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가 듣고 자란 말씨

고향을 말하는 법, 사투리

by 나의 바다

서울에서는 부산사람, 부산에서는 서울사람


그게 내 정체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서울에서 자랐지만, 부산에서 태어났고, 스스로도 아직 ‘어디 사람’이라고 말할 때 약간은 머뭇거린다. (곧 ‘서울이요’ 라고는 하지만)


부산 사투리는 내가 말문을 열 때,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 쓰던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땐 문장 끝마다 억지로 어미를 바꿨다.
“~했어.” “~거든?” “진짜?”
근데 아무리 그래도 억양 하나로 티가 났다.
무심코 튀어나온 이응에 악센트가 들어가는 모먼트들... 그게 나를 들통나게 했고 때로는 위축되기도 했다.


반면, 나중에 부산으로 돌아와 직장을 구했을 땐
“서울 냄새나는데?”라는 말을 들었다.

“서울서 컸어요? 서울깍쟁이네~”
“근데 말투에 경상도 억양은 있네요~” 그 사이 어딘가에 내 말씨는 고여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닌 억양으로 말한다. 회의할 땐 거의 표준어에 가깝지만, 흥분하거나 감정이 북받치면 혹은 동향사람을 만나면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듯 확 튀어나온다.

어떨 땐 내가 무슨 말씨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중 억양으로 살다 보면 ‘나는 어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나는 어디 말씨로 살아야 하나’로 바뀐다.

예전에 선배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서울 사람 맞죠? 근데 왜 이렇게 말투가 안 고쳐져요?” 그 말을 듣고 좀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내 정체성의 어느 부분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떠다니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금은 서울스럽고, 조금은 부산스러운 이 말씨가

나를 만든 '나만의 말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서울의 말은 내 현실이고, 부산의 말은 내 그리움이다.

이 말씨로 사랑을 했고, 이 말씨로 울기도 했고, 이 말씨로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나의 말투는 단순한 억양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 주는 방식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말씨는, 여전히 어디론가 날아가는 갈매기처럼 내 말 끝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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