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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만 Mar 10. 2023

2.1. 유교의 인간론

유교는 어떤 사상을 담고 있는가?

이효범 교수의 <인간론>읽기


― 유교의 인간론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는,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삼가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자로가 그것뿐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자로가 거듭 그것뿐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온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자기를 닦음으로써 온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은 요 임금이나 순 임금도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라고 대답하였다.


― <논어論語>, 「헌문憲問」               



1. 하늘은 인간에게 무엇을 부여하였는가     

  

  방동미는 중국인의 인성론을 다루면서, 중국인의 인성론은 서구와 인도와는 달리 원죄 의식의 조그만 흔적도 없고, 현세로부터 도피하려는 둔세遁世 사상도 없이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는 순수한 철학적 사색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순수한 철학적 입장에서 유가들은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파악했다.


  인간이 가치를 추구하는 바로 그 점이 동물과 다른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에서는 “인仁이 바로 사람(인人)이다” 혹은 맹자孟子는 “인仁이란 것은 사람(인人)이다”라고 사람을 정의定義하고 있다.

  

  유교에 따르면 하늘은 물질세계를 뛰어넘는 궁극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성품을 부여하였으며, 땅은 물질적인 자연 세계로서 인간의 신체가 여기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이 하늘과 땅으로부터 성품과 신체를 부여받아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다는 사실의 가장 깊은 근원에는 하늘이 주재자主宰者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늘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근원이다. 그러나 유교는 하늘이 언제, 어떻게, 왜 인간을 낳았는지에 대해 중요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하늘이 인간에게 무엇을 부여했고, 어떻게 쓸 것인지에 주의를 기울여 논의하고 있다.

  


<Philosophical  Point>

Question 1

 신을 중심으로 하는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가의 질문에 유교는 다분히 인간을 중심으로 한다. 어쩌면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하면서 예를 중시하고 예를 중시면서도 명분을 따졌다.


学而不思则罔,思而不学则殆

생각하지 않고 배우는 것은 무지한 것이며,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은 위태로움이다.


(殆 위태로울 태, 반드시 마땅히, 대부분)

孔子名言。语出《论语·为政》:“子曰:学而不思则罔,思而不学则殆。”“罔”,迷惘。郑玄注:罔,犹罔罔无知貌。“殆”有两义:一为危殆,疑不能定。一为疲殆,精神疲怠无所得。 (孔子·孟子·荀子, 林伟杰  主编, 中国民艺出版社. p.17)


  무턱대고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무엇을 배웠는지도 모르거니와 그것에 대한 쓰임과 용도가 무엇인 줄 모르고, 생각만 하고 배움이 없으면 자기 함정에 빠져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스인은 이성을 강조하고, 히브리인은 탁월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인도인은 고해苦海 속의 인간을 특징적인 모습으로 파악하였다. 이에 반해 유가는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선하고 순박한 본성으로의 복귀를 강조한다. 본성으로 복귀하는 것이 자신의 원형을 회복하는 길이며, 그럼으로써 자신을 존재케 한 천도天道에 귀일歸一하여, 만물을 화육化育하고 만물을 조화롭게 한다. 그러나 본성에 따른 삶이라는 지선至善의 실현은 사후나 피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세 속에서 그리고 세간사를 통해서 성취하는 것이라고 유가는 강조한다.



2. 주역周易의 인간론     


1) 서론


  주역이란 중국 고대 사회에서 아직 지식이 발달되지 못하여 사물의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꾸리를 하게 한 하나의 점서이다. 이 책은 사람이 점을 침으로써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도록 하고, 무슨 일을 하여 성공하도록 하게 한 일종의 인생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역에서의 인간은 삼재三才 또는 삼극三極의 이념 속에서 이해되고 있다. 삼재나 삼극이란 천天·지地·인人을 말한다. “역이란 책은 넓고 커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천도도 있고, 인도도 있고 지도도 있다. 천·지·인 삼재의 도일 따름이다.” “육효의 움직임은 천·지·인 삼극의 도이다.” 삼재 또는 삼극이라 할 때 ‘재’나 ‘극’에는 근원적인 것, 가장 높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삼재, 삼극이란 우주 안에서 가장 귀한 세 가지로서 천·지·인을 말한다.


출처: https://image.baidu.com/search/detail?ct=503316480&z=0&ipn=d&word=%E4%BC%8F%E7%BE%B2%E6%B0%8F&st

<Philosophical  Point>

Question 2. 주역에서 하도(河圖)는 어째서 거꾸로 했을까? 이해하기 쉬운 방법은 없을까?


하도(河圖) 그림의 원전은 한 사람이 서 있을 때 앞면을 남, 뒷면을 북으로 두어 4를 기준으로 하며 북, 동, 남, 서로 이어지는 부분이 혼란스러워서 새롭게 도해해 보았다. 익숙한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그림 상단을 북(北,North)로, 하단을 남(南, South)로 하는데 주역의 원문대로 하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고 눈에 쏙 들어오지 않아서 다시 도안해 본 것이다.


그림 1. 주역의 하도(河圖). 수비학과 오행의 천간지지 도해, 김순만

河圖,八卦。是伏羲氏王天下,龍馬出河,遂則其文以畫八卦,謂之河圖。(상서정, 18권)



그림 2. 하도(河圖), 위키백과 참조


  그림 1은 4방에서 위쪽을 북으로 잡은 것이며, 그림 2는 중앙에 사람이 앉아 앞면을 남, 뒷면으로 북으로 잡은 거이다. 그런 까닭에 익숙한 형태로 방향을 다시 넣고, 천간과 지지를 기록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도해하였다. 



  Question 2. 주역에서 하도(河圖)의 기원은?


<하도(河圖)는 중국 황하에서 나왔다는 신비한 그림을 지칭한다. 복희 황제가 수천 년 전에 황하를 정비하는 도중에 신령스러운 말 한 마리가 솟구쳐 나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머리는 ‘용(龍)’과 같고 몸통은 ‘말(馬)’의 모습이었다. 그 말의 등을 살펴보니 이상하게 생긴 점들이 있어서 그림으로 옮겼는데 이를 ‘하도(河圖)’라 칭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연구하여 우주 순환의 원리와 삶의 철학을 발견하여 세상 사람들을 깨우친 이가 ‘복희(伏羲)’황제이다. 어떤 이들은 복희 씨(伏羲氏)라 통칭한다. 그러나 ‘씨(氏)’는 격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중국인이 자신의 직계조상이 아닌 동이족이었던 복희를 비하해서 부르는 호칭이 ‘복희 씨’였다. 그러니 복희‘황제’라 부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출처: http://sisa-news.com/mobile/article.html?no=115755


  Question 3. 주역에서 하도(河圖)의 기원은?


출처: https://saeuijae2000.blogspot.com/2016/11/blog-post_27.html


1. 하도河圖 

1) 하도의 유래

하도는 복희 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머리는 용이고 몸은 말의 형상을 한 신비로운 짐승이 하수에 나타났다

그 등에 있는 55 개의 점은 천지창조와 만물생성의 이치를 담고 있다

2) 하도의 수리

 가)생수生數: 안에 있어 만물의 생명을 낳는 근본: 1,2,3,4,5

 나)성수成數: 밖에 있어 만물의 형체를 이룬다: 6,7,8,9,10

 다)성수 = 생수+5(중궁의 생수)

      천지의 수 = 55 (천수(1,3,5,7,9) + 지수(2,4,6,8)) 


3) 삼천양지參天兩地와 사상사四象數 

가) 삼천양지

생수인 1.2.3.4.5는 수의 기본으로 역의 수리가 이를 의지하여 나온다. 천수가 세 개, 지수가 두 개이므로 이를 삼천양지라 한다. 삼천을 합하면 9가 되고, 양지를 합하면 6이 되므로, 9와 6을 괘의 효명으로 삼는다. 

나) 사상수

사상으로 볼 때 사방의 생수인 1.2.3.4를 四象位라 하고 사방의 성수인 6.7.8.9를 四象數라 한다. 잘 보자. 하도에서는 5(衍母)가 10(衍 子)를 밀쳐서 1.2.3.4를 낳고(10의 분화) 이 1.2.3.4가 다시 5의 도움으로 6.7.8.9를 이루고 5는 쓰고 5를 자생하여 다시 10을 이룸으로써 수의 전개과정을 마친다.



다) 오행의 생성: 하도의 사상수와 사상 위는 오행을 생성한다. 하도에서 오행이 나오는 것이다.

즉 팔괘의 순서가 하도에 있다는 것이다. 9가 양수이니까 아버지인 건삼련괘(일건천☰), 그 다음이 음수인 4니까 소녀인 태상절(이태택☱)...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주자의 설로 아버지9, 어머니6, 중남7, 중녀8를 하도의 바깥 성수로 배치하였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 하도에서 1양과 2음, 3양과 4음, 5양과 6음, 7양과 8음, 9양과 10음은 음양이 나오는 순서로 이웃형제이다. 그런데 이웃형제가 아닌 음양이 있다. 1양과 6음, 2음과 7양, 3양과 8음, 4음과 9양, 5양과 10음은 혼인하는 상이다. 여기서 수화목금토가 나온다. 

내용출처: https://saeuijae2000.blogspot.com/2016/11/blog-post_27.html




이미지 출처: 바이두: https://image.baidu.com/search/detail?ct=503316480&z=0&ipn=d&word=%E4%BC%8F%E7%BE%B2%E6

(<이효범 교수님의 인간론 읽기> 다시 본문)


   천·지·인 삼재(삼극)은 우주 속에서 가장 귀한 존재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道는 각각 다르다. 


   천도는 음양론陰陽論으로, 지도는 강유론剛柔論으로, 인도는 인의론仁義論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주역의 변화 속에서 지도는 천도에 흡수되었다. 그래서 천도의 음양론과 인도의 인의론이 서로 매개되면서 천인합일의 철학으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천도의 음양론, 지도의 강유론, 인도의 인의론을 통하여 구명된 지극한 이치를 태극太極이라고 한다. 이 태극은 대상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 물질에 있어서는 리理, 인간에 있어서는 성性, 하늘에 있어서는 도道 또는 명命으로 나타난다.


   주역의 토대를 삼재론이나 천인론이나 태극이라고 하더라도 그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인간이다. 궁극적으로 진리의 담지자는 인간이다. 천과 지는 자연自然으로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진리의 원천인 동시에 그것을 구현하는 실천의 무대이다. 그래서 인도의 중요성이 천도나 지도보다 훨씬 강조되고 있음이 주역이 지니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는 헛되이 행하지 않는다.” “역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덕행에 의존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역의 천지론은 인간론에 수렴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주역에서의 인간이 삼재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자연인 모두가 삼재로서의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인간은 인간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삼재가 된다 함은 인간이 만물과는 달리 만물을 낳은 천지와 동격의 존재로 상승한다는 것, 즉 한낱 피조물에 머물지 않고, 천지의 만물화육萬物化育에 참여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런 삼재로서의 인간과 자연인으로 인간은 어떤 차이가 나는 것일까?


  주역에서의 자연인은 한 마디로 우환의 인간, 허물 많은 인간, 결핍의 인간을 말한다.

  주역에서는 <괘효사卦爻辭>에서 ‘무구无咎’라는 용어가 120여회, <전傳>에서 10여회가 나온다.

  

   ‘무구无咎’란 ‘선보과善補過’ 즉 허물을 잘 보완하여 길한 것을 취하고 흉한 것을 피한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개과천선改過遷善을 강조하는 것이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咎 : 허물구, 休咎: 길(吉)한 것과 흉(凶)한 것)


  청대의 역학자 이도평李道平은 주역의 384효는 일언이폐지 하면 ‘선보과’라 하였다. 이렇듯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과오를 저지르는 존재이다.

  

  주역에는 ‘무구’ 이외에도 ‘회悔’와 ‘린吝’이 많이 나온다. 회(悔)는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고치는 태도이며, 린(吝)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고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회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린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회는 결국 길상吉祥으로 이어지고 린(吝)은 흉화凶禍로 이어진다. 그래서 자연인은  옳은 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고 항상 근심 속에서 살아간다.   

  

  주역의 점사에서 많이 나오는 무구는 결국 선보과를 권유하기 위함이다. 무구 즉 허물(대과)가 없다는 것은 역리상易理上 중정中正을 위미한다. 이것은 곧 인간이 덕성德性을 실현한 상태이다. 그런 인간이 진정한 삼재로서의 인간이다.


  주역에서 무구를 위해서 제시된 방편이 서술역筮術易에서는 점서占筮이고, 의리역義理易에서는 성덕成德이다. 점서는 불안이나 허물이 생겼을 때 상제나 절대자 떠는 하늘의 뜻을 묻는 방식이다. 성덕은 말 그대로 실패를 돌아보고 덕을 쌓은 것이다. 점서와 성덕 이 두 가지 방편 중에서 보다 보편성을 지니며 합리적인 것이 성덕이다. 건·곤의 <역>·<간>의 덕을 본받아 신명의 경지에 이르고, 미래에 올 것을 알고 미세한 것을 알아 변통을 함으로써 이로움을 극대화하는 것이 주역의 사업이다. 이런 길을 가는 사람이 군자이고 이를 이룬 사람이 대인大人이다.



2) 군자

  

  군자는 보통 유가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생각된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의 모습이 주역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그러나 <대상전大象傳>에 나오는 군자의 의미는 일관되지 못하다. 어떤 경우에는 정치적 지도자 또는 관료를 나타낸다. “땅 가운데 물이 있는 것이 사괘이다. 군자는 그것으로 백성을 용납하고 대중을 양육한다.” “우레와 비가 일어나는 것이 해괘이다. 군자는 그것으로 허물을 사해주고 죄를 용서한다.”

 어떤 경우는 도덕 수양을 본질로 하는 인격적인 존재를 나타낸다. “천체의 운행은 건실하다. 군자는 그것으로 스스로 쉬지  않고 힘쓴다.”  “지세는 곤이다. 군자는 후한 덕으로 물건을 싣는다.”    대상전 뿐만 아니라 계사전에 등장하는 군자는 거의 모두 인격개념이다. “말과 행실은 군자의 계기이다. 계기가 발하는 것은 영광과 굴욕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말과 행실로 군자는 천지를 움직이게 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군자는 윗사람과 사귀어도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사귀어도 업신여기지 않는다.” 여기서 보이는 군자는 대부분 도덕 수업에 힘쓰는 인격체이며 덕을 바탕으로 하여 주어진 상황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존재이다. 이런 역전뿐만 아니라 괘사에도 4차례, 효사에도 16차례의 군자란 용어가 나온다. 이들도 모두 인격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군자가 성덕成德을 그 본질로 하는 인격체라면 군자는 어떻게 점서占筮와 연결되는가? 주역이 본래 점서에 관한 책이라면 주역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군자도 점서와 어떤 방식으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역에 나오는 군자는 끊임없이 역학의 이치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한다. “군자는 거처할 때에는 그 상을 관찰하여 그 말을 완미하고, 동작할 때에는 그 변화를 관찰하여 그 점괘를 완미한다.” 이것은 군자가 집에 거처해 있을 때는 괘상을 관찰하고 효사를 완미해보며, 밖에 나아가서 행동할 때는 자기의 변화상을 관찰하고 점을 쳐서 좋고 나쁜 것을 완미해본다는 말이다. 또 군자(성인)은 천도에 밝고 민정을 잘 살펴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신비로운 서법筮法과 귀복龜卜으로 점을 쳐서 백성들을 가르친다. “성인은 이것으로 마음을 씻어 물러가서 비밀리에 간직해 두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백성과 함께 걱정하여 신비한 것으로 올 것을 알고 지혜로운 것으로 가는 것을 아니,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왜 군자는 이런 행동을 해야 할까?

 그것은 역이 같은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역은 천지와 비준한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를 미봉하고 섭리할 수 있다. 우러러서는 천문을 관찰하고, 굽어서는 지리를 고찰한다. 그러므로 어둠과 밝음의 까닭을 알 수 있고, 처음을 근원으로 하여 나중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살고 죽는 설을 안다. 정기는 물건이 되고 유혼은 변화한다. 그러므로 귀신의 정상을 안다. 천지와 서로 같으므로 어긋나지 않고, 지혜는 만물에 보편되고, 도는 천하를 구제한다. 그러므로 허물되지 않고, 옆으로 가도 흐르지 아니하여 하늘을 즐거워하고, 명命을 안다.”   

 여기서 본성을 극진히 하는 성인 즉 군자의 도는 천지와 같이 높고도 넓다. 그러므로 사람의 도덕률인 인과 서로 어긋남이 없다. 또 그 지혜는 모든 사물의 보편성에 있고, 그 도는 천하의 백성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오를 범하는 일이 없고, 권도를 부려도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천명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즐거워한다. 여기서 군자가 하는 핵심적 행위 중 하나가 천명을 자각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사람은 자기의 천명을 따라서  행위 하면 길하게 되고 천명을 어기면 흉함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군자는 자기의 천명을 어떻게 자각할 수 있을까? 그 한 방법이 점서를 보는 것이다. 점서란 신명神明의 상태에 들어가서 신 또는 천지의 명을 듣고자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점서를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인격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여기서 주역의 군자의 성덕론과 점서의 종교적 신성성의 극치가 연결되는 것이다. 천하의 지정자至精者, 지변자至變者, 지신자至神者가 아니고서는 점서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주역이란 책에는 성인이 역을 사용하는 방법이 네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辭 .변變.상象.점占이다. 사라는 것은 체계가 서고 조리가 있는 말을 일컫는다. 변이라는 것은 역에 64괘 384효의 변화상을 존중하여 거기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상이란 것은 역 가운데에 있는 괘상과 효상을 말한다. 성인이 기구를 만들 때는 반드시 그 괘상과 효상을 본떠야 한다. 끝으로 점이란 것은  무꾸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성인이 사물의 좋고 나쁜 것을 무꾸리할 때는 점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에는 성인의 도가 네 가지가 있다. 역을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자는 그 언사를 숭상하고, 역으로써 행동하려는 이는 그 음양 변화를 숭상하고, 역으로써 무엇인가 기구를 만드는 이는 역의 상을 존중하고, 역으로 미래를 점치려는 자는 그 점괘를 숭상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무슨 일을 행하여 할 때에는 먼저 성인에게 물어본 뒤에 역에 기재된 말에 좇아서 말하고, 또 성인에게 명령을 받을 때에는 거기에 향응하여 좇는다. 그러므로 먼 곳에 있는 사물이든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물이든지, 또는 그 배후에 깊이 숨어 있는 사물이든지 다 통찰하여 마침내는 미래의 사물까지 다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지극히 순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군자는 천명을 자각하고 이를 기꺼이 수용하여 근심이 없게 된다. 그러나 군자는 이런 즐거움에 안주하지 않고 만물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 어느 곳으로든 두루 행하되 치우침이 없고, 천명을 알고 이를 기꺼이 수용하므로 근심이 없으며, 주어진 처지나 상황에 편안함을 느끼며, 보다 어질게 되고자 함에 돈독하니, 능히 만물을 사랑할 수 있다.” 여기서 군자가 근심을 떨쳐버림에 그치지 않고 안토安土와 돈호인敦乎仁을 통하여 능히 만물을 사랑하는 능애能愛의 경지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토는 거하는 바에 따라 어디서든지 편안함을 의미한다. 또 돈호인은 사심을 제거하여 온전히 천리天理만 남아 다른 것이 섞여 들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안토하고 돈호인하면 사물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넓어져 우주 안의 모든 것에까지 이르게 된다.         


3) 군자의 길

 

  군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덕進德과 거업居業이다. 진덕이란 덕을 쌓은 것이다. 거업이란 천지 안에서 인간이 할 일에 힘쓰는 것이다. “군자는 덕에 나아가 업을 닦으니 충신은 덕에 나아가기 위함이요, 말을 닦고 그 정성을 세우는 것은 업에 있기 위함이다.”“성대한 덕과 위대한 사업이 지극하게 된다.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을 위대한 사업이라 하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성대한 덕이라 한다.” “대체 역은 성인이 도덕을 숭상하고, 공업을 광대하기 위한 것이다.”

 

   덕을 쌓은 것이 군자의 본무임은 건괘 문언에 잘 나타나 있다. “군자는 인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모임을 아름답게 하여 예에 합할 수 있고, 물건을 의롭게 하여 옳은 일에 조화될 수 있고, 곧고 견고하여 일을 주간할 수 있다. 군자는 이 네 가지 덕을 행하는 사람이다.” 건괘 문언은 또 건괘에 “잠용물용潛龍勿用(물속에 잠복해 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는 말을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해석하고 있다. 즉 우주의 대기를 상징한 용과 같은 덕을 온몸에 간직한 군자로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위대한 사람은 아무리 시시각각으로 사회가 변화한다고 해도 자기의 굳은 의지를 꺾지 않는다. 그는 비록 자기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세상에 숨어살면서도 걱정하지 않고, 자기가 옳은 사람이라고 알려지지 않아도 걱정하지 아니한다.

 군자는 덕을 숭상해야 한다. 그것이 역이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 주역에서 말하는 덕이란 무엇일까? 덕은 우선 생명의 창달과 관계한다. “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한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성대한 덕이라 한다.” 흔히 천지의 덕을 가장 공정무사하다고 한다. 하늘은 모든 사물을 덮어주고 땅은 모든 사물을 실어준다. 천지가 지닌 덕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생명의 창달이다. 우주 안의 모든 사물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병육竝育할 수 있음은 천지가 지닌 덕이다. 만물을 생육하는 이 천지의 마음을 성리학자들은 인仁으로 규정한다.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은 날로 새롭게 태어난다. 천지에 의하여 만물이 날로 새로워지며 그 생성이 그치지 않으니 이것을 성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자연이 이렇듯 변화가 그치지 않고 날로 새로워지듯이 인간도 나날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곧 천지를 본받는 성덕자의 모습니다.

 다음으로 덕은 풍성함, 돈후함을 의미한다. “덕은 성대함을 말한다.”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공이 있어도 덕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지극히 후한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공을 남 앞에서 겸손해하는 사람을 두고 한 공자의 말이다. 그런 성덕자 곧 군자에게는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그 좋은 결과는 다양하다. 자기 위치를 보존하는 것도 그 하나이다. 그러나 성덕을 지닌 자는 “신비로움을 다하여 변화함을 안다(窮神知化).” 대자연의 근원적인 힘과 원리 및 변화의 법칙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성덕을 신명지덕神明之德이라고 한다. 또한 덕행을 쌓은 자는 묵묵하되 만사가 두루 형통하고,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믿어주며, 항시 평이한 곳에 거하면서 험한 것을 극복하고, 항시 간편한 것을 지니면서도 힘든 것을 다스린다.  이는 곧 덕을 닦는 사람은 우환이나 조험阻險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덕을 닦기 위해서는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서 쉬지 말아야 하고, 안으로 충신忠信에 힘쓰고 밖으로 의로운 것을 실천해야 한다. 충신이란 마음속에 한 생각의 사특함도 없는 것이다. 또 건괘 문언에는 “군자는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변하고, 너그러움으로 살고, 인으로 행한다”라고 했다. 적덕의 관건을 학취學聚, 문변問辨, 관거寬居, 인행仁行으로 본 것이다. 또한 곤괘 문언에는 “군자는 공경으로 내적 면을 정직하게 하고, 의리로 외적 면을 방정하게 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공경과 의리의 공부가 쌓여 덕이 확립되면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게 된다.

   군자의 과제 중엔 진덕 이외에 거업(광업)이 있다. 덕이 내적으로 충신에 힘쓴 결과이거나 천지를 본받음이라고 한다면, 거업은 외적으로 자기의 할 일에 힘쓰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덕과 업은 체體와 용用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덕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하여 시간상으로 말한다면, 업은 보다 많은 사람과 넓은 지역에 미친다고 하여 공간적으로 설명함을 대비시킬 수 있다. 군자가 행할 사업이란 그가 터득한 진리를 온 인류에게 시행함을 의미한다. “군자가 종일토록 씩씩한 모습으로 저녁까지 근심한다.” 이런 사업의 효과가 천하에 미칠 때 이를 일러 대업大業이라고 한다.

   주역에서의 업業 또는 사업事業이란 변통變通을 의미한다. “수리를 극진히 하여 미래를 아는 것을 점이라고 하고, 변화에 통달하는 것을 사업이라고 한다.” 역의 수리를 극진히 하여 미래를 아는 것이 바로 점치는 일이다. 또 사물의 변화하는 현상을 다 통달하는 것이 우리의 일(사업)이다.

 그래서 점을 치는 일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다가올 일을 맞이함에 그치지 않는다. 가능한 한 그 일을 변통시켜서 길한 일이면 더욱 확대하고, 흉한 일이면 축소시키거나 이를 피한다. 일의 결과가 확정되기 전에 미리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미래를 변통시키는 것이다. 또한 점의 결과를 통하여 지난 허물을 뉘우쳐 반성하고 잘못을 고쳐 선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것이다.

 주역은 모든 일이 궁窮 .변變.통通.구久로 진행한다고 한다. “역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 일이 막히면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고, 변화가 생기면 새로운 통로가 생기며, 그렇게 됨으로써 보다 오래 지속된다. 인사人事로 말한다면 일이 궁지에 처했을 때 변화를 일으켜 소통시켜 가면 항구하게 된다. 모든 것은 오래되면 다시 궁색하게 된다. 변통이란 요컨대 막힌 곳을 뚫어 소통하게 하는 것이고, 기가 흐르게 하는 것이다. 동양 의학에서 침이나 뜸은 막힌 기혈을 뚫어 소통을 원활히 하는 의술이다. 주역에서 사업이란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침이나 뜸을 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변과 통은 다시 천도와 인사로 구별할 수 있다. 즉 자연의 변은 일음일양一陰 一陽이고 일합일벽一闔一闢인데 반해 인사의 변은 화이재지化而裁之이다. 자연의 통은 왕래불궁往來不窮인데 반해 인사의 통은 추이행지推而行之이고, 감통感通이고, 통지通志이고, 통기通氣이다. 천도의 통변은 사계절의 순환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원형이정, 춘하추동으로 계절의 기운이 흐르고 돌아감이 천도의 변통이다. 천도의 변통에 의하여 만물이 싹돋고, 자라고, 열매 맺고, 저장함이 나타난다. 인사의 변통은 이런 천도의 변통을 본보기로 한다. “변하고 통하는 것은 사시에 배합한다.”  “대체로 대인은 천지와 기덕이 합하고, 일월과 그 밝음이 합하고, 사시와 질서가 합하고, 귀신과 길흉이 합한다.”

 자연의 세계는 저절로 변이 생겨 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의 사업은 통을 위해 변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오래 갈 수 있고, 자기가 얻은 지위를 보존할 수 있고,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역에서 말하는 통은 위와 아래의 통, 왼쪽과 오른쪽의 통, 남자와 여자의 통, 사람과 사물과의 통, 사람과 귀신의 통 등 모든 대립자의 상호 감흥 소통을 의미한다. 우주 안의 모든 사물을 일체로 여긴다는 것 자체가 통을 의미한다. 인仁을 우주론적으로 확대시켜 나간 송대의 철학자들이 인을 기통氣通으로 설명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늘과 땅이 교섭하지 못하면 만물은 흥할 수 없다. 남과 여가 교섭하지 못하면 자손을 얻을 수 없다. 상하가 교섭하지 못하면 천하가 어지럽고, 하늘과 사람이 교섭하지 못하면 인간은 우환을 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괘명卦名에서도 천지의 교섭은 태泰라 했고 교섭하지 못함은 부否라고 했다.

 역전에서 찾을 수 있는 변통의 성인은 황제, 요, 순이다. 그들은 궁색한 상황에서 변화를 가하여 소통케 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에 권태를 느끼지 않게 했고, 신명나게 하여 부지중에 감화되어 각자의 소임을 다하도록 하였다. 막힌 데서 오는 불안과 권태를 변통으로 타개함으로써 신선한 의욕을 갖고 일하게 한 것이다.

  이런 변통은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삼재가 되는 관건이 된다. 본디 인간은 천지 안의 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천지에 대해서 유감을 가지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천지의 음양과 한서寒暑가 정도를 벗어날 때가 많고, 길한 것과 흉한 것이 마땅함을 벗어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이 발생해서 무고한 인간이 죽고 전염병이 돌면 동식물이 떼로 멸종한다. 이 때 하늘과 땅을 저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천지의 부조화를 인간이 변통을 통하여 보완해야 한다.    

 주역의 삼재론의 핵심은 인간의 지위가 천지와 같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이 꼭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연은 저절로 항구하지만 인간은 항구해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자연이 부조리할 때 인간은 이것을 변통시켜 완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이때에 인간은 천지 안의 한낱 피조물적인 소산적所産的 존재에 그치지 않고, 스피노자가 말하는 능산적能産的 자연으로서의 유구한 자연과 동격이 된다. 이런 인간이 삼재로서의 인간이다.      

 인간이 변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행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말과 행실은 군자의 계기이다 --- 말과 행실로 군자는 천지를 움직이게 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역전 곳곳에서도 언행의 중요성이 발견된다. 건괘에서는 평소의 말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평상시 행위에 삼가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인괘에서도 말은 내용이 있어야 하고 행위는 항상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계사전 상8에서는 “군자가 비록 집안에서 한 말일지라도 그것이 선한 것이라면 천리 먼 곳에서도 호응이 있고, 악한 것이라면 천리 먼 곳에서도 거스림이 있다”고 하였다.

 언행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많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난이 일어날 때에는 언어가 단서가 된다. 임금이 비밀히 하지 않으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비밀히 하지 않으면 몸을 잃고, 기밀의 일을 비밀히 하지 않으면 해가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비밀을 삼가서 문밖에 나가지 않는다.” 군자는 말할 때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해야 한다. 말과 행동의 상황에 적의해야 변통과 대업이 가능하고, 그 결과 삼재의 인간이 될 수 있다.      

4) 결론

 주역에는 군자 이외에도 유인幽人, 방랑자, 나그네, 읍인邑人, 무인武人 등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군자와 유사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군자보다 인격이 더 높은 사람으로 대인大人이 나온다.

 대인에 대한 가장 선명하고 충실한 내용은 건괘 문언에 있다.


“대저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일월로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고, 사계절과 더불어 그 질서를 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한다. 선천에서는 천이 그를 어기지 않으며, 후천에서는 그가 천시를 받든다. 천도 어기지 않는 존재이니 귀신이 어기랴 사람이 어기랴”     

 사실 이 글은 중국 고전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예찬 가운데 최고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한다’ 함은 대인은 만물을 인애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일월로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한다’ 함은 만물의 법칙을 두루 알아내어 정신계의 어둠을 몰아낼 빛이 된다는 뜻이다. ‘사시와 더불어 그 질서를 합한다’ 함은 자연계의 질서처럼 인간 사회의 질서를 바르게 구현한다는 뜻이다. ‘귀신과 더불어 길흉을 합한다’ 함은 모든 일의 처리에 있어서 그 마땅함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하늘이 그를 어기지 않는다’ 함은 선견지기先見之幾의 명철이 있다는 뜻이다. ‘천시를 받든다’ 함은 도를 따르고 지키는 덕이 있다 함이다. 귀신도 사람도 어기지 못한다 함은 그가 가장 존귀한 인격자임을 의미한다. 요컨대 대인이란 이미 성덕의 과정을 거쳐 도의 화신이 되었으며, 도의 흐름 속에 들어 있는 존재를 이름한다. 이것은 대인이란 진정으로 천지와 더불어 나란히 셋이 되는 삼재三才로서의 존재라는 의미이다.

 주역에 나오는 이런 군자나 대인은 공자의 논어나 맹자의 맹자 그리고 그 후 유학의 많은 문헌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다. 어떤 때는 주역과 같은 의미로 또 어떤 때는 조금씩 의미가 달리하여 나타난다. 유학이 한마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大學은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통한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은 바로 군자나 대인이 실현시켜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주역의 군자상은 유학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그것은 오늘날에도 추구되는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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