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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Nov 23. 2023

다양성 [다양썽, tayaŋs̕ʌŋ]

오늘날 지구의 모든 생물은 같은 조상으로 비롯됐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인간이나, 아기자기한 몸집으로 용맹하게 날아다니는 황조롱이나, 파도 소리를 내며 가지를 흔드는 층층나무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 증거 중 하나로, 모든 현생 생물의 DNA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총 네 개의 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rat(쥐)’이란 단어와 ‘art(예술)’라는 단어가 다르듯이, A, T, G, C를 이용하여 다양한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염기서열이라고도 부르는 4진법 코드의 오묘한 조합에 따라 포유류와 조류와 식물의 차이가 생긴다. 곤충도, 거미도, 파충류도, 양서류도, 해조류와 바다생물도, 버섯과 미생물도, 모두 그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환경오염, 동물학대는 넓은 의미에서 동족상잔인 셈이다.


인간의 염기서열을 《캠벨 생명과학》 같은 1,400 페이지 전공 서적으로 적어내면, 700권 분량이 나온다. 그렇게 복잡한 정보가 고작 2㎛(마이크로미터) 남짓한 세포핵 안에 저장된다. 1 마이크로미터는 1 미터를 백만으로 나눈 값이다. 그런 세포들이 인간의 몸에 약 30조 개나 있다.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 거대한 정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작은 크기로 보관된다. ‘인간은 하나의 우주‘라는 문구는 수사적인 표현이 아닌 것이다. 워낙 거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보니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염기서열 일부가 변형되거나 누락되기도 한다. 생물에게 변이가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인간이 현재 추정할 수 있는 최초의 생물은 38억 년 전 발생한 단세포 원핵생물이다. 그들은 지금의 생물과 다를 것 없이 바다를 부유하며 DNA를 복제했고 변이했다. 그러다 일부는 18억 년 전, 다른 종류의 단세포 원핵생물들을 삼키고 한 몸에서 공생했다. 참고로 훗날 몸 안에 자리 잡은 작은 손님들은 종류에 따라 각각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로 불리게 된다. 원핵생물보다 세포 크기가 커진 진핵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이 우연한 공생은 지금의 인간까지, 18억 년간 유지되고 있다. 


단세포 진핵생물 중 일부는 세포가 늘어나 다세포 진핵생물이 됐다. 또 그들 중 일부는 5억 3천 만 년 전 일어난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겪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이했다. 척추동물의 조상도 그 시기에 얼굴을 보였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3억 6,500만 년 전, 밀물과 썰물에 이끌려 바다 바깥으로 나온 총기어류가 있었다. 바다 바깥을 경험한 총기어류의 일부가 육지에서 숨 쉬는 방법을 터득했다. 뒤늦게 뭍으로 올라온 최초의 사지동물로 추정된다. 변이와 우연성이 없었다면, 생물은 지금과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적응하지 못했다.


여기서 ‘일부’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변이하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변이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적응 방식에는 한 길목만 있지 않다. 나뭇가지처럼 무수한 방향으로 뻗어가는 것이 진화다. 원숭이가 진화해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공통 조상 중 일부는 숲에 남아 원숭이로, 일부는 땅으로 내려와 인간으로 적응한 것이다. 그래서 진화를 두고 무엇이 더 우월한지 비교하는 건 마치 농구선수와 바둑프로기사에게 노래 대결을 시키는 꼴이다. 공부, 수능, 대학, 대기업, 돈…. 한 길만 강요하는 사회는 인간을 병들게 만든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 어느 날 인도 데칸고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용암과 재는 백악기 생물 종의 다양성을 줄여 나갔다. 그런 상태에서 6,600만 년 전, 지름이 최소 10 킬로미터 정도로 추정되는 소행성 하나가 지구에 충돌했다. 전 세계를 덮친 충격파와 산성비가 종을 대멸종으로 이끌었다. 지구 생물 종의 75%가 멸종한 이 사건을 ‘5차 대멸종’ 혹은 ‘백악기 대멸종‘이라고 부른다. 역사에 ‘만약’이란 말은 무의미하다지만, 데칸고원의 화산이 폭발하지 않고 생물 종의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0과 1은 수학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조금이라도 종 내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이 종을 유지했을지 모른다.


생물학적으로 다양성은 크게 생태계 다양성, 생물 종 다양성, 유전자 다양성, 세 종류를 의미한다. 인간은 피부색으로 선을 긋고 서로 손가락질하곤 하지만, 유전자 다양성은 극히 떨어지는 종이다. 예컨대 대한민국 사람과 브라질 사람의 유전자를 보면 별 차이가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같은 호모속에 속하는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데니소반스 등을 몰아낸 탓이다. 우리는 몇 년 전,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바이러스 하나가 전 인류를 괴롭힌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하나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도, 각종 유전병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인간의 유전자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똑같은 위험에 모든 개체가 똑같이 피해를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1만 년 전까지는 포유류의 1%만이 인간이었으나, 현재는 인간과 인간이 키우는 대여섯 종의 가축이 전체 포유류의 99%를 차지한다. 인간이나 가축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포유류의 99%가 사라지는 셈이다. 현재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은 15%도 채 되지 않는다. 바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19년 한 연구팀은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를 탐사했는데, 해수면으로부터 10.92 킬로미터 아래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인간이 자초한 각종 공해가 지구 전역에 대대적인인 피해를 주고 있다. 몇몇 전문가는 현대의 극단적인 기후변화를 ‘6차 대멸종’이라 경고한다. 종 다양성이 줄어든 상황에서 기후변화는 6,600만 년 전 떨어진 소행성처럼 대멸종의 방아쇠가 될지 모른다.


빈센트 반 고흐는 전문가와 대중 모두에게 사랑받는 화가다. 거칠게 찍어낸 유화 물감은 고흐의 트레이드 마크다. 노란색, 주황색, 파란색, 보라색, 검은색…. 또 각각의 색 안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물감은 그냥 물감일 뿐이지만, 캔버스에 물감이 하나둘 모이면, 어느새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잘 그린 그림은 어느 하나 의미 없이 사용된 색이 없다. 비단 유화뿐 아니라 수묵화도 농담이 있어야 아름답다. 연필만 사용하는 소묘 역시 소중하지 않은 선이 없다. 생태계란 그림도 생물의 다양성이 있어야 완성된다.


《별이 빛나는 밤》을 구성하고 있는 색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다 같은 물감이다. 모든 현생 생물은 한 조상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물감이란 공통점을, 또 저마다 환경에 맞게 변이해 왔다는 점에서 색깔이란 차이점을 가진다. 나와 돛새치는 분명 다르게 생겼지만, 언제인가 지구의 바다를 함께 헤엄치고 있었다.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과 다른 모습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다름은 적응의 한 방식일 뿐이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서는, 현실을 좇는 이들 사이에서 누군가 하늘을 동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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