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웃어넘길 수 없었던 이유

무지하거나 무례했거나

by 나의 바다

여느때처럼 전화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결혼에 관한 이야기 중에 어느 맥락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해내긴 어렵지만,

‘형이 피임 도구에 구멍을 뚫어놔야 한다고 했다’는 식의 농담을 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말문이 막히며 불안을 느꼈지만, ‘장난이겠지’ 생각하고 넘어가야겠다고 합리화하며 최대한 그 말을 잊으려고 노력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웃자고 한 말이었다 해도, 그것은 언어폭력이지 않았을까.


성과 관련된 말은 단순한 대화 주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신뢰와 존중, 그리고 안전에 대한 인식이 존재해야하며, 그 인식은 관계의 윤리와 깊이 연결된 구조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그것도 웃으며 문제의식 없이 내게 전했다는 사실은, 그가 그 말이 지닌 무게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런 말에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반드시 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이 관계 안에서 내 감정을 온전히 기대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관계 안에서는 나를 내가 지켜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누구보다도, 이런 경계에 더 민감했어야 했다.

상대가 불편할 수 있는 말은 스스로 걸러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내 마음을 잘라냈다.

무지했거나, 무례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그 관계 안에서 나를 조용히 누르며 노력해 왔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먼저 떠오른 건 이런 걱정들이었다:


‘또 감정적인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혹시 불편해하진 않을까?’


내가 전하려는 말의 본질보다, 그 말을 꺼내는 ‘방식’과 ‘태도’가 먼저 평가받는 느낌. 그 순간부터 나는 정서적으로 대등한 파트너가 아니었다.


감정에 휘둘리고, 자꾸 귀찮게 구는 사람처럼 그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잘려나가야 할 ‘변수’로 여겨졌던 것이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그 사람의 태도 전체를 드러낸다.

그 말 한마디가, 이미 지나간 수많은 대화의 균열을 다시 불러왔다.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자기 기준만을 중심에 두고 해석하는 방식은 결국 대화가 아닌 방어로 이어진다.

그건 쌓이고, 굳어지고, 어느 순간엔 단절로 이어진다.


나는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가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