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를 역전시키는 사소한 것
머리칼을 쓸어 넘길 때마다 그 냄새가 난다. 카레 냄새.
정오의 오피스. 각자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하나둘 부산스럽다. 오늘은 어려운 사람을 대면하는 날. 매무새를 추스르고 입꼬리를 미리 당겨둔다. 단 한 시간. 어차피 이 시간은 누구에게든 공평하고 제한적이다. 이 곤란함마저 좋아하는 순간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뜨거운 음식 먹기.
길을 두 번이나 건너야 하는 곳에 애정하는 일식집이 있다. 손대면 델 듯한 뜨거운 돌솥에 눅진한 카레 덮밥을 내어주는 어둑하고 아담한 곳.
본론은 한 숟갈 뜨고 나서야 시작된다. 하루 중 가장 기다려온 시간인데. 내 숟가락만 바쁘다. 앞에 마주한 카레와, 또 그 앞에 맞선 사람과의 교감에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지켜내야 한다, 카레의 온도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와 나 사이를 동동 떠다니는 목소리가 온도를 침범한다. 이 사람이, 왈칵 나온 진심이 카레의 온도를 압도한 건 사실 첫술을 뜨자마자였다.
이 자리가 필연적이었던 마냥 생긴 사건들, 그에 물려온 정서적 동요. 쉼 없이 흐르는 대화가 공간을 메우고 공기를 달군다. 온도의 역전. 오늘의 한 시간은 이 사람이 카레를 이겼다. 사소하지만 더 신경 쓰이는 쪽이 뜨거워지는 게 당연하다. 음식도, 사건도, 사람도. 시선이 머문 만큼 온도도 오른다. 따듯하게.
다른 사람과의 식사를 떠올린다. 카레가 뜨거워 후우 불었던 기억뿐이다. 오늘 만난 이는 카레의 온도만 기억하고 있을까? 반 이상 남겼던데. 우리가 나눈 공감이 빈 공(空)감이 아니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실은 나도 그런 적이 있는데 그날의 기억에게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카레보다 나를, 우리의 시간을 기억해 주길. 그의 정오가 차갑지 않았길.
그리고 설핏 든 물음. 카레 말고 나를 뜨겁게 달구는 게 무엇일까. 떠오르지 않아 야속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