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지 않지만 살아있는 몸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생각나는 문장이 있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네.”
난 그 사실이 반갑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냥 또다시 시작되는 하루가 지겨울 뿐이었다.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은 늘 조금 과했다.
빛이 너무 선명히 부시면 나는 오히려 뒤로 물러나 피하고 싶었다.
날씨가 좋을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무거워졌고,
햇빛은 내 안의 그늘을 더욱 비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나의 그늘을 무언가가 비추는 것이 너무 싫은 나머지, 종종 커튼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 어두운 방 안에서 하루를 버티는 법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사람들은 내게 그런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나는 웃는 얼굴로 답을 대신 대신했지만,
그 웃음이 어디에서, 무슨 이유로 나오는지는 알지 못했다.
몸은 살아 있었지만 그와 달리 마음은 죽어있었고,
선명하게 느끼던 감정은 어느 순간부터 희미해져 버렸다.
그렇지만 그 희미해진 감정을 선명하게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이 선명해지면 내가 나라는 사람이 스러져버릴까 무서웠다.
어떤 날들은 움직이는 것조차 벅찼다.
씻고, 밥을 먹고, 집을 나서고.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고 배우고 자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것들은 숙제가 되었고 깰 수 없는 과제가 되어버렸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산처럼 쌓였지만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무채색의 시간은 길게 이어졌다.
아무 색도, 아무 온기도 들어오지 않는 밋밋한 계절.
나는 그 계절을 통과하며
어떤 순간에는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는 마음이 있었고
어떤 순간에는 “그래도 하루를 버텨보자” 는 마음이 있었다.
절망과 자그마한 희망 사이에서 나는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내가 가장 아래에 있을 때, 문장들은 더욱 선명해졌다.
몸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단어들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무너지고, 쓰러지는 와중에도 기록하여 ‘나’라는 사람을 나중에라도 다시 보고 싶었고,
기록이 쌓이면서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되면 이상하게 손이 움직였다.
하루 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이 밤이 오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썼다.
쓰지 않으면 바스러질 것 같았고,
다음날에 내가 살아있을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화려한 회복담도 아니고, 무겁기만 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살아 있는 몸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그런 버거운 날들을 통과해 온 한 사람의
다시 매달리고, 다시 배우고, 다시 살아보기로 선택하고 쓰는 기록들이다.
나는 그 시간을 ‘계절’로 구분해 보았다.
감정이 사라진 무채색의 겨울 같은 시기,
모든 것이 붕괴되어 버리는 폭우의 계절,
조심스럽게 회복을 시도하던 초봄의 시기,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흔들리더라도 햇살을 마주할 수 있는 계절.
그리고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왠지 닿아 있는 것만 같은 마지막 계절.
나는 그 계절을
‘다섯 번째 계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론 그 계절은 아직 형태도 없고, 이름도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계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감각이 든다.
살고 싶지 않았던 날들과, 그럼에도 살아 있는 몸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 글은 그 계절에 도달하기까지의 기록이다.
아주 오래 전의 힘들어하던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향해 나아가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하려 한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이 글은, 그 여정의 첫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