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물길을 따라 걸으며

첫 번째 바다, 그리고 지금의 바다

by 나의 바다

어릴 적부터 바다에 끌렸던 나에게 첫 직장은 그 매력을 보다 진지하게,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나를 반기지 않았다.

첫 직장에서 나는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과 동시에 그 속에 숨어 있는 많은 도전 과제들을 마주했다.


내가 마주한 바다는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더 위계적이며, 더 무심한 공간이었다.

나는 해양인력 양성기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기획하는 부서에 있었다.
국제 협력과 글로벌 감각 대학 때 전공하고 배웠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감각'을 강조하던 그 팀에서, 나의 상사들에게서 나는 너무 ‘낯선 아이’이었다.


그곳엔 수십 년간 바다 위에서 경력을 쌓아온 해기사 출신의 상사들이 있었고,
그들의 시선에서 나는

‘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에 불과했다.

회의에서 말끝마다 묻혀버리는 내 의견, 무시라는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투명한 존재감,
그리고 때로는 "니가 뭔데"라는 태도로 노골적으로 던져지던 말들


"바다를 몰라서 그래."
"배 한 번 안 타봤으면서 왜 이렇게 말을 잘해요?"

"잘 모르면서, 이 쪽 업계 처음인 거 티나네"

"영어만 잘한다고 해외출장 왔다 갔다 국제회의 대응하는 거 쉬울 거 같지?"


그 말들이 내게 던진 건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내가 배운 바다, 내가 상상했던 바다, 내가 사랑했던 바다가 그들에게는 그냥 상명하복의 무대,
선후배 위계 속 질서 유지의 대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서 있었다.

나의 이력은, 학력은, 언어 능력은 그곳에서 아무런 언어가 되지 못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이 업계에서 얼마나 버텼는가', '누구 밑에서 일했는가'와 같은,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규범들이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를 견뎌야 했다.


그중 한 명은 본부장급의 위치에 있었고, 그의 한마디는 그날 나의 감정을 반 토막 내버리곤 했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기준에 ‘익숙하지 않음’이 나의 결격 사유가 되는 구조였다.


나는 질문이 많았고,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 구조 속에서는 ‘질문하는 자세’가 오히려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나는 바다를 닮고 싶었지만, 그 바다를 품은 조직에서는 ‘다른 물결’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바닷가를 걷곤 했다. 정말 말 그대로, 육지의 경계 끝을 따라 걸으며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왜 이 길을 택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그 시간을 견디면서, 내가 말하는 언어와 그들이 말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자책했다. 우울했고, 깊은 심해 속에서 숨 쉴 곳 없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른 바다에 닿아 있다.

직장을 옮긴 뒤, 나는 또다시 바다와 마주했다.

여전히 해운과 관련된 일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조직이 바뀐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다를 기록하고, 해석하고,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다.


이 바다에도 여전히 위계는 있고, 속도는 빠르고, 가끔은 마음이 까슬까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번 바다는 조금 다르다. 내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내 방식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시야가 있다.

나는 이제야, ‘바다와 함께 일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씩 다시 배워가고 있다.


첫 번째 바다에서 나는 상처받았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안고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 바다가 나를 만든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 바다에서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고, ‘내 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법’을 익혔다.

나는 이제, 파도가 친다고 해서 그게 나를 위협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부는 바람도 그저 지나가는 리듬으로 느낀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단순히 ‘배운 적 없는 바다’를 마주했던 게 아니라


태도와 문화, 권력과 침묵이 얽힌 바다를 건너고 있었던 것 같다.

바다라는 공간은 여전히 거대하고,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냉정한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바다에 조금 더 ‘단단하게’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지금의 바다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여전히 물길을 따라 걷지만, 더는 그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다.


새로운 직장에서, 나는 바다가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배워가고 있다.

이 바다는 내가 선택한 속도로, 내가 읽어낸 방식대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바다로 남게 될 것이다.


바다는 여전히 나의 동반자이자, 매일을 살게 하는 곳이다.

언젠가는 또 다른 항로에서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겠지만,


나는 오늘도 이 물길을 따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