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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Aug 17. 2024

나는 조금 더 내가 되었다

2년이 지났다

     글을 쓴 지 2년이 넘었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게 2022년 5월이었다. 코로나가 아직 한창이었던 때인 것 같다. 더 이상 속에 담아둔 이야기도 많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쏟아낼 이야기가 없어 글을 쓰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새 2년이 지나고  그동안 기록할 만한 많은 일이 있었다. 


     10년째 내 옆에 함께한 나의 반려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가족이 3배가 넘게 늘었다(우리 집안은 가족이 적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다. 두 번째 이직이고 세 번째 회사였다. 그러면서 팀장이 되었다. 야근을 달고 산다. 10시간 넘는 비행으로 이탈리아도 가고, 하와이도 가보았다. 멀리 가봐야 도쿄였던 나에게 그곳들은 지구반대편의 실재하는지도 의심스러운 미지의 세계였다. 


     헤어스타일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나의 이마를 만 천하에 공개하였다. 넓은 이마가 콤플렉스라 앞머리로 어떻게든 가리고 다녔는데 아내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드디어 '깐 이마'를 하게 되었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우스워 보이긴 하지만 나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이마를 가리고 싶어서 모진 노력을 했었는데 그 노력을 왜 했나싶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생긴대로 산다. 대신 깔끔하게 다니자'를 생각하며 산다.


     감사하게도 매년마다 지난해를 되돌아보면 뿌듯한 결과물들이 있었다. 하루, 일주일, 한 달이 고되어도 마치 산 정상에서 아래를 굽어 내려다보면 피로를 잊고 감탄하고, 스스로가 괜히 뿌듯해지는 것처럼 한 해를 되돌아보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올해의 마지막에도 한 해를 되돌아 볼 때 같은 기분을 느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착실히 '채워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이룬 것은 내 안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바깥에 쌓아두는 것이다. 그것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채울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뿌듯한 마음을 느끼고, 어떤 것에 잘 웃고, 어떤 것을 체질적으로 못하고 이런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채워진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과정에서 한 걸음씩 나는 내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웠던 새벽이 자연스럽게 아침을 밝히는 것처럼 '온전한 내가 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될수록 좋은 것은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깜냥'을 알게 된다. 할 수 없는 것은 큰 저항 없이 의연하게 포기하고, 할 수 있을만한 것을 새롭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더 자유로워진다. 대체로 회사생활에서의 이야기인데, 잘 보이려고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이기 위해 힘을 빼려고 한다. 


     결혼하여 이제는 혼자보다는 둘이 있는 시간이 당연하게 되었고, 안부를 나눌 가족들이 훨씬 더 많아지게 되었다. 팀장을 하게 되며 싫은 소리를 하며 누군가를 동기부여하며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게 되었다. 할머니를 보기 위해 2~3주마다 요양원에 들르게 되었다. 아직 나는 할머니가 가장 이뻐하는 손자이지만 언젠가 할머니는 나에게 손자는 어디 갔냐 물을 수도 있다. 기쁜 일, 슬픈 일을 경험하겠지만 기차 밖의 풍경을 자리에 앉아 고요히 지켜보는 것처럼 의연하게 나를 더 쌓아갈 것이다. 기차 안에 나와 나란히, 마주 앉아 있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소중히 여길 뿐이다. 


     안에서 스며 나오는 감정을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색을 팔레트에서 잘 찾아서 캔버스에 칠할 수 있게 되었단 생각을 한다. 그림 실력은 형편없을지라도 그것에 아쉬워하진 않는다. 생각한 색을 선택하고 그것을 제대로 옮긴다. 굳이 예쁜 색을 칠하려고 하진 않는다. 본 것이 어둡고 더러운 색이면 그 색을 골라 칠하고, 저절로 미소가 나오는 예쁜 색이면 그 색을 골라 칠할 뿐이다. 물감이 마르고 몇 시간이고,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 다시 보아도 그래 이 색으로 칠하길 잘했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브런치에 쓴 지난 글들이 나에겐 그런 그림들이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할 수 있다기보다는 내가 조금 더 내가 되었기에,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정직한 마음으로 캔버스 앞에 앉아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캔버스 앞에 앉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지금처럼 나를 더 칠하고, 내키면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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