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되고 나서도 지나면 잊곤 한다.
요새 인터넷에서 '틀딱충'이라는 말을 종종 볼 수 있다. 꼰대 절정의 중년인 '개저씨'가 나이를 먹어 '틀딱충'이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틀딱충'이란 고리타분한 소리를 늘어놓고 예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이 나이만 든 아집 덩어리의 노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그들의 행태는 대게 지하철에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도 당차게 새치기를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전화를 하는데 큰 소리로 하거나 한다. 영화관에서는 쩝쩝거리는 것은 예사고 일행과 수다를 즐기거나 심지어 전화도 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젊은이에게 "요즘 젊은것들은"으로 시작해서 "가정교육"으로 끝맺는 훈계를 한다.
내가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대중교통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인터넷에서 손가락질하는 '틀딱충' 들을 많이 봤던 것 같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새치기를 하시거나,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내리기 전에 몸부터 집어넣으시거나, 큰 소리로 고래고래 통화를 하는 모습들. 대중교통에서 내가 겪었던 불편을 떠올리며 젊은 사람들이 댓글로 '틀딱충'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대중교통에서 새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어르신들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어느 날 몸이 엄청 아팠던 때가 있다. 장염과 몸살이 함께 와서 이러다가 몸이 끊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자는 사이에 누군가 면도날을 관절 사이사이에 심어 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이불에 납을 달아둔 것처럼 무거웠고, 현관문을 여는 데에도 뼈에서 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콧바람에 인중이 그을리는 것 같았다. 익숙한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데 너무 힘들어 에스컬레이터에 걸터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리 먼 거리를 가는 것이 아닌데도 노약자석에 앉아서 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정도였다. 마치 하루 사이에 몇십 년은 늙어 할아버지가 된 것만 같았다.
어찌어찌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마치고 잠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기침을 하고 계신 머리 새하얀 할머니가 계셨다. 기침 소리는 작았지만 몸은 크게 흔들렸다. 불규칙하게 내뱉는 기침에 마치 전 100년 가까이 되어가는 전 생애가 흔들리는 광경 같았다. 그러다 지금 아파 죽을까 겁을 먹게 한 이 몸살 장염의 고통이 저기 앉아 계신 할머니에겐 일상일 수 있겠구나 했다. 그들은 매일이 지금 나와 같겠구나 생각을 하니 뭔가 먹먹해졌다. 지금의 내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디서 일어나든 그곳이 병원 침상 위 같기도 하겠구나. 매일이 장염 같고, 몸살 같을까?
시끄럽게 통화하는 할아버지의 귀를 들여다보면 거기엔 이미 70년은 마모가 되어 바싹 마른 고막이 있을 터다. 초조하게 어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내 옆에 서 있는 이 어르신은, 이미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몇 천년이 지난 고목 같은 다리로 가까스로 늙은 몸과 무정하게 무거운 짐을 지탱하고 있다. 줄 서기만 70년, 80년 해온 노년의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 어렵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스에서 얼마나 앉아서 가고 싶으실까 싶기도 하다.
의사는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감기가 다 그렇죠 뭐라며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 차례에 할머니는 마른기침을 하며 의사가 기다리고 있는 진료실 문을 열었다. 기름 칠을 덜한 문에서 끼익 소리가 났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억지로 밥을 먹고 약을 먹으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불과 며칠 뒤 언제 아팠냐는 듯 몸이 좋아졌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다른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새치기를 하며 급하게 지하철에 올랐던 허리가 굽으신 할머니를 보며, 장염과 몸살을 함께 앓았던 날을 떠올린다.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몸이 아플 때 나는 배려 받기를 원하고, 심할 땐 타인에게 배려를 강요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