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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un 05. 2023

할부로 쌓은 도시


연필을 다루는 감을 좀 알게 됐던 시기의 그림. 4절지.


이후로는 4절지에서 벗어나 A4에도 그리고 더 작은 사이즈에도 그리고 전지에도 그렸다. 대학을 다닐 때는 100호는 기본이었고 작은 크기의 캔버스는 소품 같아서 은근히 무시했었다. 뭘 안다고 그랬는지. 그냥 무지하고 철없던 시절의 치기일 것이다. 100호 정도는 펼치고 앉아 있어야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뒷면에는 나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붙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런 마음을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남몰래 그림을 그려도 나 없는 때에 누군가 내 그림을 보고 좋아하길 바랐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겠지. 경쟁이랄 수도 있고 승부욕도 좀 작동할 것이니 뭔가 스스로 힘을 내는 계기도 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작가들은 자기 '안'으로 파고들어 가는 일을 먼저 한다.







자기의 안쪽을 살피고 파고드는 일이 꼭 심각하거나 우울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향과 기질을 가졌고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 하면 맞겠다는 정도를 살피는 일이다. 이것을 쉽게 하는 사람도 있고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난 좀 힘들게 했다. 이유는 내 안을 살피는 일을 해야 할 적절한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사춘기에서 스무 살 무렵에 이런 고민을 했더라면 이후의 작업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차를 놓친 사람처럼 이십 대를 보내고 삼십도 반이 넘어서 내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미 굳은 생각들이 많았고 그런 굳은살들은 대부분 헛것이었다. 그 허울을 걷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해냈다. 하지만 때를 놓쳤기에 성장의 시기가 자꾸 밀려났다. 이십 대에 해야 할 것을 삼십에 하고, 삼십에 할 것을 사십에 하는 식이다. 장대 높이 뛰기처럼 한 번에 훅, 높이 오르면 좋겠지만 그런 행운은 내겐 없었다.


뭐, 머리의 한계도 있겠지. 그리 영민한 사람이 아니기에 이해의 속도도 느리고 폭도 좁다. 어쩌겠는가.







 길을 걷다 본 풍경들을 그렸다. 핸드폰을 파는 사람들. 그들은 항상 공짜 거나 할인을 했다. 공짜폰이 유행이던 때였다. 실제로 돈 한 푼 안 내고 핸드폰을 들고 나온 적도 있었다. 핸드폰 매장과 사방에 즐비한 모텔들, 오래된 주택의 붉은 벽돌. 헬기를 붙들고 있는 두 남자. 나겠지. 왜 그림마다 두 남자를 그렸는지 모른다. 그냥 한 명은 심심한 것 같고 셋을 그리기는 귀찮고. 뭔가 알쏭달쏭한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작은 헬기에 줄을 매달고 두 남자를 끼워 넣었던 것 같다.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의 뒤섞임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런 애매한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런 그림들을 매일 그리면서 동네의 작은 가게들을 유심히 봤다. 가게의 모양새와 노점의 천막과 간판의 글씨, 주차금지 표시, 드나드는 사람들과 시간의 두께를 보려고 했다. 하루는 그 모든 것들이 뭉쳐져서 한눈에 쏟아지듯 들어왔다. 좀 신기한 경험이었다. 매일 지나다니는 익숙한 동네의 풍경이 낯선 이국에 처음 도착한 사람이 본 것처럼 생경했다. 그리고 주변의 너절한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외국인들이 서울의 밤거리 간판과 쌩한 천막의 색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싸구려 색감이지만 강렬하다. 무더기로 있는 유흥가의 간판이 누군가에겐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했었다.


그래, 서울은 천박한 도시였지. 속물적인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간판과 호객꾼과 전단지의 도시. 

술과 유혹과 할부의 도시.


2004년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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