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기 Sep 05. 2017

청년을 위한 정치는 없다

청년이 정치를 개혁해야 할 때, 바로 지금


지역의 청년 정치인들, 시의회에 모이다


지난 8월 29일 저녁, 20명이 넘는 청년들이 전주시의회에 모였다. 이들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청년후보로 출마할 의향을 가졌거나, 출마는 아니더라도 정당에 소속되어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의 청년정치인들이다. <로컬유스파티(Local Youth Party) 지역릴레이 라운드테이블-전주>라는 명칭으로 열린 이번 모임에는 더불어민주당부터 국민의당, 노동당, 녹색당, 우리미래당, 자유한국당 소속 청년들까지 동참했고, 이들의 활동 지역은 전주시를 넘어 전북, 대전, 충남, 충북 등 다채로웠다. 전주시에서 이처럼 다양한 정당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라고 당일 발제를 맡은 서난이 전주시 청년비례의원(30)은 밝혔다.              

‘로컬유스파티-전주’ 행사가 열리고 있는 전주시의회 5층 회의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정당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모였다.


‘청년’ 구호만 늘고 청년정치인은 줄었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지역 내, 그리고 정당 내 청년정치의 현실과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당일 서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5년 이후 역대 동시지방선거 광역/기초의원 당선인 연령은 50~60대가 늘어나는 만큼 20~30대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었다. 비례대표 역시 40대~60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10여 년간 청년세대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매년 그 심각성이 더해져왔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지역에 따라 전체 인구의 20~40%를 차지하는 청년층을 대변하는 청년정치인이 오히려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감소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의 고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 청년세대의 일상과 현실을 공정하게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청년의 정치가 필요하다.  (표 출처: 서난이 의원 발제자료)


2017년, 누가 한국의 정치가 '민주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표 출처: 뉴스타파) http://blog.newstapa.org/tapatrainning4b/3086


지역은 청년정치의 무덤


지역에서 혹은 중앙에서 청년 정치인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공론화되어 왔지만, 청년이 실제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문제는 방치되거나 외면되어 왔다고 서 의원은 지적했다. 정치의 필요성을 느껴 정당활동을 하더라도, 기탁금부터 선거비용까지 터무니없이 높은 정치자금의 벽과 비민주적인 정당 내 공천시스템으로 인해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청년은 후보자가 될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당 내 청년은 돈이 없어서 후보가 되지 못하거나, ‘찍힐까봐’ (공천을 받지 못할까봐) 당당하게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따라서 지역의 청년들은 정치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선거기간 때마다 후보자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홍보수단이 되거나, 선거당일 투표권만을 행사하는 수동적인 ‘유권자’로서만 역할하게 된다.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이 없어 투표를 포기하거나, 이런 정치 현실을 비난하며 등 돌리는 청년도 많다. 그나마 사회화된 청년 이슈를 반영하려는 중앙(국회)에 비해 자금력, 인맥에 크게 좌우되는 지역정치일수록 이런 상황은 심각해진다. 

정치를 꿈꾸는 지역청년은 정치를 하라는 선배들의 독려와 정치 진입을 가로막는 제도적, 현실적 장벽 사이에서 고뇌하다 결국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


‘정치자금법 개정’과 ‘청년할당제’ 도입이 시급하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서 의원은 ‘정치자금법’의 개정과 ‘청년할당제’ 도입을 제안했다. 경제적 약자의 정치진출 금지법인 정치자금법을 개정하여 지방의원에게 후원금 제도를 신설하면 자본이 부족한 후보도 열심히 활동만 하면 지지하는 시민들을 통해 선거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출판기념회’ 등의 편법이 아니더라도 시민이 직접 좋은 후보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후보가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대안은 청년할당제 도입이다. 2014년 기초지방의회 20-30대 당선인은 3.4%에 불과하며, 50대 이상이 무려 71%를 차지한다. 민의를 대변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정치 영역에서 이처럼 세대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에 청년의 문제는 지역사회에서 주요 해결과제로 언급되지 않거나, 언급되더라도 대부분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진단되고 해석되어 왔다. 청년의 입장에서 제시되는 정책적 시도, 새로운 대안들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다. 시대가 급변하는 만큼 청년세대의 문제는 청년이 제일 잘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결국 그들의 목소리는 ‘의견수렴’ 정도에 그치고 만다.                

한국사회는 경제적/사회적 약자에게 정치 진출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현행 제도가 허락하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돈, 인맥, 경력(전문성)을 쌓은 사람은 결국 기성세대가 된다.

 

청년후보가 되기 위해 : 정당을 넘어선 연대가 필요하다


당일 의회에 모인 청년들은 각자 지역사회와 정당 내에서 당면하는 청년 정치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청년은 최근 정당지지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청년당원의 입장이 조심스러워지는 모순을 지적하며 정당이 청년정치인을 키우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토로했다. 신생 청년정당인 ‘우리미래’ 소속 청년은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지금의 정부와 여당이 민의를 대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부 구조가 대단히 비민주적이며, 청년을 단순 조직관리자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당 소속 청년은 지금 청년세대의 경제적 기본권 보장을 위해 청년정치 활동이 중요하며, 정치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연령 제한 등을 없애고 청소년기부터 정치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당 소속 청년은 청년들이 정치활동을 하고 싶어도 생계 문제, 시간 부족 등 척박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청년들은 지역의 정치가 청년을 대변하지 못하고, 결국 청년은 정치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악순환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뜻을 가진 청년 당사자들이 먼저 제도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정당을 넘어선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청년이 정치 영역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청년 개인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개인화된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경험과 대안을 공유하는 이들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정치 혁신을 위해서는 ‘혁신의 세대’가 등장해야


서난이 의원은 발제를 마치면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언급했다. "청년들이 청년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은 청렴, 혁신, 도전적 이미지였다. 스스로 청년에게 열정과 도전을 강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정치 영역'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사회를 바꿔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면 정치인은 적어도 그런 시도를 해야만 한다.” 


청년의 문제를 반드시 청년만이 대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세대가 겪는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면서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청년일 수밖에 없다. 여성의 문제를 남성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듯, 2017년을 살아가는 청년의 어려움을 과거 20-30년 전 청년기를 겪은 세대가 풀어내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오늘날 2030 세대가 겪는 노동문제와 주거문제의 질과 양상이 20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통계자료에서도, 집단화된 담론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규직 취업, 자기소유 주택 마련이라는 단일 정책기조로 더 이상 대다수 청년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청년 당사자들은 잘 알고 있다. 이것은 현재의 문제이자 미래의 문제이고, 곧 모두의 문제다.


청년세대를 대변하는 것을 넘어 더 혁신적이면서도 일상에 가 닿는 정치, 청렴하고 공정한 정치 역시 어쩌면 기성정치에 물들지 않은 청년만이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향후 수십 년간 이 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청년이 주변인이 아닌 주체로서, 사회 변화의 근원지인 정치의 장에 등장하고 앞장서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이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2017. 8. 30.




<로컬유스파티(local youth party) 지역릴레이 라운드테이블-전주>의 전체 내용은 페이스북라이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440783742680918&id=100002479193497  

작가의 이전글 여전히, 지금은 '헬조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