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의 소비자보다 공급자를 먼저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TV 예능이나 뉴스에서는 ‘MZ세대’라는 브랜드가 불티나게 팔린다. 심지어 MZ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발화하는 주체가 MZ세대인 경우도 있다. MZ세대란 말을 ‘요즘 것들’이라고 바꾸면, ‘어른 세대’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해진다. 한마디로 ‘요즘 것들 이해 못 하겠다’ 이거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삼십 대가 되어가는 나도 십 대나 이십 대 초반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 또래에 대해 잘 아는가? 사실 그것도 아니다. 당장에 가까운 친구들만 생각해 봐도 살아가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모든 생물들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그 환경이란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뱀이 무섭다. 소량의 독으로도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이빨도 무섭고, 째려보는 듯한 눈매도 무섭다. 그런데 그런 뱀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뱀은 ‘뱀’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칠 수 없을 만큼 많은 종이 있다. 볼파이톤이라고도 불리는 공비단뱀은 반려뱀으로 인기가 많다. 공비단뱀은 보통 150cm 이상 큰다. 거의 사람만 한 크기다. 커다란 덩치와 달리 겁이 많아서 낯선 사람을 보면 공격하기보다는 움츠려 든다. 몸을 공 모양으로 말아 얼굴을 숨기고 가만히 있는다. 그래서 이름이 공비단뱀이다.
버마비단뱀은 가장 무거운 뱀으로 알려져 있다. 뱀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공비단뱀도 크다고 느껴질 텐데, 버마비단뱀은 4m 이상 너끈히 큰다. 암컷 버마비단뱀의 길이는 공비단뱀의 3배가 넘는다. 겁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공격적이지도 않다. 굉장히 온순하다. 그런 성격 덕에 동물원 등에서 동물 체험을 할 때 이용되기도 한다. 뱀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서 공비단뱀과 버마비단뱀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평소 생각했던 날카로운 뱀의 인상보다는 둥글둥글한 인상에 가깝다. 품종에 따라 색도 알록달록 예쁘다.
반면, 앞서 소개한 비단뱀들과 달리 그물무늬비단뱀은 공격성이 높기로 유명하다. 야생에서는 악어, 오랑우탄, 멧돼지 등 큰 동물들도 가리지 않고 사냥한다. 독은 없지만, 이빨이 크고 움직임이 날쌔다. 동물의 고통 순위를 매기는 다큐멘터리 <킹 오브 페인>에서는 당당히 고통 순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사람 눈에 다 똑같아 보이는 비단뱀도 알고 보면 종마다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공비단뱀, 옥수수뱀, 우유뱀 같은 반려뱀부터, 그물무늬비단뱀, 방울뱀, 코브라, 살무사 같은 위험한 뱀까지, ‘뱀’ 한 글자로 치환할 수 없을 만큼 뱀은 정말 다양하다.
더군다나 종 사이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종이라도 어떤 부모에게서 나왔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트라우마가 있는지, 현재 욕구가 충족되었는지 등에 따라 개체 간 성격의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강형욱 훈련사는 개마다 행동과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준다. 같은 웰시 코기라도 교육시키는 방식이 이 집 다르고 저 집 다르다.
하물며, 개체 수가 80억이나 되는 인간은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얼마나 다양한 환경에 놓여 있을까?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늘 어렵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꼰대가 된다. 꼰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꼰대질만 안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 이성이 있는 거다.
문제는 각종 매체에서 세대를 소비하는 방식에 있다. 비단뱀의 경우처럼 세대가 다른 것을, 더 나아가 사람 자체가 저마다 다른 것을 그저 인정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매체는 평화를 놔두지 않는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충격! 어르신들, 이거 보세요. MZ세대들이 이렇게 살더라구요? 어떻게 생각해요? 이상하죠? 이해 못 하겠죠?”
어른 세대는 나름 피해자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요즘 세대들이 어떻게 사는지 적잖이 궁금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내 나이 때 이미 결혼하고 애도 낳았다. 그래서 명절 때 말이라도 붙이겠다고, 분위기 전환하겠다고 어른들이 하는 얘기가 본인이 우리 나이에 경험한 얘기, 결혼 얘기, 애기 얘기, 일 얘기다. 그게 잘했다는 게 아니다. 인과가 어찌됐든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고 집도 차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분명 불편한 대화다.
그런데 내가 그런 대화를 불편하게 느꼈다고 해서 나중에 그런 대화를 안 하리란 보장이 없다. 한 20년 후에, 청년들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하면 분명 똑같이 꼰대 소리 들을 것이다. 그게 비록 지금의 가치관에는 꼰대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예컨대, 결혼 질문 대신 난 이렇게 물어보겠지. “자네 만화 좋아하는가? 원피스는 봤는가? 나루토는? 원나블도 안 보는데 요즘 친구들은 뭘 하면서 사는가?”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첨언하면, ‘원피스’, ‘나루토’는 90년대생이라면 학창 시절에 무조건 보는 만화였다. ‘당연히 만화 얘기는 꼰대가 아니지’라는 생각에 예시를 들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생각보다 당연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난 이 지점에서 매체에 불쾌감을 느꼈다. 요즘 사람들이 뭘 하며 사는지 궁금해해서 물어본 질문들은 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나의 원피스 이야기처럼 의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백날 천날 동년배들하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른 세대들은 요즘 세대들이 늘 궁금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알아야 그나마 꼰대질을 덜 하지 않겠는가. 매체는 그런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에 족쇄를 채운다.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로 요즘 세대에 대해 궁금증을 품게 만들고, 왜곡된 지식을 주입한다. 인간 집단을 갈라치는 것만큼 ‘조회수’ 올리기 쉬운 것이 없다.
그래서 난 ‘MZ세대’라는 용어의 소비자보다 공급자를 먼저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MZ세대 콘텐츠뿐만이 아니다. ‘편견 공급자’들은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지금은 세대, 성별, 인종, 나라, 소수자가 그 대상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편견 공급자들은 역사적으로 늘 존재해 왔다.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를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