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by 부엉부엉


아빠는 아직도 네살이던 내가 생선가시를 오물오물 발라 뱉어내었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살코기만 발라준 줄 알았는데 얇은 가시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어린 애의 혀가 얼마나 순한지 그것을 쪽하고 입에서 뱉어내는게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내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가끔 생선구이가 밥상머리에 나올때면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신다.


금영이가 대학생이 되고 시집을 가는 순간에도 관식이의 눈에 금영이는 네살짜리 꼬마로 비춰졌다. "속은 똑같은데 겉만 늙었어" 이건 어쩌면 그들 자신에 대한 아쉬움 뿐만 아니라, 자식을 향한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네 살짜리 꼬마가 부캐를 들고 버진로드를 입장하는 장면에서 나는 아빠의 생선가시 이야기가 떠올랐다. 밥상에 생선구이가 등장한게 그동안 몇 십번은 되었을 텐데, 그때마다 30여년 전의 네살짜리 꼬마와 젊은 자신이 떠올랐을 아빠를 생각하니 속은 똑같은데 겉만 늙었다라는 말이 딱 떠오른다.


<폭싹 속았수다>에는 3대의 모녀가 나온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는다. 아홉 살이던 애순이가 일흔 살이 되었어도 여전히 엄마라는 단어는 애리기만 하다. 여전히 엄마가 보고싶은 아홉살짜리 아이지만, 겉만 어른이 되어버린 이 아릿한 일대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기도 할 것이다.


내가 중학생일때, 그러니까 아빠의 나이가 오십이 조금 넘었을 무렵에 나는 아빠가 산소에서 엄마라고 외치며 목놓아 우는 모습을 보았다. 나와 동생은 엄마의 손을 잡고 끌려내려가느라, 그 모습을 아주 찰나밖에 보지 못했지만 어린아이 처럼 엉엉 울던 아빠의 눈물이 아직도 기억 한편에 남아있다. 아빠도 삶이 고달팠을까?


몇 년 전 외할머니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도 급작스럽게 우는 일이 많아졌다. 세상 메마른줄 알았던 엄마가 밥먹다가 갑자기 울고, 티비보다가 갑자기 울고. 육십 먹은 엄마에게도 아흔 넘은 엄마의 존재는 여전히 엄마였나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라고 하는거지 우리 모두 속은 그대로인 사람들이다. 나도 가끔 친구들과 정신머리는 아직 25살에 머물러있는데 나이만 먹고있다며 한탄하는데, 우리 엄마아빠도 애순이 관식이도 금영이도 사실은 다 똑같다. 나를 더 키워내라고 어리광 피우고 싶은 마음을 입밖으로 내느냐 삼키느냐의 차이일 뿐. 인간은 모두 연약하고 애틋한 존재라는 문장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이 드라마를 보며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장면에서는 나를 떠올리고, 또 어느 장면에서는 엄마 아빠를 떠올리며 눈물 콧물을 빼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K장녀라면은 더더욱.


엄마에게 내 동생은 은명이처럼 아픈 손가락이다. 동생이 학교에서 사고칠때마다 방안에서 거실의 한숨소리를 들을때마다, 덕분에 나는 금영이처럼 K장녀 유전자를 더욱 강하게 키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모질게 굴지도 않았지만, 그냥 왠지 그래야할 것 같은 기분이 나를 욕심나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어느 측면에서는 내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그것이 뒤틀린 동기부여인가에 대한 오랜 고민도 있었지만, 나는 결과론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쨋든 내가 잘되고 모두가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그래서 K장녀 유전자는 더 이상 연민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금영이를 보는 내내 공감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금영이도 나도 다음 생에는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향해가는줄 알았는데, 애순이가 말하기를 때때로 여름이었다가 때때로 겨울이었고 지금이 봄 같다고 한다. 나는 매일을 그렇게 살고싶다. 지나보니 여름과 겨울이었지만, 그래도 오늘이 제일 따뜻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살만하고 더 희망차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삶.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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