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1% 엄마라서
엄마 노릇하기 참 힘든 세상이다.
예전보다 모든 것이 더 풍족해진 세상이니 더 쉬워져야 맞는 것 같은데 막상 엄마가 되어 살아보니, 또 주변의 여느 엄마들을 보아도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하위 1% 엄마의 고군분투기를 공개하며 누군가에게 '여기 이렇게 희한하고 이상한 엄마도 잘 살고 있다'라고 위안이 되고 싶었는데, 이번 글을 연재하는 동안 도리어 내가 응원을 많이 받았다. 특히 아이를 기르는 현직 엄마들이나 선배 엄마들께 받은 공감은 큰 힘이 되었다.
내 코가 석자긴 하지만 굳이 한 가지 오지랖을 부려 본다면, 나보다 훨씬 멀쩡한 보통의 엄마들(밤에 거실의 시계 초침소리나 남편의 코코는 소리에도 꿋꿋하게 잠도 잘자고, 밀린 설거지 하면서 너무 지겨워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극도로 다운되는 증상도 없는, 애초에 설거지 정도는 별거 아니라 산처럼 쌓아두지도 않고 바로바로 해버리는, 그냥 보통의 환경에서 잘 지내는 타고난 씩씩함을 장착한 부러운 존재들)이 자기 아이의 미래 때문에 너무 조바심내고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몇 년 고생하면 커서 수십 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고도 알고 보면 하나도 안 부럽게 살고 있는 어른들을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
어제도 아이 교정하러 병원에 갔다가 직접 보고 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와 대형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의 차갑고 딱딱한 얼굴. 저 사람은 집에 가서 자기 가족에게는 다를까? 싶고, 하루종일 다른 사람을 저렇게 대하는 본인은 얼마나 불행한 삻을 살고 있을까? 싶었다. 그 사람이 하루에 몇 백만원을 번다 해도 말이다.
생각해 보니 특별한 것은 없다. 그냥 내 아이들이 커가는 하루하루 일상의 모습 때문 아닐까 싶다. 꼬물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까불고 놀면서 까르르 터뜨리는 웃음소리 때문이었고, 말랑이가 햇빛 가득한 거실에서 오물오물 양볼 가득히 밥을 먹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 순간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의 터질 듯한 불안도 분노도, 두려움도 괴로움도 그것 앞에서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것이다.
내가 평균수명까지 산다는 가정 아래 반평생 가까이 살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선명하고 빛나는 시기는 어린 시절이라는 것을 어렷풋이 느끼게 되었다. 어른이 될수록 세상의 슬픔과 어둠을 배워가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법칙이라면 어린 시절만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켜주어야지.
그래서 오늘도 지랄병이 도지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108배를 했다. 법륜 스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나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면서. 그래도 약발이 떨어져서 애들이나 남편을 쳐잡은 다음 날에는 3천배는 못해도 천배를 한다.
부디 내 아이들도, 내 아이들과 같은 시간에 살아갈 세상의 다른 아이들도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엄마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