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복잡한 일이 많으면 짜증으로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두통에 얼굴을 찌푸리는 것 같으나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서 두통이 찾아오는 것 같다. 스트레스에 미간을 계속 찌푸리고 있다보면 주름 사이로 두통이 스멀스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느 날엔가 유튜브를 보다 미국 전 해군대장 맥 레이븐의 연설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이불을 개는 것부터 시작하라
세상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세상을 바꾸려는 거대한 일을 시작할 때에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안심 되었다.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좌절이 아니라 시도는 할 수 있으나 하지 않는 나의 나태는 뭔가 희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혹시 비참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집에 돌아와 정돈된 침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내일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게 될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내 잊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불을 개기는커녕 외출하고 벗은 옷은 컴퓨터 앞 의자에 켭켭이 쌓여 에펠탑처럼 높아가고 있었다. 회사 일로 바쁜 것의 가장 큰 무서움은 엄청 바쁘다가도 잠깐의 한가로움이 찾아오면 그것을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뭔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이 찾아 온다는 것이다. 바쁜 하루를 보냈으나 하루가 끝나고 남은 게 없다는 생각. 축적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루가 지나가고야 말았구나라는 생각. 그 텅빈 마음을 우리는 넷플릭스 앞에 앉아 캔맥주와 마른 오징어로 채우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주말을 그토록 기다리는 이유는 평일에 유의미한 무언가를 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주말은 2/7에 불과한데 저축보다 소비가 많은 삶이라니.
그렇게 생각은 많고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을 때 안 개던 이불을 개 보았다. 침대 위에 이불은 어차피 잘 때 펴고 자는데 왜 개야하나 생각했으나 그냥 갰다. 일어나서 이불을 길게 쭉 폈다가 두 귀퉁이를 손으로 잡아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으면 끝. 발을 놓는 곳 근처에 갠 이불을 올려 놓고 그 위에 베개를 놓았다. 두 발자국 떨어져서 내가 이불을 갠 침대를 바라보니 '괜찮네'라는 생각을 했다.
가방을 챙기고 놓고 갈뻔한 마스크를 손에 쥐고 문을 나섰다. 그 날은 월요일이라 특히 바쁜 하루였다. 아주 조금의 야근을 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몸에 힘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가며 늙어서 체력이 떨어졌나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힘을 내 우리집 계단을 올랐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먼저 놓는다. 든 건 별로 없어도 이상하게 무거운 가방이다. 옷을 벗어 놓고 침실로 간다. 당연스레 언제나 같은 공간이지만 오늘 아침에 깔끔하게 갠 이불을 바라본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으나 간단하지만 그래도 아침에 깔끔하게 개고 나간 이불을 바라보니 내가 제대로 하고 있구나란 느낌이 들었다. 괜찮구나, 제대로 하고있구나. 오늘부터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게끔 된다. 어차피 곧 다시 펴고 덮을 이불이어도 그렇다.
그 날 이후부터 이불을 개고 있다. 아직은 완전히 습관으로 자리잡지 않아 간혹 까먹을 때가 있다. 그래도 대부분 이불을 개고 집을 나선다. 집에 들어오면 내가 갠 이불을 한번씩 확인한다. 아침과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나 왠지 모르게 눈으로 꼭 확인하곤 한다. 내가 한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인지, 내가 저기에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묘한 충족감을 느낀다.
마음이 싱숭생숭 하고 어디서부터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것도 좋은 방법같다. 의미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가볍게 하는 사소한 것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잘게 모여 우리의 일상을 떠 받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