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드라마 <허준>
이동현 입력 2009.07.31. 07:00 수정 2009.07.31. 08:14
[JES 이동현]
줄거리
평안도 용천군수의 서자로 건달 생활을 하던 허준(전광렬)은 밀무역 상인들을 덮치던 중 절박한 사정에 처한 다희(홍충민)를 돕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침술의 오묘한 세계를 접한다.신분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어머니(정혜선)와 함께 고향을 떠난 허준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우여곡절을 겪던 끝에 사냥꾼 구일서(이희도)의 도움으로 경상도 산음 땅에 정착한다.어느 날 어머니의 병환 치료를 위해 의원을 찾은 허준은 명의 유의태(이순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물지게꾼으로 의술 인생을 시작한다. 유의태의 아들 유도지(김병세)와 그의 약혼녀인 의녀 예진(황수정)의 도움으로 본격적으로 의술을 배운다.허준은 다희를 다시 만나 가정을 꾸리고 유의태로부터 성실함을 인정받아 의생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예진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도지에게 들키면서 위기를 맞는다.우연한 기회에 스승을 대신해 우의정 부인의 중풍을 완치시키면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지만 유의태의 오해 때문에 파문 당한다. 이후 허준은 숱한 위기를 겪지만 다희의 희생과 예진의 격려 덕분에 이를 극복하면서 조선 최고의 명의로 성장한다. 서출 출신 신분을 딛고 정1품 숭록대부에 임명된다. '허준'은 의학을 소재로 하지만 선조(박찬환)와 광해군(김승수)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공빈 김씨(박주미)와 인빈 김씨(장서희) 등 궁중 여인들의 대결 등도 흥미진진했다. 임오근(임현식)-홍춘(최란), 구일서-함안댁(김해숙) 등 감초 조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는 웃음을 책임졌다.
'허준'은 어떤 드라마
2000년 6월 중순 해남 땅끝마을에서 '허준'의 마지막 촬영이 진행되던 날. 촬영장을 향해 걸어가던 이병훈 PD와 전광렬에게 두분의 할머니가 다가왔다. 고질적인 신경통을 앓고 있던 할머니들이 천하의 명의 허준에게 침을 맞기 위해 경북 안동에서 땅끝마을까지 찾아왔다.
허준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을 알고 죽기 전에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허준'은 7개월 동안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전광렬의 명연기는 그를 실제 명의로 여겨지게 했다.
'허준'이 방영된 시기는 IMF 경제 위기가 마무리되던 때였다. 온국민이 뭉쳐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꽃 피우던 시기. 천민 출신의 별볼일 없는 사내가 조선 최고의 명의로 성장해가는 과정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연이어 찾아오는 시련을 묵묵히 이겨내는 모습은 극복하기 힘들 것으로 보였던 IMF 경제 위기를 이겨낸 국민들의 자화상과 같았기에 감동은 배가됐다. 2000년엔 의약 분업 시행을 앞두고 의사들이 파업을 불사했다. 사심없이 의술에 매진한 허준의 모습은 시대의 거울 역할을 했다.
최고 시청률 64.8%(이하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 평균 시청률 48.4%로 2000년대 들어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허준'은 사극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작품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사극은 고증을 통한 역사 자료의 영상화에 치중했다.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신세대에겐 고리타분한 장르였다.
'허준'은 역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고어체를 고수한 탓에 어색했던 대사도 현대적으로 바꿨다. 끊임없는 사건과 갈등으로 빠른 전개를 선보였다. 그 결과 사극의 시청자층을 신세대로 확장할 수 있었다.
이병훈 PD는 "사료의 영상화에서 탈피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사극을 한번도 쓰지 않은 작가를 물색한 끝에 최완규 작가를 만났다. 최 작가의 극적 구성력을 사극에 접목시켜 '허준'을 탄생시켰다"고 말했다.
당시 사극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최완규 작가는 이병훈 PD가 건네준 세 권의 책을 읽으며 한달 반 동안 공부했다. 궁중 언어를 제외한 모든 대사를 현대어로 처리하는 파격을 발휘했다.
'허준'은 시각과 청각적 효과에서도 파격적이었다. 당시까지 사극에서 궁중의상을 제외한 모든 의상은 흰색과 검은색, 갈색에 국한됐다. 서민들의 삶은 칙칙하게 그려졌다. 이병훈 PD는 서민들의 의상에 다양한 색감을 더해 화려한 영상미를 추구했다.
이병훈 PD는 "시대상을 고증해 보면 서민들에게 흰옷은 예복이었다. 보통 때엔 식물성 염료로 물들인 옷을 입었다. 요즘으로 치면 파스텔톤이다. 색감을 차별화한 덕분에 영상이 화려해졌다. 신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경 음악 또한 국악만 사용했던 당시 사극 추세를 탈피했다. 국악을 기반으로 하되 뉴에이지 연주 방식을 도입했다. 처음으로 현대 음악을 사극에 사용했다. 이 PD는 "어러 면에서 '허준'을 퓨전 사극의 효시로 본다. '허준'을 퓨전 사극으로 분류하긴 어렵지만 새로운 시도들이 퓨전 사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허준'을 이야기할 때 빼놓아선 안되는 인물은 전광렬이다. 전광렬은 당시 '종합병원'과 '청춘의 덫'으로 뒤늦게 빛을 본 실력파 중견 연기자였다. 허준을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불혹의 나이에 톱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병훈 PD는 1994년 창사특집극 '거인의 손'을 함께 하면서 연기력과 성실함을 발견했다. 그 작품에서 전광렬은 한의사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허준'의 타이틀롤로 적임자였기에 처음부터 전광렬을 낙점했다. 허준보다 더 허준 같을 정도였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예진아씨 황수정은 많은 미녀 스타들이 퇴짜를 놓은 덕분에 막차로 합류했다. 푸근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으로 만인의 연인으로 떠올랐다.
이병훈 PD는 전광렬과 황수정 외에는 임오근 역의 임현식을 일등공신으로 꼽았다. 이 PD는 "임오근은 원래 잠깐 등장하는 배역이었지만 임현식의 눈부신 애드리브가 작품의 웃음 코드를 책임지면서 큰 비중의 인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 이병훈 PD, "오직 재미있는 사극 만들자 한 생각 뿐이었다"
'허준'은 내겐 8년만의 연출 복귀작이었다. 이전에 10년 동안 사극을 연출했기에 복귀작도 사극을 염두에 뒀다. 그런데 당시 대학생인 딸이 "재미없으니 절대 사극은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난감했다. 젊은이들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사극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존 사극의 틀을 깨기로 했다. '허준'의 빠른 전개와 현대적 대사체 등 새로운 시도는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 촬영장에 찾아온 초등학생들이 내게 "사인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성공의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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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기자 [kulkuri7@joongang.co.kr] > > 불후의 명작 시리즈 더 보기 ▷ ▷ ▷ ▷
수백 년 앞서 현대의학 방향성 제시 글 | 편집부
동양 최고 의학서로 손꼽히는 『동의보감』은 시대를 수백 년 앞서간 혁신의 산물이었다. 우선 시작부터 남달랐다. 선조는 오랜 전란으로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백성들이 쉽게 치료법을 이해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해 보급하고자 했다. 세계 최초로 ‘공공의료’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도 쉽게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는 한글로 적었다. 19세기 이전에 왕실이나 귀족보다 평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적으로 몰두한 편찬사업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또한 『동의보감』은 ‘양생(養生)’의 원칙을 바탕으로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인식한 세계 최초의 의학 서적이다. 『동의보감』의 예방의학 철학은 현대의학보다 4백 년이나 앞선 놀라운 발견이었다.
임진왜란(1592~1598)으로 큰 혼란을 겪던 1596년 선조는 허준을 불러 명했다. 허준은 당대 최고 의사로서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를 지낸 인물이었다.
“요즘 중국의 방서를 보니 모두 자잘한 것을 가려 모은 것으로 참고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너는 마땅히 온갖 처방을 덜고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라.”
그 무렵 명대의 신의학이 우후죽순 조선으로 들어와 전통의학과 뒤섞이는 바람에 이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전란으로 기근과 역병이 발생해 제대로 된 의서가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하면서 선조는 그 책의 성격을 분명히 제시했다. 첫째, 사람의 질병이 조섭(調攝, 건강이 회복되도록 몸을 보살피고 병을 다스림)을 잘못해 생기므로 수양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치료를 다음으로 할 것. 둘째, 처방이 너무 많고 번잡하므로 요점을 추리는 데 힘쓸 것. 셋째, 국산 약 이름을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 등이었다.
왕명을 받은 허준은 정작·양예수·김응탁·이명원·정예남 등 당대의 인재들과 함께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중단되었다가 1601년 무렵 재개되었다. 이때부터 허준은 단독으로 14년 동안 총 240여 종의 의서들을 참고해 광해군 5년(1613)에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동양 의학의 이론과 실제’를 뜻하는 백과사전적 의서로, 의학적 지식과 치료법을 총망라한 대작이다. 병의 종류와 치료 방법을 다섯 가지(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로 구분해 총 25권의 책에 담고 있다. 한문으로 된 영인본 기준으로 3,200여 쪽, 160만여 자에 달한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더욱 분량이 늘어난다. 일례로 ‘내경편’이 한자로 4권인데 한국어 번역을 하자 200자 원고지 8,000쪽 분량이었다.
『동의보감』은 동양에서 가장 우수한 의학서의 하나로 평가되며, 책에 담긴 시대정신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이며, 의학서적으로는 최초다.
세계 최초 ‘공공의료’ 도입
일반 백성 위해 한글 사용
『동의보감』의 가장 큰 의의는 19세기까지 사실상 전례가 없던 국가에 의한 ‘공공의료’ 개념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동아시아의 의학 지식과 기술의 발달을 대변하며, 나아가 세계의 의학과 문화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선조는 오랜 전란으로 백성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일반인들도 쉽게 치료법을 이해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해 전국에 보급하고자 했다. 국가가 나서서 『동의보감』을 편찬한 이유의 하나는 일반 백성의 건강과 안녕에 대한 책임감이었으며, 그 결과 『동의보감』에는 전문화된 의학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와 쉬운 말로 풀어쓴 간단한 치료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당시 한자는 상류층들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도 쉽게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탕약편(湯藥篇)에 수백 종의 향약명(鄕藥名)을 한글로 적었다. 19세기 이전에 왕실이나 귀족보다 평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적으로 몰두한 이 같은 편찬사업은 사실상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예방의학’ 다룬 최초 의학 서적
현대의학보다 4백 년 앞서
『동의보감』은 ‘양생(養生)’의 원칙을 바탕으로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인식한 세계 최초의 의학 서적이다. 『동의보감』의 예방의학 철학은 현대의학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보다 4백 년이나 앞서 있다.
양생의 철학은 감정과 욕구를 다스리는 데 덧붙여 생활을 자연의 변화에 맞춤으로써 정신과 몸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여 개인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철학에서는 인간의 질병이 단지 신체적 원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요인과 사회적·정신적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은 건강과 질병의 문제를 다음 3가지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첫째, 건강과 질병을 단순한 인과관계의 문제로 보는 기계론적 접근이 아닌 전체론적 관점
둘째, 인간의 건강과 질병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회의학적 관점
셋째, 생물학적 의학이 아직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예방의학적 관점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한 건강의 정의가 ‘신체적 측면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으로도 좋은 상태라야 진정으로 건강한 것’임을 17세기에 이미 깨달은 『동의보감』의 의학적 선견지명은 세계 의학사적으로 중요하다.
2천 년간 축적된 자료 재구성해
동아시아 전통의학 새 시대 열어
『동의보감』은 16세기까지 축적된 방대한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한데 모았다. 『역대의방』(역사상 의서 목록)의 일부에 언급된 86권의 의서를 포함한 120권의 의서와 왕실 서고에 있던 500권의 한글 문서와 한의서를 인용·참고했으며,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통합했다. 이런 이유로 『동의보감』은 그 후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모범이 되었다.
지난 4백 년 동안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40회 이상 재인쇄되었으며, 1897년에는 미국의 랜디스(Dr. Landis) 박사에 의해 일부 영어 번역본으로 서양에 소개되기도 했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구암 허준을 다룬 드라마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총 네 번 방영되었는데, 1976년 ‘집념’, 1991년 ‘동의보감’, 1999년 ‘허준’, 2013년 드라마 ‘허준’의 리메이크작 ‘구암 허준’이다.
특히 1999년 11월 22일부터 2000년 6월 27일까지 방송된 MBC 64부작 드라마 ‘허준’은 전광렬·이순재·황수정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과 각본의 뛰어난 완성도로 대한민국 역대 사극 최고의 시청률을 달성해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 최고 시청률은 64.8%이며, 이 기록은 2022년 현재까지도 사극 부동의 1위, 드라마 전체 4위의 기록이다.수많은 명대사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그중 스승인 유의태의 가르침이자 허준이 심의(心醫)가 될 결심을 하게 된 메시지가 유명하다.
“세상에서 의원을 높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간에, 의원의 소임은 생명을 다루는 것이니, 그 어느 생업보다도 고귀한 일이다. 허나, 아무리 귀하다 한들, 마지막 한 가지를 깨우치지 못하면 진정한 의원이라 할 수 없으니,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병들어 앓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긍휼의 마음, 진심으로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을 때 비로소 심의(心醫)가 되는 것이야. 세상이 진심으로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심의일 뿐이다.”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허준(許浚, 1539~1615)은 신묘한 의술로 박애를 실천한 ‘의성(醫聖)’이 되고, 신분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기록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란 매우 어려워 일생을 추적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