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에로스와 프시케 (1)

사랑, 운명의 장난

by 오작

옛날 어느 왕국에 세 명의 공주가 있었습니다. 공주들은 다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셋째 공주인 프시케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프시케의 미모에 대한 소문은 이웃 나라들에까지 퍼져, 많은 사람들이 공주를 보기 위해 왕궁으로 몰려왔습니다. 사람들은 프시케를 보고 감탄하여 그녀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으며, 여신들 대신에 공주에게 꽃을 바쳤습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자신보다 인간인 프시케를 숭배하는 것에 분노했습니다. 프시케에게 벌을 주기로 결심한 아프로디테는 아들인 에로스를 불러 말했습니다.


“에로스, 네가 해주어야 할 일이 있다.”


“뭔데요, 어머니?”


에로스는 활을 매기는 시늉을 하며 물었습니다. 에로스는 고수머리를 한 귀여운 소년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이 호기심 많은 신은 생김새와는 달리 매우 위협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에로스는 사랑의 신이었습니다. 등에는 작은 날개를 달고, 그의 장난감인 활을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쏘았습니다.


금화살을 맞으면 화살을 맞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게 되고, 납화살을 맞으면 처음으로 보는 사람을 지독히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아는 아프로디테는 프시케에게 불행한 사랑의 운명을 가져다줄 생각이었습니다.


“프시케를 알고 있느냐?”


“예, 들어본 일이 있어요. 인간이면서 여신처럼 예쁘다고 하던걸요. 제우스 님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모양이에요.”


에로스의 대답에 아프로디테는 더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녀의 추종자들로도 모자라 남신의 사랑을 받게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맞다. 그 프시케 때문에 어리석은 인간들이 나의 신전 돌보기를 아주 소홀히 한다. 인간이 신을 상대로 할 만큼 잘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마땅히 본보기를 보여야 할 것이다.”


에로스는 별 관심이 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질투심 많은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린 프시케가 안됐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다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아프로디테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프시케의 가슴에 금화살을 쏘아라. 그 다음 프시케가 세상에서 가장 못난 남자를 사랑하게 하는 거다. 그래야 인간들이 주제를 알 것이다.”


에로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장 예쁜 여자가 가장 못난 남자를 사랑하게 되다니,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로스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알까, 그녀가 프시케에게 하려는 짓이 본인 이 똑같이 겪은 일이라는 것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었지만 제우스와 헤라의 명으로 못생기고 인기 없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해 그로 만족하지 못하고 숱한 남자들과 바람을 피워 아이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에로스 또한 그 자식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기에 아프로디테는 프시케에게도 그 고통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해야만 하는 기분을 말입니다.


에로스는 어머니의 명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에로스는 자비심 많고 동정심이 있는 신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아이 특유의 천진함과 잔인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로스가 자라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프로디테조차 걱정이 되고 궁금해하여 운명의 세 여신들을 찾아가 물었으나 가이아의 딸들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신이라 해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우리는 알고 있으나 말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세상의 큰 흐름이며 뜻이다.”


알쏭달쏭한 말이었습니다. 어쨌든 에로스는 참으로 귀여운 용모를 하고 있고, 본인도 큰 불만이 없으니 계속 이 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아프로디테는 생각했습니다.


에로스의 운명이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신이면서도 성장하지 못하는 것인가? 정작 에로스는 자신의 일보다는 그가 재미있어 하는 사랑의 장난에 더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최고였습니다.


어느 날 밤, 에로스는 잠든 프시케를 보기 위해 몰래 왕궁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단순히 화살을 맞히는 게 아니라 못난이를 사랑하게 하려면 어둠으로부터의 긴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곤히 잠든 여자의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여자는 잠시 후 펼쳐질 자신의 운명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에로스는 화살을 쏠 준비를 하며 앞으로 일어날 광경들을 상상했습니다. 어머니는 흡족한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프시케가 잘못한 것은 없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게 태어난 것이 그녀의 죄였습니다. 죄는 짓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프시케의 침대 옆에 서서, 보지도 않고 금화살을 쏘려던 에로스는 문득 그녀의 얼굴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도 사내애였기 때문에 프시케가 얼마나 예쁜지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활을 당기고 있던 에로스의 팔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어떻게 할까? 공중에 작은 촛불을 띄우면 프시케가 깰지도 몰랐습니다.


때마침 달빛이 창 안을 비추었습니다. 월광의 가호를 거느리고 아르테미스 여신이 새벽 일찍 사냥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에로스는 프시케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잔뜩 기울였습니다.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에로스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피부를 보았습니다. 어두운 빛깔의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털을, 조각상보다도 정교하고 아름답게 빚어진 얼굴을 보았습니다. 잠든 그녀의 낯빛에는 온순함과 조화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프시케는 따뜻하고 순진한 처녀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이 여자는 신의 거대한 장난이라는 것을 에로스는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장난을 치길 좋아했지만, 거기에 당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눈을 크게 뜨고 있다는 것도, 프시케의 얼굴을 드리운 그의 그림자가 커져 그녀를 깨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그녀를 쳐다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프시케는 잠에서 깨었습니다. 누군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두워서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아직 몽롱한 꿈의 흔적이 남은 눈동자와 마주친 에로스는 당황했습니다. 눈을 뜬 프시케는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에로스는 공주의 방에 있는 거울을 휙 돌아보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청년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훌쩍 큰 키에, 근육으로 채워진 몸은 여느 남신들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얼굴과 똑 닮은 그 청년은 멍한 표정을 짓고서, 화살을 든 채로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거라고 느낀 프시케의 눈에 의아함과 두려움이 함께 서리는 것을 본 에로스는 그녀의 시선에서 흐림이 거두어지기 전에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에로스가 가고 나서 프시케는 놀라 방 안을 살폈으나 아무도 온 데 간 데가 없었습니다. 프시케는 꿈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