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전장

by 온담

우리 집은 평범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할지와 같은 평범한 대화가 집안에서 오갔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느라 분주한 아침의 모습, 그리고 저녁이면 식탁에서 밥을 먹는 평범한 모습.

누군가에게는 그저 매우 평범한 일상의 배경이 될 만한 모습과 공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집은 늘 조금 긴장되는 장소였다.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고, 큰소리가 나는 경우도 드물었지만

집 안에서는 조심스러운 공기가 늘 흘렀다.

날카롭고 칼 같이 휘몰아치는 공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느긋하고 편안한 공기도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딘가의 공기였지만, 그래서 더욱 긴장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런 영향 때문인지 말도 없고 조용했다.

목소리도 작았고, 걸음도 조심했고, 하물며 숨도 조심히 쉬었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날 가르친 적은 없다.

오히려 좀 더 적극적으로, 당당하게 하라고 하면 했지, 조용히 하라고 가르치진 않았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나서면 오지랖이라고 할 것 같았고,

무언가를 결정하면 이기적이라고 할 것 같았고,

말이 많으면 시끄럽다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하기도 전에 조용히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다.


가끔, 집이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곳인데

점점 안쪽으로 가면 갈수록 말하지 않은 감정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에서, 조심조심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얼음이 언제 깨질지는 알 수 없었다.

늘 긴장한 상태로 하루를 살았다.

그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집에는 규칙이 있었다.

이건 강제로 ‘넌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칙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정한 규칙이지만,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안했다.

아니, 사실 편안하지 않았다. 불편했다.

목소리는 낮추고, 표정은 밝으며, 늘 활발히 보일 것.

이 세 가지 규칙은 암묵적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아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싫은 것도

표정이든 말로든 꺼내기 어려웠다.

늘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한 300번은 죽은 느낌이었고

활발히 보이고 싶어 마구 활동하고 다니면 내가 지쳐 떨어졌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때 마냥 밝은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예전에 한 선생님이 그랬다.

초등학교 때 애들이랑 놀 때 환하게 웃는 것 외에는 밝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밝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감정 표현도 조금은 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긴 하다.


그렇게 집에서도, 밖에서도 감정을 숨긴 내게 집이라는 공간은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평범한 거실, 평범한 방, 평범한 풍경 속에서

나는 나와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어떻게 말해야 괜찮을지, 어떻게 행동해야 평온해 보일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모두가 안심할지 늘 계산하며 살았다.


집은 어떻게 보면 작은 사회인 것 같다.

그 조그마한 사회 속에서,

나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법과 내 생각과 느낌을 억누르는 법을 배웠다.

“잘 웃는 아이“

“조용한 아이”

“말썽 없는 아이”

이렇게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 역할은 언젠가부터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더 중요해졌다.


집은 정말 평범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고, 더 전장 같다.

아무 문제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만 조용히 무너져 갈 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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