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당신은 책 속에서 인생을 찾고 있고, 나는 인생 속에서 책을 찾고 있어

by 부엉부엉

고등학교 졸업무렵 당시 나의 과외선생님에게 이 책을 선물받았다. 수업 받는 삼년 내내 사적인 대화 한번 없었던 분인데, 마지막 수업때 선물이라며 수줍게 내민 이 책을 나는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완독한다.


그동안 이 책을 읽어보려 몇 번 시도했지만 늘 완독하지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책의 내용이 썩 머리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이 책은 다이나믹한 서사로 이루어져있기보다는, 조르바가 보여주는 자유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이십대의 고삐풀린 자유를 신나게 맛보던 나는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유할 필요도 이유도 욕망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줄거리가 흥미진진한 소설책도 아니었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닐 것 같다. 40대, 50대, 60대에 접어들때마다 다시금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화자인 ‘나’는 소위 말하는 호모사피엔스 지식인, 종교와 관념으로 점철된 인간으로 묘사된다. 반면 ‘조르바’는 완전히 대비되는 인물로써 종교, 관념, 조국과 같은 추상적인 사상 따위는 개나줘버리라는 스트리트 철학가다. ‘나’는 글 속에서 세상을 배웠고, 조르바는 온갖 풍파를 겪으며 세상을 배웠다. 마치 온 몸에 땅을 붙이고 살아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아내는 뱀처럼, 조르바는 두 발을 땅에 밟고 사는 이른바 실존주의의 대명사로 묘사되는 인물이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 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조르바의 철학을 한 마디로 하면 카르페디엠이다. 눈 앞에 있는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

웃기지만 이런 태도는 조르바가 카사노바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눈 앞의 여인에게만 집중하는 카르페디엠적 사랑철학 덕분에 그가 만난 여인들은 모두 조르바에게 모두 홀딱 빠졌고, 그 덕에 조르바는 결혼을 몇 번이나 했으며 심지어 80이 다되어 죽기 직전에도 새로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조르바는 지금 이 순간의 쾌락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매일이 환희로 가득하다.

오늘 먹은 포도주가 맛있다며 (포도주를 처음 먹는 것도 아닐텐데) 난리 법썩을 치는 장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기쁨에 겨워서 춤을 덩실덩실 추는 장면을 보며 행복이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펄쩍펄쩍 춤 추고 있는 조르바 옆에서, 책을 펼쳐놓고 사념에 빠진 ‘나’를 보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신이, 조국이, 사업이 결국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허무주의의 앞에서 조르바는 '나' 에게 제발 현재를 살라고 애원한다. 얼마전 읽은 책에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쾌락주의,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행복은 영속적인 사건이 아니라 순간의 집합이기에. 매일이 환희로 가득찬 조르바의 인생은 얼마나 행복해보이는가.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잣니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이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 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조르바는 그래서 자유롭다. 눈 앞의 현재에 집중할 뿐, 미래의 무언가를 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것이 없는 상태, 이것은 나를 구속하는 것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조르바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조르바의 과거 썰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흐르는대로 살았던 인생이다. 전직 군인이었다가, 목수였다가, 유랑하는 노동자이기도 했었고, 광부이기도 했었고, 산투리라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곳 저곳에서 결혼생활도 했고, 머무는 곳마다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계획이라고는 없었고 지켜야할 것도 없었기에, 흐르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나’와 헤어지는 순간에도 조르바는 망설이지 않았다. 때가 되서 이별이 찾아왔다는 듯, 쾌남답게 술 한잔 부딪히고는 화자를 보내준다. 이쯤되면 자유인과 득도한 부처의 모습에 무슨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하다.


조르바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유인이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끝까지 자유인. 호탕하게 웃으며 말처럼 힝힝대다가 똑바로 서서 죽음을 맞은 마지막 장면까지도 너무나 조르바 다워서 매우 인상깊었다.


유언이 끝나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트를 걷어붙이며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달려가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서사는 사실 크게 다이나믹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르바라는 인물을 여행한 기행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를 세 단어로 요약하면 이거다: 카르페디엠, 자유, 실존

- 현재를 살아라.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아야,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그것이 곧 자유다.

- 현실을 살아라. 책 속에서 인생을 찾을게 아니라, 인생 속에서 책을 찾아라.


왜 그 때 선생님이 대학에 입학하는 내게 이 책을 선물해주었는지도 알 것 같다. 그 때 이 책을 주면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쫄지마”


당시 수능보기 일주일 전이라 떨지 말라는 단순한 응원인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성인이 된 나를 위해 해준 말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가능성 앞에서 수능과 대학, 직장, 사회라는 필터링에 주저하지 말고 조르바처럼 거침없이 살아보라는 응원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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