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단어로 덮지 말자

우리는 단순히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다

by 나의 바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빨리 서로를 ‘진단’한다.

혈액형별 성격유형, MBTI, 애착유형 등

“너 A형이라 소심하구나”,

“역시 T는 감정을 몰라”,
“회피형이랑은 손절이 답이다.”

말은 쉽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복잡한 역사와 감정, 성장의 맥락이 빠져 있다.


우리는 단순한 한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존재다.

분류는 이해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사람을 '그렇다'라고 단정 짓는 순간 이해는 멈추고 관계는 닫힌다.


단순히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가 아니라 한계와 낙인의 굴레에 갇히게 되며,

그 유형들이 관계를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좁혀버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정말 간단히 나누어도 되는 존재일까?

우리는 누구도 하나의 유형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관계가 끝나고 나면 자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반복된 패턴은 없었는지.

나 역시 그랬다.


내 마음을 정리하는 중에 애착유형이라는 개념을 배웠고, 상당히 신선한 접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회피형' '불안형'으로 단순히 규정짓는 듯한 부분도 많이 보였다.


그러나 애착유형은 이름표가 아니라 구조이며, 심리학적 해석의 도구이다.

나는 우리가 부딪힌 이유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기에 이 이론을 기반으로 지나온 관계를 복기했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파도를 무작정 넘기에는, 내가 너무 많이 흔들렸고, 너무 오래 아팠기 때문이다.

즉, 내가 배운 애착유형은 나를 위한 설명이자, 그 사람을 위한 이해였다.


이 이론은 절대 누군가의 성격을 단정하거나 낙인찍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불안하거나 회피적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어떤 심리적 구조 안에서 움직였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가 불안한 이유, 그가 멀어진 이유,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순간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언어가 필요했을 뿐이다.


나도 불안정 애착일 수 있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고, 자주 감정을 나누고 싶고, 때로는 혼자 걱정하고 설레발을 치는 사람이 되고는 하니까

그래서 더 조심하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의 상처가 되고 싶지 않아서.


감정이란 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무섭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을 긋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호흡을 지키는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만났던 방식은 어쩌면 조금 빠르고, 서로에게 낯설었고, 그래서 더 자주 엇갈렸다.

나는 그걸 미움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낯선 언어를 배우는 과정 중 일어난, 작은 충돌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다만, 그 충돌을 외면하거나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지나가는 건

어쩌면 조금 아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쉬움을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누군가 다시 같은 패턴에서 아프지 않도록, 혹은 나 자신이 같은 방식으로 또 흔들리지 않도록.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를 규정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다.

나를 이해하고, 그를 이해하고,

우리가 왜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용히 복기하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글이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불안하고, 회피하며, 동시에 사랑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제발, 누군가를 하나의 단어로 덮어버리진 말자.

그건 이해가 아니라 단절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