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평론

강서경: 마치 MARCH

Suki Seokyeong Kang : MARCH

by oybk

이번에는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강서경 작가님의 《마치 MARCH》를 감상해 보았습니다. 저의 감상이 여러분만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술 콘텐츠 플랫폼 옆집미술 -> https://artnextdoor.co.kr/


<Jeong #05> 2023-2024, color on slik mounted on Korean hanji paper, thread, wood frame

시간이라는 개념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깊이 이해하고자 하면 낯설어진다.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연속되는 것 같은 두 장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서사성을 느낀다. 예를 들어, 시계를 볼 때 12시 1분 1초를 본다면 이후에 12시 1분 2초가 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본 시계의 두 장면은 서로 독립된 상황이다. 즉, 다른 프레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개의 독립된 프레임을 버릇적으로 연관시킨다. 그리고 연관을 통해 시간이 전제된 서사성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 시간이란 개념을 만드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간은 시간을 자연스럽게 전제한다. 그래야만 모든 인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파편적인 장면들은 인과적으로 결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시간은 인식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전시명 《마치 MARCH》는 행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현재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도래할 또 다른 현재로의 행진. 단호하면서도 고유한 리듬감을 가지는 강서경 작가의 행진을 전시에서 느낄 수 있다. 작가의 <Jeong #05>는 독립된 여러 프레임들이 나열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프레임들은 각각이 다른 색을 가지며 같은 공간 안에 혼재되어 있지만, 감상자가 이것을 바라보는 순간 서사성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서사들은 상하좌우 어떤 방향으로든지, 한 칸씩 두 칸씩 어떤 길이로든지 가능하다. 이때 감상자는 고유한 자신만의 리듬, 시간의 창조를 느낄 수 있다.


<Jeong 55 x 40 #09> 2023-2024, mixed media on silk mounted on Korean hanji paper, thread, wood frame

우리가 시간성을 잘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예시는 음악이다. 서사들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음악은 시간의 예술로 표현되곤 한다. 그렇다면, 음악을 시각화한다면 가장 먼저 어떤 걸 떠올리기 쉬울까? 아마도 악보가 가장 먼저 떠오르리라 생각한다. 악보의 대표적인 이미지로는 서양의 오선보를 먼저 떠올리기 쉬우나, 과거에는 한국의 전통 악보인 정간보 또한 종종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배웠던 단소 악보처럼 말이다. 정간보는 사각형의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악보를 읽는 연주자는 각각의 다른 프레임 속 기호들을 연관시켜 서사성을 부여한다. 인간은 이때에도 역시 시간의 창조자이다.


강서경 작가의 작품들 또한 악보처럼 배치되어 있다. 비율과 배치의 조화가 작품 내적으로도 작품 외적으로도 펼쳐져있다. 작가의 <Jeong 55 x 40 #09>에는 작품 내적으로 비율의 조화가 느껴진다. 요동치는듯한 프레임들은 악보에 의해 춤춰지는 듯한 생동감을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또한 작가의 작품들은 프레임의 내용뿐만 아니라 프레임 그 자체를 부각해 순수한 시간성 그 자체를 작품 속에 담으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선들로 구획이 규정되지 않는다면, 여러 색들이 혼재된 평평한 면은 말 그대로 카오스이다. 인간이 세상을 인과적으로 규정함을 통해 인식하듯이, 혼란스러운 색면은 프레임을 통해 서사성을 가지게 된다.


<Mora 55 x 40 - Nuha #2> 2014-2023, gouche, dust, acrylic panel, silk mounted on paper, silver...

그렇다면 인간이 무언가를 인식하기 이전의 순수한 세계는 무엇일까? 우리가 인식을 하기 위해선 무언가를 규정할 재료들이 먼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들은 시간의 질료들, 즉 카오스적인 시간이다. 카오스적 시간에는 모든 지나간 과거의 기억들이 혼재되어 있다. 인간은 이 시간의 질료들을 한 점으로 응집시켜 기억과 개념을 만들고, 이것을 통해 현재를 규정함으로써 무언가를 인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인과론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자유롭지만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 내던져져 있다.


작가의 <Mora 55 x 40 - Nuha #15> 연작에서 감상자는 카오스적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속에는 틀 안에 겹겹의 혼란스러운 페인팅들이 쌓여있다. 이 페인팅들은 깊이도, 두께도, 위치도 통일 감 없이 작품 속에 제각각 산재해 있다. 하나의 페인팅을 온전히 시선에 담고자 시도하면, 다른 페인팅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져 그 시도가 무력해진다. 그래서 감상자는 혼란스러운 페인팅'들'만을 느낄 수 있다. 페인팅들의 형태는 말 그대로 혼란이지만, 여기서의 혼란은 무의미한 혼란이 아니다. 작품 속의 혼란함은 무의미하지 않을 역량이 내재된 혼란, 서사의 재료들 그 자체로서의 속성을 나타내준다. 작가의 연작들을 통하여 우리는 작가가 생각하는 세계 그 자체의 모습은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작가는 시간성에 관한 여러 고찰들을 시각화하여 감상자에게 전해준다.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전시 《마치 MARCH》를 통해 여러 가지 사유를 행진하듯이 애매한 시간의 개념들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Jeong #03> 2023-2024, color on silk mounted on korean hanji paper, thread, wood frame 외 다수

강서경 작가님의《마치 MARCH》를 통해 저는 많은 사색을 할 수 있었어요! 아름다운 동양적인 양식과 함께 느껴지는 신비로움이 인상 깊었어요. 혼란스럽고 분주한 현대사회에서 정갈함은 점점 희소해지는 가치 같아요. 특히 시간의 정갈함을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지루함을 피하고자 눈에 띄는 것에 시간을 옮겨버린다던지, 처리해야 될 일이 너무 많이 쌓여 시간을 느낄 새도 없이 보내버리는 것처럼요. 시간이란것을 너무 소비해야될 무언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작가님의 작업들을 천천히 둘러보면 잊고 있었던 자신만의 리듬감을 돌이켜볼수 있는것같아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