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이기 위해 웃는 아이

by 온담

나는 잘 웃는 아이였다.

정확히는 웃어야만 한다고 믿는 아이였다.


물론 그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집안의 공기와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을 때의 불안한 공기를 평온하게 유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밝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웃음은 선택이 아니었다. 필수적인 역할이었다.


유치원 때의 나는 정말 티 없이 맑고 순수했으며, 정말 환하게 웃는 아이였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조용해지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다.

선생님들은 밝은 나의 모습을 좋아하고 칭찬해 주셨지만,

그 칭찬은 오히려 내가 더 밝아져야만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려주는 꼴이 되었다.

그 칭찬에 갇혀, 나는 더 웃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이고 밝은 아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웃었고, 슬퍼도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화가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즐거운 일이 있어도 난 웃긴 했지만, 진심으로 좋아서 웃진 않았다.

그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웃었을 뿐이다.


웃는 얼굴에 침은 뱉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부조리한 일이 있어도, 힘들어도 웃기만 했다.

나의 표정은 고장 났다.

웃는 건 가식적으로라도 하겠는데, 화나거나 슬픈 표정 같은 건 아예 할 수도 없었다.


초등학생 4학년까지는 그래도 좀 나았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진심으로 웃을 때가 많지는 않아도 있긴 있었다.

문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오고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은근히 따돌림을 당했고, 친구라고는 1도 없었다.

사실 친구는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름만 ‘친구’지 뒤에서는 험담을 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앞담을 하던지, 아니면 조용히 뒷담을 까던지.

최소 내 귀에는 안 들리게 뒷담 깠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더욱 어두워졌고, 학교도 가고 싶지 않았다.

등교 거부를 하진 않았지만, 나에겐 버거운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난 학교에서 웃고 다녔다.

늘 밝은 아이였다.

“나는 상처 같은 거 없는 아이예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이러한 일들 때문인지, 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에 민감해졌다.

아무래도 민감한 편인데 더욱 민감해진 계기였던 것 같다.

공기가 조금 달라져도 “내가 잘못 말한 건가?” 먼저 의심부터 했었다.

그래서 더 잘 웃고, 더 열심히 맞춰주고, 그 누구의 감정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상처만큼은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어떤 표정으로 있어도 되는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기쁘지 않아도 기쁜 척을 했고,

무섭거나 슬퍼도 그 감정을 혼자 있을 때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웃기만 하라고 한 적은 없다.

나만의 규칙이었으나, 더더욱 심해졌다.


웃음은 점점 의무가 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나의 예전 모습을 아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밝은 시절의 내가 좋다고.

나는 이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힘든 건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웃었다.

내가 힘든 걸 몰라주면 좋겠어서.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나의 힘듦을 알아주면 좋겠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 웃음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오히려 웃으면 웃을수록

나의 감정은 흐릿해져 갔다.

웃고 나면 ‘진짜 내 감정은 뭐였을까?’ 싶을 때가 많았고,

집에서는 허무하고, 지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웃는 것에 너무 집착한 결과물이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정말 활발하고 밝은 아이였지만

이미 나는 바스스 부서져가고 있는 상태였다.

크게 무너지는 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시나브로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 시절,

웃지 않으면 무너질 것만 같았고

웃으면 웃을수록 더 무너지는 아이였다.


결국 이 아이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무너짐의 시작은 아주 조용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이어진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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