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죽일 수 있을까

by 올빼미

시간은

얼핏 보면 축복처럼 다가온다.


매일 해를 띄워

새로운 나를 일으키고,

떠나간 사람으로부터 남겨진 상처 위에

살을 덧입혀 준다.

계절을 돌리고,

사람에게 움직임을 강요한다.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 부르며,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샤워기 아래 조용히 고개를 떨구던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시간은 축복이 아니라

가장 치명적인 굴복의 기술이 아닐까?


시간은

잊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무디게 하고,

늙지 않으려는 몸에 주름을 새긴다.

학생들의 하루를

끊임없는 시험으로 밀어넣고,

성인의 삶엔

‘너무 늦었어’라는 경고음으로 뒤덮는다.


어떤 이는

남보다 빠른 시간을 가졌고,

누군가는

한 걸음 늦게 세상에 도착했다.

시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후회한다.

이제 와서.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한 채

어제에만 매달린다.

혹은

그 어제를 살아도 좋았던 오늘이라 믿고 싶어 한다.


그때였다.

시간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면이 아니었다.

횡으로,

내 옆모습을 훑고 있었다.

마치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한 손에 낫을 든 채,

저 여유로운 태도로.


나는 불쾌했다.

그 미소가,

그 태연함이,

그 무엇보다 내 속을 긁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간을 죽일 수는 없을까?”


당장이라도

그 낫을 빼앗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시간을 자르고,

스스로의 흐름을 만들고 싶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늙지 않아도 좋을 때까지 늙지 않고,

오늘을 오늘로만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죽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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