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를 보고 (2/2)
「부서뜨려야만 한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를 보고(1/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앤드루 네이먼은 드럼을 좋아하지만 주변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차츰 열정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은 초콜렛 싫어하지만 아버지가 좋아하는 초콜렛을 팝콘 위에 뿌려먹어도 싫은 내색 하나 안 하던 사람이다. 앤드루는 늘 메인 드러머의 뒤에서 보조를 하며 악보를 넘겨온 탓일까, 자신감을 계속해서 잃어가고 있었다. 우연히 찾아온 플레처와의 만남에서 기회를 포착했고 성실하게 연습을 해왔던 앤드루는 플레처의 밴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늘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했고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앤드루에게 처음으로 인정욕구를 충족시켜 줬던 사람은 플레처였다.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앤드루에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뻗은 손을 잡을 때의 넘치는 행복감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감정, 경험 그리고 감각은 앤드루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줬다. 앤드루의 삶은 변곡점을 맞이한다.
앤드루에게 스튜디오 밴드 첫 리허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무력감을 줬다. 자신이 뻗는 손, 움직이는 스틱, 구르는 발, 모든 움직임에 의심과 불신이 깃들었다. 계속 드럼 연주를 해야 하는 걸까?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앤드루는 더 치열하게 연습하는 것을 택했다. 지옥 같던 리허설 시간이 끝나고 죽도록 연습하라는 플레처의 말대로 정말 죽도록 연습했다.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연습하고 또 했다. 이전에도 성실했던 앤드루였지만, 이렇게 온전히 자신을 내던지고 마치 연소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드럼과 자신 외에는 세상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앤드루는 달라지고 있었다. 플레처가 정말 의도했는진 모르지만, 그의 교육관대로 앤드루는 기존의 나약하고 연약했던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버리고 성공을 향한 강렬한 열망과 집착으로 견고하게 다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오버브룩 재즈 경연대회 중 쉬는 시간, 선임 드럼 연주자 태너의 악보를 잠시 맡아뒀던 앤드루는 악보를 잃어버린다. 정말 눈 깜짝할 새였다. 자신을 몰아세우는 태너에게 야속함도 느꼈지만, 억울함은 당사자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악보를 잃어버린 태너는 악보를 외우지 못해서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없다고 플레처에게 말한다. 그때 앤드루는 이 위기가 기회처럼 보였다. 앤드루가 악보를 잃어버린 걸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신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회는 오직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고 했던가. 지독한 연습 덕택에 앤드루는 악보 없이도 연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철저히 외웠다고 한들, 자신의 실수로 악보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자신 있게 나서서는 연주하겠다고 말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앤드루는 용기 있게 나섰고 다시 한번 플레처의 인정을 얻어낸다. 오버브룩 재즈 경연에서 무사히 1등도 했고 밴드의 메인 드러머 자리도 꿰찼다. 죽도록 노력했던 만큼 자신을 인정받고 한 단계씩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우상들의 모습이 자신과 겹쳐 보이며 꿈에 점차 다가가고 있다는 감각,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부풀었다. 앤드루는 플레처가 주는 당근에 중독되고 있었다. 플레처의 인정, 플레처 밴드의 메인 드러머 자리, 스튜디오 밴드를 발판 삼아 링컨 센터의 연락을 받는 상상, 그것이 앤드루의 존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 찌를 듯 치솟은 앤드루의 자존감은 자신의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고 또래 친척의 성과만 추켜세워주는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손 꼽히는 음악 대학, 가장 잘 나가는 교수가 이끄는 최고의 재즈 밴드, 그 밴드의 메인 드러머가 자신이었다. 자신은 눈앞에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는데, 그런 자신보다 다른 녀석들을 더 높게 쳐주는 걸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찰리 파커와 같은 최고의 뮤지션이 되는 건 이미 정해진 미래라고 믿는 오만 속에 빠져있었다. 동시에 앤드루는 이제 플레처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앤드루가 바라는 장밋빛 미래로 향하는 길을 모두 플레처로 향하고, 플레처로부터 뻗어나오고 있었다. 그게 앤드루의 광기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었다.
더넬런 경연의 신곡 '카라반'을 두고 라이언 코넬리에게 자신의 메인 드러머 자리를 빼앗겼을 때, 앤드루는 참지 못하고 플레처에게 메인 드러머는 자신의 자리라고 소리친다. 과거 소심하고 조용한 앤드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성공에 대한 광기와 집착이 플레처의 권위가 만드는 공포보다 우위에 있었다. 실력으로 따내라는 플레처의 말에 더욱 악에 받쳐서 연인이었던 니콜에게 이별을 고하고 오로지 연습에 몰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슬픔도, 과도한 연습으로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는 아픈 손도, 플레처에게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빼앗겨 버린 메인 드러머 자리를 상실한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앤드루는 자신의 전부를 잃어버린 셈이다.
메인 드러머 자리를 놓고 9시에 시작한 수업이 새벽 2시가 넘도록 플레처가 원하는 템포의 더블 타임 스윙을 치며, 간신히 밴드의 메인 드러머 자리를 되찾았지만 어쩐지 앤드루는 공허했다. 이젠 '해냈다!'라는 성취감보다는 지치고, 무력하고, 공허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걸까', '이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머릿속을 맴도는 물음에 앤드루는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의 연속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피 땀 흘려가며 노력해도 플레처의 말 한마디면 자신의 존재는 위태로워진다. 플레처에게 인정받는 드러머가 되는 것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최고의 드러머가 언제부터 플레처의 인정받는 드러머였을까? 하지만 지금의 앤드루에게는 더 넓게, 더 다양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동안 죽도록 노력한 모든 시간과 흘린 피와 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꿈에 도달하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만하고 부끄러운 실수들을 외면하기 위해, 앤드루는 반드시 플레처의 인정과 플레처가 이끄는 밴드의 메인드러머 자리를 지켜내야만 했다. 그게 더넬런 경연에서 교통사고가 당한 상태로 비틀거리며 경연장으로 향했던 이유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무대에 올라 드럼을 쳐야만 했던 이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적은 없었다. 앤드루의 몸은 이미 드럼을 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넌 끝이라는 플레처의 선언과 함께 앤드루의 음악 인생도 끝나고 말았다. 그제야 앤드루의 분노는 플레처를 향했다. 꿈을 향한 여정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불안과 공포에 빠뜨린 플레처를 향한 분노가 뻗어나갔다. 앤드루의 분노는 플레처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교육방식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끝을 맞이한 건 앤드루뿐만 아니라 플레처도 마찬가지였다.
「위플래쉬」는 플레처와 앤드루, 각자의 이상을 향한 광기어린 집착이 만드는 두 세계의 충돌을 긴장감 있게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극단적인 두 인물의 성격과 행동이 만드는 극적인 전개는 공감대를 파괴한다기 보단, 내 일상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쾌감이 있었다. 두 세계의 충돌 이후 펼쳐지는 융화와 화합의 연출은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충돌의 연출보다 더 몰입감이 강했다. 이게 첫 번째 감상과 달리 두 번째 감상에서 음악 영화의 인상이 강했던 이유이지 않을까. 「위플래쉬」는 플레처와 앤드루의 광기와는 별개로 음악이 제공하는 경이로운 고양감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이토록 마지막 기억이 선명한 영화는 흔치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지막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사실 플레처의 진짜 광기는 더넬런 경연 이후 라이브 재즈 클럽에서 우연히 앤드루를 만나며 펼쳐진다. 셰이퍼에서 잘린 후 프로 재즈 밴드를 결성해 jvc페스티벌 개막 공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 밴드의 드러머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서 정점을 찍는다. 플레처는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길 것을 알면서도, 속된 말로 앤드루를 '지읒'되어 보라고 만든 무대였다.
플레처는 앤드루가 자신을 고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플레처는 자신의 명성과 커리어를 걸고 복수를 계획했다. 이 바닥을 영영 떠야 할지도 모르지만 플레처는 드러머 자리에 앤드루를 앉히고 그에게 알려주지 않은 완전 다른 곡을 준비했다. 그렇게 이미 꺾여버린 앤드루의 꿈이라는 날개를 완전히 꺾다 못해 트라우마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자리가 준비되었다. '업스윙잉'이 시작되고 앤드루는 깨달았다. 자신의 드러머라는 꿈과 희망이 완전히 끝나버렸다는 사실을. 하지만 플레처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도저히 가만 두고 볼 순 없었다.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아버지의 품에서 앤드루는 어떤 용기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
앤드루야 말로 플레처가 애타게 찾던 찰리 파커의 화신 아니었을까. 플레처가 머리 위로 날린 업스윙잉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드러머는 밴드에서 곡을 이끌어가는 존재다. 드럼이 전개하는 박자 위에 다른 악기들의 음악이 펼쳐진다. 플레처의 지휘를 건너뛰고 앤드루의 드럼에서 시작한 '카라반'은 지휘자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카라반이라는 곡 전체를 따라가며 나도 마치 밴드의 일원이 된듯한 일체감과 고양감이 느껴졌다. 근데 카라반이 끝나고 나면? 그럼 또다시 플레처가 앤드루를 마음대로 흔들어대는 꼴을 볼 것인가? 앤드루의 드럼은 멈추지 않았다. '멈춰 있을 시간이 없어. 우리 계속 가자. 우리의 즐거움은 끝나지 않았잖아!'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진 앤드루의 드럼 연주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플레처가 카라반을 이끄는 앤드루를 바라보는 시선도 왠지 모르게 누그러져 보였다. 처음에는 분명한 적으로 바라보고, 분노하며, 욕하고, 서로를 노려 보았지만 연주가 계속될수록 둘 사이를 연결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분명 음악에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모두가 하나 되어 연주하는 그 순간만큼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다 함께 나아간다. 그들이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감각, 그것이 앤드루와 플레처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플레처의 지휘에서 벗어나 자신이 스스로 카라반을 연주하면서 앤드루는 완전히 플레처에게 독립된 세계를 구축해 냈다. 이제 플레처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적에서 밴드의 지휘권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 예측 불가능한 길로 향하는 음악을 함께 운전하는 동료가 되고, 극적인 피날레를 함께 만드는 최고의 파트너로 나아가고 있었다. 음악이 주는 환희를 함께 공유하며 둘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하나 되어 교감하고 소통하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정말 플레처가 조 존스라면, 이 영화 속에서 도대체 몇 차례의 심벌즈를 던졌는지 모르겠다. 앤드루는 플레처가 던진 심벌즈를 맞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앤드루는 플레처가 던진 수많은 심벌즈에 맞아 죽긴커녕 더욱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카라반 연주가 끝나고 꺼진 조명 속에서 울려퍼지는 앤드루의 드럼과 앤드루의 확신에 찬 태도에 비로소 플레처도 이 사실을 느꼈다.
마지막 무대에 오르기 전, 우연히 마주친 라이브 재즈클럽에서 앤드루에게 말했던 자신은 찰리 파커와 같은 제자를 만들지 못했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찰리 파커가 될 수도 있어 보이는 남자의 연주를 함께 하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앤드루와 플레처 모두 음악에 진심이었기에 그토록 부딪히고 극으로 치달으며 감정을 드러냈고, 마지막 이 사건, 이 순간에 도달했다. 둘 다 그간 쌓아뒀던 앙금, 케케묵은 감정 모든 건 드럼에 모두 털어버리고 더 나은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을 흥분시키고 흠뻑 빠지게 만드는 음악, 그 세계 속에 앤드루와 플레처가 공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