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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윤 Jan 25. 2022

30세 시대가 아닌데

20220125

인터넷에서 이런 고민 글을 읽게 되었다.

현재 다니는 회사를 관두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려 하는데

회사 상사분이 나이 서른 앞두고 다른 일 시작한다는 건 너무 무리수이며

새로 옮기려는 직종엔 수요도 별로 없어 전망이 불투명하다.

너의 나이를 생각해라라는 조언에 망설여진다는 이야기였다.


남의 고민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내가 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려 할 때 들었던 거의 비슷한 레퍼토리였다.

시간이 지나도 분야가 달라도 회사에서 해주는 조언의 레퍼토리는

기본 공식처럼 변하지 않는단 사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물론 상사분의 마음엔 정말 세상을 오래 살아본 사람만의

현실을 직시하는 눈과 업계를 바라보는 전망

부하직원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아예 없으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정말 싫은 사람이라면 이 기회에 안 봐도 되니 옳다구나 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러나 과연 그런 순도 100프로의 마음뿐일까?


내 베베꼬인 눈엔 그렇게만 비치진 않는다.

맘에 드는 인력이 나간다는 회사로서의 손실에 대한 생각도 있을 것이고

정말 여자로서 서른 줄에 달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는 도전의 이야기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에 유독 엄격한 편이다. 그중에서도 여자에겐 특히 더,

30 즈음이면 보통의 많은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경력이 단절되는 시기로 진입하다 보니

여자의 사회적 나이의 사망 선고는 마치 30 즈음을 기본 디폴트 값으로 정해놓고 말하곤 한다.


내가 첫회사를 다녔던 이십 대 초반 나보다 스무 살은 더 위였던 상사분께서는 함께 신입으로 입사한 이십 대 후반의 언니를 바라보며 저 나이엔 늦어, 아직 윤오 씨는 어리니 이런이런 준비와 공부를 더 해봐. 더 도약해야지


바보 같았던 나는 그 말에서 더 도약할 팁에 꽂히기보다 이십 대 초반까지가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인양 말하던 그 나이에 대한 표현에 더 꽂혀 버렸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얻게 되었다.

몇 년 뒤면 나에게도 찾아올 이십 대 후반인데 이십 대 후반은 그렇게 다 끝나는 나이일까? 뭘 배우기에도 시작하기에도 그렇게 늦은 나이인 걸까? 어릴 땐 생각지도 않던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나를 엄습했었다.


그때 얻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꽤 오랜 시간 나를 좀 먹고 괴롭혔고 힘들게 했다. 그런 공포심을 느낄 시간에 뭐라도 했더라면 난 정말 더 도약해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뒤늦게나마 하기도 하지만 이젠 이런 생각조차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고 있다. 도약하기에 늦은 나이란 게 아예 없다고 함부로 꿈과 희망을 담아 이야기 하진 않겠다. 그러나 아예 꽉 닫힌 문은 아니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란 걸 나는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보아왔다. 대신 내가 만반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기회라는 건 갑자기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처럼 떨어진다.


난 겁만 먹고 남들이 말하는 여자 서른은 늦었어라는 말을 핑계 삼아 그 수많은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들을 놓쳐야만 했다. 이젠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인간의 수명은 자꾸 늘어나 우리가 노년이 될 즈음엔 평균 100세를 사는 시대가 될 수 있다는 말 때문이다. 100세까지도 너무 허황된다 치자 그럼 80세 시대에서 30세는 아직 반도 않았다. 서른이 되자마자 낭떠러지 아래로 뚝 떨어져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기회의 문이 모조리 닫히는 것도 아니다. 20대 초반보다 그 기회의 문이 좁을지 언정 완전히 꽁꽁 닫혀버리는 건 확실히 아니다. 70이 넘어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 박막례 할머니처럼 인생은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그래서 살아볼 만한 것이다. 내 인생이 40대에 더 재미나 질지 50대에 꽃을 필지 60대에 일확천금을 얻을지 그건 모른다. 그래서 계속 불안하고 한편으론 기대된다.


앞날을 불안해하고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하나의 선택일 뿐이고 그게 최선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내 나이가 이러니...라는 핑계로 포기하는 건 아쉬운 선택 이리라.


그리고 제발 회사에선 사람 잡을 때 나이가 이런데 어쩌고 저쩌고 따위의 핑계로 사람을 후려치며 붙잡는 방식은 삼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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