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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bk Mar 27. 2024

나: 영감주머니 4

For all artist

모든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전하기 위한 토막글들을 기록해두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영감주머니~

잘 부탁드립니다:)


1


밤길을 헤매는 자들이 있다

눈앞이 너무나 어두워

눈을 떴는지도 감았는지도 망각한

무력한 슬픔을 느끼는 영혼들이


그늘에 잠겨버린 영혼들은

불안에 떨며

연약함 속에 숨어버리고

눈앞의 친절을 의심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고독으로 멀리 달아나

조용히 운다


영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연민을 느끼며

굴레에 빠진 아픔을 보고

슬픔 몸짓을 보며

흉터조차 되지 못한 상처를 보고

조용히 운다


무력감에 떠돌아다니다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현명한 감정들과 함께

너를 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어둑한 밤과 같은 슬픔 속을

두려움에 떨며 헤매는 자여

내게로 오라

너의 끝없는 밤을 밝히는

아침이 되어줄지도 모르니


그러니 조금만 더 고뇌하기를

내가 함께 울어줄 테니


-아침


눈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가볍지 않다면

가슴으로 내려와 물레방아를 움직일 거예요

돌고 돌아 메여가는 감정이

공어가 되어 나를 때리지 않기를

하지만 가벼이 허공만을 맴돌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착실히 내려와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되어주길 바라요.


-물방울


모르는 것 투성이인 이곳에서 빚어진 김에 살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제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겠지요

불안합니다만, 답답하진 않습니다


제 옆에 이들 또한 저를 위해 빚어진 것이 아니겠지요

저 또한 이들을 위해 빚어진 것이 아닐 겁니다

그러니 저의 결심으로써 이들과 함께 살아가렵니다


당신을 긍정한다는 것은

당신을 잊어간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옛말을 빌려 당신을 흘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불어괴력난신이라


-당신


작업노트


 <objet a> 2023, digital photography
 <objet a> 2024, digital photography

 물질들의 연합은 기능이 되고, 생명이 되고, 의지가 된다. 물질들의 연합을 인도하는, 자연에 내재된 '자연'스러운 배치의 규칙이 있다면, 그것은 물질들이 배치되기 이전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규칙일 것이다. 수학과 기하학 그리고 과학적 법칙들이 이러한 규칙들에 속한다. 그렇다면 인간 또한 이러한 법칙들 속에 포섭되는가? 법칙을 파악하는 것과 함께 의문을 가지는 것 또한 인간에게 내재된 법칙이라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인간에게 자연에 내재된 조화로움을 논하는 것은 가치의 문제가 된다. 아포리아 속에 내던져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배치와 조화를 추구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인간학은 미학이 된다. 조화로운 배치를 위한 아름다움이 곧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규정이 되기 때문이다.


2


 타인의 상처를 볼 때 어떤 감정을 느껴왔을까? 잔인한 부상을 당한 사람의 상처에서 눈을 피하지 않을 용기가 과연 내게 있을까. 만약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을 본다면. 두려움과 연민, 배려등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때 느끼는 두려움의 이유는 뭘까? 상처에서 예상되는 고통의 두려움, 혹은 나와 다른 상태에 있다는 거리감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파악하기 힘든 복합적인 거부감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복합적인 거부감은 신체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를 보았을 때에도 느껴진다. 바로 비슷한 경험이 없어 공감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을 보았을 때이다. 가난, 트라우마, 중독, 결핍.. 등으로 인한 거리감이 관찰자에게 거부감으로 변질되어 전달된다. 거리감 있는 상처를 목격한 관찰자들은 그들의 상처들을 바라보기 힘들어하며 시야에서 그들을 지우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복합적인 거부감속에 담긴 상처 입은 사람의 '상처'와 '자신과 상대방의 차이점'을 동일한 것이라 생각하는 혼동이다. 이러한 혼동을 해소하기 위해서 감정을 더 섬세하게 느껴볼 필요성이 있다. 타인의 상처를 보았을 때 우리는 '상처'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 상처로 인한 '자신과의 차이점'이 거리감을 통해 우리의 공감을 방해하여 상처 입은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든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영역으로 추방해 버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타자를 두려워한다. 조명 없는 어둠 속의 두려움처럼, 인간은 알 수 없음을 잘 견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와 차이는 분명 다른 것이다. 자신과의 차이점이 두려워 타인을 마주 보기 힘들지라도 타인의 상처에게서 눈을 돌려선 안된다. 공감의 의지가 있다면 상처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통해 타자의 아픔과 연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와 차이를 분리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분명 상처를 볼 때 차이는 우리의 곁을 맴돌며 본능적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관찰자에게 '무지할 용기'가 요구된다. 어둠 속을 밝히지 않아도 어둠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무지한 것을 무지한 그대로 곁에 둘 수 있는 용기이다. 타인과의 차이를 반드시 극복할 필요는 없다. 차이를 무지한 상태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타인의 상처를 상처 그 자체로 마주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인간 사이에 있는, 깊은 계곡과 같은 단절의 한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준다. 타인의 상처는 두려움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단지 배려의 이유일뿐이다.


"지식은 언제나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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