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분류는 전문가들의 엄밀한 검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것은 당연하게도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닙니다. 그저 현재 세상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수단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야 할 태양이 지동설 이후로 그러지 않는 것처럼, 가장 특별한 존재여야 하는 인간이 진화론 이후로 그러지 않는 것처럼, 모든 것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이 양자역학 이후로 그러지 않는 것처럼, 생물 분류에 대한 기준 역시 시대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물 분류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오해를 풀자면, 분류의 목적에 종간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아주 작은 점이었을 테니까요.
작은 점이란 것은 시작입니다. 인간은 늘 시작에 대해 물음을 가졌습니다. 인권의 시작, 문명의 시작, 생명의 시작, 지구의 시작, 태양계의 시작, 물질의 시작, 계속 거슬러 우주의 시작까지 말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그 모든 시작들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노력 덕분에 어느 정도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차이가 중요합니다.
고대인들은 번개가 내리치는 것을 보고, 인간에게 노한 신의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저 번개에 맞지 않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도 여전히 번개에 대한 의문점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0과 1은 다릅니다. 고대인들과 달리 우리는 번개가 그저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압니다. 양전하와 음전하 사이의 방전이라는 것을 압니다. 낮은 곳보다 높은 곳에 낙뢰가 더 잘 떨어지는 것을 압니다. 번개에 맞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하고 대비해야 하는지 압니다. 그런 지식을 통해 불필요한 사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헤엄치는 법을 모르면 물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렵습니다. 조금 진정하고 다리를 뻗으면 발이 땅에 닿는데 말입니다. 고대 시대의 번개처럼, 무지가 공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느 학문이 마찬가지지만, 생물학 역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접근합니다. 우리의 시작을 모른다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생명을 시작하게 했는지, 발을 뻗으면 땅에 닿을지, 아니면 더 세차게 헤엄쳐야 할지, 여전히 알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남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는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정작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릅니다.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낭자한 시대가 그 증거입니다. 우리의 시작이 작은 점이었다는 걸 안다면, 그래서 결국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세상이 조금 달라졌을까요? 세상이 바뀌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앎' 자체로 위로받기에는 충분하니까요.
인터넷에 떠도는 몇 가지 잘못된 지식(올빼미와 부엉이 구분)을 바로잡기 위해 만화를 그렸는데, 글이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중하고 다음부터는 짧게, 대신 꾸준히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글과 만화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해당 회차에서는 <피지컬갤러리>, <철권>, <마계대전>, <곤지암>, <무한도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네모바지 스폰지밥>, <둠>의 캐릭터와 장면이 패러디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