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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bk Mar 11. 2024

나: 영감주머니 1

For all artist


모든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전하기 위한 토막글들을 기록해두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영감주머니~

잘 부탁드립니다:)



1


 나다움과 인간다움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인간답다고 표현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갈래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완벽하지 않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곤 하며, 둘째,  동물과 달리 이성적이며 도덕적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의 의미는 인간을 기계적임과 거리를 두는 것이며, 둘째의 의미는 인간을 야생적임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인간적임의 두 가지 용례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은 인간적임을 맹목적임과 대치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적임을 합리적인 기계적 맹목성과 대치시키며, 또한 약육강식과도 같은 동물적인 야성적 맹목성과도 대치시킨다. 이러한 인간적임의 두 가지 용례는 인간을 기계성과 야만성 사이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준다.


 그렇다면 나다움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인간이지만 '인간적이다'라는 표현으로만 나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우리는 같은 인간들 사이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적임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그러므로 '인간적이다'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가장 나다움과 멀리 떨어져 있는 개념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다움은 인간적이지 않은, 보편적이지 않아 예측할 수 없는 특이함과 같은 것들이다. 누구보다 더욱 기계적인 것도 나다움이 될 수 있으며, 누구보다 더 육감적인 것도 나다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나다움만을 추구할 수 없다. 인간은 항상 타자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나다움만을 추구하여 인간적임에 소홀하다면, 우리는 다른 인간들에게 배척당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모두가 보편적 인간적임만을 추구한다면, 모두가 비슷해져 극단적인 차이에서만 나다움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은 차이에 더욱 큰 가치를 찾아야만 하는 사회는 히스테릭하다. 히스테릭한 사회에서는 아주 미세한 변화에도 예민함과 피로를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다움의 억압과 해소가 조화로워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작은 조화가 아니라 큰 조화이다. 작은 조화란, 보편적 인간적임을 통하여 인간성과 도덕성을 강요하여 구성원들의 통일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화는 지속적이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히스테릭하기 때문이다. 나다움은 끊임없이 억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히스테릭한 주체의 억압된 나다움은 언젠가 폭발과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된다. 반대로 조화란, 타인의 나다움을 포용하여 인간적임과 나다움의 줄다리기를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도, 그것이 나다움을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면, 그것의 이질적임에 당혹스러움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에 무관심이 아닌 긍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의 어원이 '나다움'인 것처럼, 나다움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자들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예술가라 부른다.




작업노트



<objet a> 2023, digital photography on canvas

 빛과 어둠은 상보적이며 전일성을 나타낸다. 빛은 어둠의 부재를, 어둠은 빛의 부재를 통해 우리는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색'이란 금지와 허용의 의미를 가진다. 어둠에 의한 빛의 한정적 금지, 금지의 잔여물이 제공되는 형식으로써 우리는 색을 목격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색에는 아찔한 에로티시즘이 다. 제한된 빛만을 향유할 수밖에 없는 금지로서의 '색'. 그 금지를 넘어서서, 태양과 같은 빛 그 자체를 바라보려는 순간 우리에겐 실명, 즉 죽음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색들은 모두 빛의 아찔한 줄타기이다.



<objet a> 2024, digital photography on fabric

 하얀색이 있다. 하얀색, 순백, 순진, 순결.. 보다 순이라는 글자가 더 어울리는 색이 있을지. 순수함은 순수하지 못함의 부정이다. 부정의 부정, 하양은 하양이 아님이 아님이다. 하양은 하양이 아닐 가능성이다. 현실화되지 못한 가능성, 하양은 하양이 아닌 색이 될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색칠하기는 모두 가능성에서 현실화로 이아지는 서사적 칠하기. 모든 색이 자신을 부정한다면, 그 색은 어두워진다. 색들의 부정은 검정이다. 모든 색들은 검정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검정은 모든 색들의 마지막 현실화이다. 색들의 완전 현실화. , 평온과 같은 것들. 돌이킬 방법은 없을까? 덧칠을 하면 된다. 돌아간 것처럼, 언뜻 보기에 가능성이 보인다. 누군가 건드리기 전까지는... 완료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진행은 있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전제된 최종적인 완료는 나와 나 아닌 것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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