 판별한다. 카푸치노의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카푸치노의 생애는 이미 시작되었다. 똑딱거리는 초침 소리와 카푸치노의 심장 소리가 혼동되기 시작한다. 동시에 나의 심장도 함께 두근거린다. 머지않아 카푸치노의 영혼을 마셔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니까.


시간이 촉박하다. 의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카푸치노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카푸치노는 ‘1112’로서 기억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이름을 지을 수가 없다.


카푸치노를 어루만진다. 정확히는 그의 영혼이 담긴 그릇을 통해 그의 온기를 느낀다. 유리잔을 코에 가까이 들이밀어 그의 체취를 들이킨다. 노란 도화지라고 카페의 이미지를 떠올렸듯이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유리잔에 입을 맞춘다.


카푸치노가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나와 카푸치노가 하나로 동화된다. 유리잔 안쪽 벽면에 카푸치노의 흔적이 드러난다. 카푸치노의 마지막 발악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입으로 숨을 쉴 때마다 카푸치노의 체취가 코를 통해 다시 내 안으로 스며든다. 아직 카푸치노는 죽지 않았다. '1112'라는 하나의 역사를 기억하리다. 매일같이 카푸치노의 영혼을 노래하리다. 네게 끝내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것을 하루하루 후회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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