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즐거운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습니다만, 또 무거운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죄송합니다. 많은 사람이 아픔을 느낀 주제를 외면하고서 ‘세상을 담은 이야기’라는 이름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꼭 생물 소개로 찾아뵙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일 뿐,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비판할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분들이 해당 그룹의 제품을 불매하시거나, 시위하십니다. 어떤 방식이든,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우리가 기업을 지켜보는 감시 카메라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 행동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안다는 것, 지켜보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고 생각합니다. 갑질로 이슈가 됐었던 모 유제품 업체도 대중들의 감시 덕에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까요.
간혹 이런 사건사고들이 일어날 때마다 인터넷에서는 소비자들을 나무라곤 하는데, 저는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비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잘못을 한 것은 해당 기업입니다. 소비자들끼리 싸우면 분노의 목적지가 희미해집니다. 그건 가해자들이 가장 바라는 상황일 겁니다. 어지러운 상황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문제의 근원입니다.
역사를 보면 늘 권력을 가진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다수가 희생하는 속도에 비해, 권리를 얻는 속도는 현저히 느리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만, 기원전 1만 년경 신석기 시대부터 노예의 개념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노예제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대략 18세기~19세기입니다. 그러니까 노예제는 만 년이 넘는 기간을 버티다 불과 200~300년 전에 사라진 것입니다.
몇몇 불합리한 제도는 그렇게 사라졌지만, 인권에 관한 진중한 논의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됐습니다. 노동자, 장애인, 아동, 여성, 성소수자의 인권이 그 예시입니다.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제가 감히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역사를 후대에 남기는 일종의 엽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불평등, 불합리함의 엽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남길 엽서는 우리가 받았던 것과 같은 내용이 아니길 바랍니다.
* 해당 회차에서는 <변호인>, <엄마 없이 살아보기>, <유튜버 침착맨>, <포켓몬스터>의 캐릭터와 장면, 인물이 패러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