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쓰레기통

나의 부정감정은 당신에게서 기인한 것이었음에도,

by 나의 바다

“저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에요.”

나는 그 말 앞에서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너무 놀라서— 어떤 감정부터 느껴야 할지 몰랐던 게 맞다.

나는 그 순간을 돌아본다. 내가 표현한 말들이 어쩌면 거칠고, 과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처받았다'는 말의
다른 언어였고, 그 감정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그의 말투와 태도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마음의 경로를 단 한마디로 덮어버렸다.


감정 쓰레기통.

그 말 하나로, 이유도 맥락도 없이 내 표현은 무의미한 감정 과잉으로 정리되었다.


정말 내가 누군가에게 감정 쓰레기를 쏟아내는 사람이었을까?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말은, 상대와 무관한 내면의 불만이나 스트레스를 아무 책임감 없이, 아무 맥락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경우에야 해당된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말한 건, 지극히 ‘그’로부터 시작된 감정이었다.
그의 무심한 말투, 그가 대화를 피하는 태도, 그가 내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

내 상처는 그에게서 비롯되었고, 나는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없어

우리라는 관계 안에서 표현한 것이었다.

내 말이 날카로웠다면, 그건 그만큼 상처가 컸기 때문이지,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준비된 말은 아니었다.


서운했다는 말을 꺼내면, 그가 내 손을 잡아주기를 바랐고, 내가 느끼는 온도의 차이를 함께 느껴주길 바랐던 거다.


그런데 그는 나의 감정을 자신을 향한 비난과 공격으로만 받아들였고, 그 순간부터 나는 감정적인 사람, 피곤한 사람, 배려 없는 사람, 무례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침묵했고,

그 말마저도 또 하나의 쓰레기로 보일까 봐 침묵과 사과로 대신했다.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말은 너무 쉽게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는 감정을 꺼내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그를 비난하려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온도를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한 감정 표현은 당신을 짓누르려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자리에 서 있기를 바란 말이었다고,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용기이자, 너도 나만큼 나를 좀 사랑해 달라는 서툰 투정이었다고.


나는 끝끝내 그에게 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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